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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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지 않았었을까 했는데 이번에 처음 김숨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 책 뒷 표지에 붉은 글씨로 쓰인 책 속 한 구절 때문에.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신'이라고 하니 좀 과하게 보일까? 그럼 '엄마'는 어떨까? '가사도우미'는 너무 적나라한가? 어릴 적부터 가족 제도에 회의적이었던 터라 결혼을 하는 것 자체도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여느 사람들처럼 여차저차해서 결혼을 하게 되고 무려 10년을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회의적이었던 탓일까, 나는 부부라는 관계가 너무나 얇은 유리판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서로 다른, 아주 많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남녀는 아주 많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 가치관의 차이가 어떤 충돌을 할 때 그 유리판은 마치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다. 결혼 초부터 나는 적지 않게 그 말을 해왔었다. "난 당신 엄마가 아니야. 그런 건 당신 엄마한테 해달라고 했었어야지 그것도 아주 어릴 때." 너무 자존심을 건드렸을까? 에둘러 표현하는 법을 몰라 늘 같은 곳에서 충돌을 하곤 한다. 비록 내가 '가사 도우미'라고 여겨지게까지는 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야박한걸까? 자글자글 유리에 금이 간 것은 아내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시대가 변하고 분명 나아지기도 했지만, 그 나아진 것으로 만족하며 살기엔 이 시대의 여자들은 이미 알게 되었다. 남편도 아내도 서로의 '도우미'도, '엄마'도, '신'도 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그것을 누누이 표현하지만 이 시대의 남편들은 아직 느끼지 못한다. "내가 이만하면 괜찮은 남편이지."라고 자위한다.

 

폭력은 소설 <이혼> 속의 민정의 아버지처럼 물리적 폭력만을 말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부부 사이의 폭력성을 알기 쉽게 드러내줄 뿐 생각 보다 많은 폭력들이 가정 내에 존재하지 않겠는가. 상처나면 복구되지 않는 감정을 품고 경험을 수 십년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숨막히다. 민정이 남편에게 한 말이 무척 담백하면서도 와닿았다.

 

"이혼이 나는 통과의례 같아. 나도, 당신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시속 백이십 킬로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만난 터널처럼......."

 

"나는 이혼이라는 통과의례가 내게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

 

농당 반 진담 반으로 결혼 생활 20주년엔 모두 이혼을 하게 법으로 정해놓자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통과의례'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읍산 요금소>나 <새의 장례식>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폭력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다. 나는 요금소 안이 그저 답답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할 뿐 그녀들의 삶에 대해 무관심했다. 매 맞는 아내와 매 맞는 아이의 삶도 나완 별개니 안타깝되 적극적으로 감정을 개입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주 미미하게 더 신경이 쓰이겠지만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 소설들을 읽으며 소설가라는 직업이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들의 삶으로 발을 꾸욱 집어넣고 살아가는 동안 작가는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그저 '신'이라는 말 속에 담긴 결혼 생활의 부담감과 억압을 온몸으로 느낄 뿐이다. 내겐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김숨 작가라면 펼처놓은 이야기에 더 나를 집어넣어도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새로운 그녀의 소설책을 읽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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