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delectari sibi'는 '자신의 운동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의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13세기의 스코틀랜드의 스콜라 철학자 둔스 스코투스가 condelectari sibi를 예찬했다고 올리버 색스는 그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 Everything in its place]에서 언급한다. 

 condelectari sibi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구글에 검색을 하니 많이 나오는데 한나 아렌트도 

[The Life of the Mind 정신의 삶]에서 이 단어를 언급한다. 


한나 아렌트는 이 단어의 의미중 기쁨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에 반해 올리버 색스는 의지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읽힌다. 원문판을 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우리나라 말에서 '~을'은 목적격 조사니까. 그런데 이 단어는 영어도 독일어도 아닌 라틴어인 것 같다. 어쨌든 한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 많다니...읽단 시간이 없으니까 번역서를 믿고 번역한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어쨌거나 책을 막 읽기 시작하면 언제나 좀 설렌다. 더구나 예전의 나라면 읽어볼 생각도 안 했던 사람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너무 공감하게 되는 경우는 더욱!


소개가 길었는데 condelectari sibi는 올리버 색스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 Everything in its place]의 첫번째 이야기에 나온다. 이 이야기의 한국어 제목은 [물아기]인데 1997년 5월 26일 뉴요커 44페이지에 실린 이야기로 제목은 'Water Babies'다. Water Babies든 물아기이든 제목이 좀 시시하다. ㅋ 하지만 책 내용은 굿!!


이 책의 표지에는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First loves and last tales 라고 나와 있는데 이제 겨우 책을 읽기 시작하는 단계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국어만 보고 좀 속은 것 같다. 첫사랑과 First loves 는 다른 의미인데...나처럼 한국어로 된 첫사랑이라는 글을 보고 올리버 색스의 첫사랑에 대해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정말 첫사랑 (인간에 대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제목은 [첫사랑]인데 그것을 첫사랑이라고 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올리버 색스의 첫사랑은 Jonathan Miller라는 건가? 올리버 색스가 게이라고 커밍아웃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사후에 파트너였다는 Bill Hayes도 있는 것을 보면 첫사랑은 어쩌면 Jonathan Miller였을 수도 있겠다. 

내가 조너선 밀러를 처음으로 만나 건 그 학교의 워커 도서관 Walker Library에서 였다. p.28

올리버 색스가 12살 6개월에 만나서 친구가 된 Jonathan Miller는 라디오에서 듣고 알게 된 사람인데 구글에 Jonathan Miller로 검색하면 이런 소개가 나온다."Sir Jonathan Wolfe Miller CBE was an English theatre and opera director, actor, author, television presenter, humourist and medical doctor." 라디오에서 들어 그사람이 연극, 오페라 감독, 배우, 작가 등등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사람이 유머작가 (만담가, 재담가, 해학 소설가, 익살꾼은 개그맨?)이면서 의사인지는 몰랐다! 더구나 올리버 색스와 같은 신경과 전문의라니! 하지만 결국 치매로 죽는다. 누구의 인생이든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구나!


아까 빌 헤이스에 대해 잠깐 언급을 했는데 빌 헤이스의 책인 <해부학자>가 개정번역되어 나왔다고 하는 소식을 접했다.

책소개를 보니까

1858년에 나와 한 번도 절판된 적 없는, 의학교재의 고전 《그레이 아나토미》를 둘러싼 불가사의한 인물들의 삶과 행적, 그리고 그 시대 의학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과학 에세이이자 해부학 실습과정에서 경험한 인체의 해부학적 지식과 인간에 관한 통찰을 담은 철학 에세이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지금껏 발간된 영어로 된 책 중 가장 유명한 책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으로 정평이 나있다.


《해부학자》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둘러싼 불가사의한 두 명의 헨리를 중심으로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저자 빌 헤이스는 ‘해부학’이라는 산을 만나고 그것을 넘기 위해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해부학 실습 강좌를 네 학기나 청강하며 두 해부학자의 미스터리에 다가간다. 빌 헤이스가 프롤로그에서 밝히듯, 이 책의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해부학 책’이고 다른 하나는 ‘한 해부학도의 수련 과정’이다.


책은 세 가지 주제로 전개된다. 《그레이 아나토미》에 삽화를 그린 헨리 카터의 삶이 전면에 드러나며 전체를 끌고 간다. 독자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호기심과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그 안에 해부학자이며 저자인 헨리 그레이의 삶이 홀로그램처럼 투영되면서 흥미는 배가된다. 빌 헤이스는 160여 년 전에 살았던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와 삽화가인 두 헨리의 비범한 삶과 천재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인체를 바라보는 경이로운 관점을 제공하면서, 창의적인 전기의 새로운 장르를 연다.

 어떤 책인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면서 난해하다. 그러니까 에세이이면서 창의적인 전기인 것이라는 얘기지? 어쨌든 빌 헤이스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아나토미 수업을 4번이나 들었다니! (수업을 4번 들었다는 얘기는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


내가 처음 아나토미 수업을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2016년 여름학기였다. 원래 표준학기에 들어야 하는 수업인데 나는 시간이 없어서 여름학기 (6주)에 이 아나토미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하기 전에 아나토미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엄청 긴장하고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UCLA를 나온 교수님이 괴팍하기도 했지만, 강의가 늘 산으로 가는 바람에 엄청 고생했던 생각이 난다. 그래서 첫 시험에 50점인가? 그렇게 받고 너무 슬퍼했던 기억도 난다. 


