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출장 - 우아하거나 치열하거나, 기자 곽아람이 만난 아티스트, 아트월드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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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작가의 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책에 관한 책, 미술에 관한 책. 지난 번 작가와의 만남에서 다음 책은 어떤 책이냐고 물었더니 미술에 관한 책이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이었다. 그녀가 미술기자로 살아간 3년간의 생활을 담은 책.

 

이 책은 인터뷰집이라고 불러야할까, 에세이라고 불러야 할까? 인터뷰집이라고 하기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고 에세이라고 부르기엔 인터뷰가 지나치게 많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곽아람의 책은 수다스러운 동네 언니와의 만남 같다. 이 책도 그 언니가 미술 출장을 다녀와서 조잘조잘 이야기해주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는 간혹 성대모사로 인터뷰의 과정을 재연하기도 하고 그런 상황 말이다.

 

아마 미술사를 전공한 자연인 곽아람이라면 고전적인 미술관에서 회화나 조각을 감상한 내용을 적었겠지만 이 책에서의 곽아람은 치열한 현대미술의 세계를 다뤄야 하는 기자의 신분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근래엔 너무나 익숙한 데이미언 허스트나 제프 쿤스를 비롯해서 영 낯선 중국의 작가들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곽아람 기자에게 취한 행동이 그녀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말이다. 지나치게 상업적이었던 제프 쿤스가 특히 그렇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도 좀 느끼하고 말이다.

 

물론 기대 이상으로 상냥했던 데이미언 허스트를 비롯하여 평소 그렇게까진 관심이 없었는데 관심이 가는 작가들도 있었다. 노년에야 작품성을 인정받은 LOVE의 주인공 로버트 인디애나도 그렇고, 입양아로서 포대기의 느낌 때문에 침대 시트를 표현하곤 한 진 마이어슨도 정말 궁금해졌다.

 

인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네 살짜리 사내아이는, 난생처음 누워 본 침대 위에서 시트로 온몸을 휘감고 데굴데굴 굴렀다. 바닥이 아닌 곳에서 잠자는 게 겁나 울고 소리 질렀던 그는 시트가 누에고치러머 그의 몸을 꽁꽁 얽어맬 때쯤에야 잠들곤 했다. 어른이 되어 방문한 한국에서 포대기로 손자를 업고 가는 할머니를 보았을 때, 그는 시트에 포박되었을 때의 그 안정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한다. (p193)

우리나라에서 자라 보통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그다지 미술적 소견이 높지 못하다. 아마 나만할 것이다. 나도 대학원에서 미술사 강의를 듣고서야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트레이시 에민을 아는 것이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여전히 나의 미술은 고흐와 피카소가 전부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사람이기에 미술적 상식이 뛰어난 사람 앞에선 괜히 위축되고 부러움을 느끼게 되지만 실상 그들도 그들 세계에서 늘 당당하고 세련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되었다. 곽아람 기자만이 그런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미술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거리감과 그것의 해소를 모두 그녀의 글을 통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삶이 시작되기 전엔 나도 잦은 해외 출장을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세계를 주유하며 일하다니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의 고민이란 원하던 것이 주어지는 순간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내 것이 아닌 삶을 동경한다. 장거리 비행과 시차, 한국과 현지 두 개의 시간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거듭되자 나는 이내 서울의 내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안온한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p283)

 

그나저나 곽아람 기자는 어쩌면 어릴 때 읽은 책을 저렇게 다 기억한담? 이불씨만 놀란 것이 아니라 매번 나도 놀란다. 내 기억력은 닭 수준인가?? 현대미술에 대한 거리감이 한 뼘 더 줄어들었다. 지금으로선 현대미술이건 고전미술이건 어디 미술관 관람이라도 맘 편히 해 보는 게 소망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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