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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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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분리와 도덕적 감수성



 어쩌면, 행복한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박제된 감정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면 헬지옥 사회에서 적어도, 행복이란 말이 적절치 않더라도, 분노와 우울의 감정으로 힘들진 않을 테니까.

  감정은 이성의 반대가 아니다. 감정은 이성과의 연결과 유대 속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을 막아 놓은 상태에서는 당연 감정도 막힐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저자들이 얘기하는 ‘도덕적 불감증’은 당연하고 보편타당한 생각의 흐름을 통제당한 박제당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억제시킨 결과일 것이다. 이성과 감정의 자연스러운 교류의 차단은 합리적 사고를, 합리적 감정의 분출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성조차하지 못하게 한다.

  삶을 둘러싸고 있는 그 공간자체가 차지하는 전방위적인 공포인 정치, 국가권력이 개인의 삶 하나하나를 철두철미하게 조롱하는 상황은 의식과 감성으로 완벽히 무장해도 깨지지 않은 채 이어진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유를 자유화할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 철저한 공포의 정치. 여기에 각 개인은 무지와 무기력, 굴욕감으로 대응된다. 그것이 가져온 결과가 감수성의 결여가 되고 악으로 귀결되는 것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현실사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가 말했다고 하잖은가. 더 큰 선 등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범죄가 인간의 범죄 가운데 가장 극악하다고. 카뮈에 말에 언뜻 드라마 펀치의 대사가 생각난다. ‘선’의 편으로 여겨지던 최명길이 어쩌면 악의 편으로 대변되는 조재현의 악행을 끊임없이 막기 위해 대응하는 논리는 ‘그것만은 막고 싶다’였다. 그것, 악인이 행하는 ‘악’으로 인해 ‘선’이 좌절되고 파괴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점진적으로 보다 강한 ‘악’을 잘못된 것인지 모른 채 행하던.

 공포의 사회에서 마음속에 자라난 무지와 무기력, 굴욕감은 이렇듯 선과 악의 경계마저도 허물어 버린다. 타당한 이성이 압도되어 극악의 감정으로 침몰되는 이 깨져버리는 균형은 필연코 이성과 그에 따른 자연스런 감정을 잃게 한다. 폭력을 매일 보면 그것은 더 이상 경악이나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우리에게서 자라나기(p93) 때문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망각하고 만다. 기억하지 않음이 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므로. 그러고 보면 오래도록 기억보다 망각이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왔다. 끊임없는 혼란과 공포와 거짓 속에서 기억이 힘이 되리라 기대하던 오랜 시간들은 점점 망각이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까지를 안정시키는 일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추구하기에 이미 우린, 욕망을 껴안고 있는 존재들이니까.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은 일견 수긍이 되기도 하면서 이해를 거부하고픈 말이다. 욕망이란 다양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욕망의 종착역이 같다는 전제를 부여하니까. 마치 욕망은 한정되어 있기에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욕망을 쟁취하지 않으면 나의 욕망이 충족되지 못함이 당연한 듯한 귀결로. 같은 욕망덩어리를 배분하는데 누구든 최종적인 승자가 되기를 원하므로. 타자의 욕망이 나의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한 언제든 빼앗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조장하며 순응화시키는 것이 공고히 권력화된 정치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몰고 가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우리의 굴욕감도 무지도 무기력도 전복될 수 없는, 변혁될 수 없는 것일까.

 욕망의 분리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타자의 욕망을 내 것화 하지 않을 때, 각각의 욕망을 지닌 개개의 인간으로 분리할 때 비로소 나와 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각각의 욕망이 충족될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의 욕망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욕망들이 숨쉬는 환경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그 모든 욕망들이 실현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갈구할 수 있는 방법적인 것을 이룰 수 있는 것. 물론 욕망이란 바람직한 것이어야 할 테고. 욕망들이 타인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의 문은 열리게 되지 않으려나. 누르는 대로 억압하는 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에 갇혀서 늘 대립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욕망을 채워나가는 것이 함께 굴욕감을 던져버리는 것임을. 함께 경직했던 이성을 부여잡고 그에 따른 감정도 채우는 일임을 알아간다면.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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