그당시 나는 간호대학을 가야한다는 일념만 있던 터라 이 수업에서 A를 받지 못하면 간호대학을 들어갈 수 없다는 절박함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교수를 찾아가서 이번 시험에 50점을 받았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A를 받을 수 있겠는지,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겠냐고 통사정을 했더랬다. 그때 교수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교수가 콧방귀도 뀌지 않아서 상심해서 돌아왔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그래서 죽어라고 공부를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계속 90점 이상을 받게되어 결국 아나토미 수업에서 A를 받았다. 지금도 나름 열심히 공부하지만 그때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었고 그당시의 나를 생각하면 대견하다. 그 냉정했던 교수도 어느 날 많은 학생들 앞에서 나의 성취(?), 발전(?)을 얘기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면 내 앞의 어떤 장벽도 이겨낼 것이라고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벽이 될 줄이야.


상황은 나날이 나빠지는 것 같다. 친한 친구 칭칭은 오늘 실습날이라 병원에 갔더니 당분간 병원 실습을 할 수 없다는 전달을 받았다며 너무 슬퍼하고 있다. 


어제는 나의 실습일이라 갔는데 우리그룹은 아직까지 오지말라는 전달을 받지않았다. 아무 전달 받은 것이 없지만 다음주 실습에 나는 아티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나는 간호대학의 졸업을 목전에 두고 (이제 거의 12주 남았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이 연기되는 것인가? 산 넘어 산이라고 하더니,,,휴


간호학생들은 change.com에서 하는 petition에 사인을 하고 있다. 실습을 못하게 된 많은 간호학생들이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만 열심히 공부한 것이 아니라서 압니다. 모든 간호대학의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한국에 계시더라도 서명운동에 동참해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라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여러분들도 서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새로 개정판으로 나온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 지난 여름학기에 땀흘리며 들었던 아나토미 수업을 떠올리며, 학교를 안가게 된 이 시점에 읽어봐야 겠다. 올리버 색스도 이 책을 읽고 빌 헤이스를 만나기 전에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책으로 올리버 색스와 빌 헤이스는 개인적으로 연결이 되어 훗날 올리버 색스가 죽기 전까지 파트너였단다. 책으로 만난 인연도 이 둘의 케이스라면 가히 운명적이다.


《해부학자》를 집필한 경험은, 인체는 물론 미래의 파트너인 신경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를 알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2008년 《해부학자》가 발간되고 몇 달이 지났을 때, 나는 ‘닥터 색스’로부터 친필 편지를 받았다. 그는 편지에서 “당신의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출간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양친과 형 둘이 모두 의사이기 때문에, 너덜너덜한 《그레이 아나토미》 책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라고 부연했다. pg. 10

나는 gray's anatomy 책으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우리집에도 너덜너덜한 gray's anatomy책이 있다.


시할아버지가 의사셨고, 시 할아버지의 형도 의사였다고 한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시할아버지의 형이 먼저 그 책을 읽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 시할아버지에게 물려주셨다. 그 책을 법대에 들어가기 전에 의대에 잠시 다니셨던 시아버지가 읽으셨고, 남편의 큰형의 손을 거쳐 지금은 책꽂이에 꽂혀있다.

의대에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는 딸은 $10도 안 되는 가격에 이 중고책을 사서 보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Pearson출판사에서 나온 Human Anatomy로 수업을 들었다.

지금도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혹시 인간의 몸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림과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초보자가 읽기에 최고의 안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남편은 동네 마트에 빵을 사러 갔다가 빈손으로 왔다. 우리 집에는 빵도 없고 휴지도 다 떨어져 간다.

나는 빵도 없고 휴지가 없어도 졸업 예정일에 예정대로 졸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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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3-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중에 어찌 이리 참한 페이파까지. 암튼 라로님 시간은 하루가 48시간인 거 같아요응. 좋아요 꾹.

라로 2020-03-18 11:08   좋아요 0 | URL
좋아요 꾹. 고마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여긴 화요일이에요. 세상은 어수선한데 하루는 어김없이 오네요. ㅎㅎㅎ
요즘은 세상이 이러니 저도 혼란스러워요. 프야 님은 어때요? 잘 지내나요??

프레이야 2020-03-18 13:16   좋아요 0 | URL
네~ 잘 지내지요. 버리고 치우고 닦고. 팔 아퍼요 ㅎㅎ

라로 2020-03-20 16:26   좋아요 0 | URL
대강해요, ㅎㅎㅎㅎㅎㅎㅎ 몸살나~~!!

희선 2020-03-18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부학 점수가 잘 안 나와서 교수한테 물어가서 물어보기도 하시다니, 저라면 왜 그럴까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답이 오지 않는다 해도 물어보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러면서 자신이 답을 찾기도 하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시고 점수도 잘 나왔군요 라로 님이 가진 그런 점 교수도 좋게 봤을 거예요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없어지기도 했는데, 세계가 비슷해졌군요 라로 님 건강 조심하세요


희선

라로 2020-03-18 11:09   좋아요 1 | URL
물어봤는데 교수가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으로 말해서 완전 기분 나빴어요.
괜히 물어봤다,,, 뭐 그런..ㅎㅎㅎㅎ
좋은 말 감사합니다, 희선님! 희선 님도 이 어려운 시기 잘 극복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