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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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는 생각보다 조숙했던 모양이다. 이 책을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40에 접어든 지금 다시 읽으니 정말 전혀 낯선 내용이지만 글의 흐름만큼은 익숙한 것이 읽인 읽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20대의 나는 40의 나와 비슷한지,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

 

1872년 생이다 러셀이. 그리고 이 책은 1935년에 나온 책이다. 비록 그가 북한의 존재와 IS의 존재를 모르기에 전쟁에 대한 일부 글들은 시대에 좀 안맞는 감도 있다 싶을 수도 있지만 그 외에 노동과 육아 등에 대한 문제들은 지금의 문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난 번 [결혼과 도덕]에서 중점적으로 여성의 지위와 가정 내의 평등에 대하여 무척 진보적인 시각을 가져 놀랐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생각 전반에 걸쳐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 21세기에 할 법한 말들을 하는 것을 보면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20대의 내가 40에도 여전한 것을 보면 세상은 무척 빠르게 변하는 것 같지만 실상 언제나 제자리 걸음에 열심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책을 읽으며 버트런드 러셀 책의 내용을 옮겨적을 노트를 하나 마련해서 옮겨적고 있다. 그 첫번째 책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인 셈인데, 이 책은 러셀의 생각 전반을 고르게 맛볼 수 있다는 점에 첫 책으로 적절한 것 같다.

사회주의자인 러셀은 내가 보기엔 자유주의자이기도 하다. 획일성을 거부하고 근로의 미덕을 부정한다. 심지어 페미니스트에 가깝다.

 

획일화는 모든 기준들을 낮추는 방법을 통해 가장 손쉽게 얻어진다.

 <현대 사회의 획일성>

변화에 대한 바람은 절대로 남자들에게서 나올 수 없다.

 <건축에 대한 몇 가지 생각>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하는 시각이 여전하다. 사회주의자인 러셀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경멸한다. 복지 정책만 내어 놓으면 그것을 종북 세력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은 러셀을 아마 모를 것이다. 북한이 어디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여성의 지위에 관심이 있냔 말이다. 연결을 시킬 것을 시켜야지.

 

인류가 이러한 기형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자유로운 성장, 자기 마음대로 해보기, 훈련되지 않은 자연스런 삶이 필수적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인내가 요구되는 궁극적인 이유인 것이다.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

 

그래서 지식성애자인 러셀은 아마 당신들을 굉장히 경멸할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당신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만 읽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참고로 60대인 우리 엄마도 러셀의 책을 한 권 읽으시며 "이 양반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더라."고 하셨다는 점만 흘려본다. 읽자, 책 좀. 요즘은 어떤 리뷰를 써도 정치 이야기로 끝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아들도 요즘 민주주의에 대해 묻는다. 모든 것에는 그것이 극악적인 일일지라도 순기능은 있는 모양이다.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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