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페이지 미스터리 공모전 수상작 1차분입니다. 참가상 다섯 작품을 먼저 공개합니다. 

문단은 단락이 나뉨에 따라 보기에 편하게 제가 나누었습니다. 그 외 재편집은 없습니다. 

즐겁게 보아 주세요! 

 

 

 

 

참가상 1.

거울

난 골목 한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그들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각자의 길을 향해 걷기 바쁘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먹을 걸 구걸하는 지저분한 노숙자일 뿐이다. 간혹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시켜 내게 돈을 던져주며 알량한 봉사정신을 교육하며 불쌍한 시선으로 동정하는 법을 가르치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비참함을 느끼지 않는다. 나도 나름대로 그들을 통해 최대한의 희열을 맛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에겐 거울을 통해 상대방을 훔쳐보는 비밀스러운 취미가 있다. 이 거울을 갖게 된 건 일 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때 난 지독한 추위와 배고픔에 괴로웠고, 동정 어린 시선들에 수치심을 느꼈다. 결국 죽음을 선택했고 그 마지막 순간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처음엔 돈 되는 무언가를 기대했지만 그건 평범한 손거울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무심코 비춰본 거울 속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허름한 행색의 거지가 아닌, 늙은 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언젠가 구걸하는 나에게 꺼지라고 욕을 했던 건물 주인이 지나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남자를 비춰보았다. 거울 속에는 값비싼 옷감에 휘감겨 있는 뚱뚱한 돼지만 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난 죽을 생각을 접고 여기에 자리를 깔고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많은 동물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부유한 사람일수록 그 내면은 추악한 짐승이었다. 난 예전과 다르게 세상은 정말 공평하다는 걸 깨달았다. 양심을 팔면 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억울하지 않았다. 돈 대신 양심을 선택한 것이 내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들은 날 불쌍하게 여기지만 오히려 정말 불쌍한 건 그들이었다. 가끔은 약한 동물들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아프거나 가난한 아이들뿐이었다. 언젠가 그들도 세상에 적응하면서 잔인한 짐승들로 변하겠지. 큭큭.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다. 꼬마아이들이 나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며 자기들끼리 웃고 장난치고 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웃음만 날 뿐이다. 내 주변에는 못생긴 새끼 오랑우탄들이 있을 뿐이니까.
 

“이 녀석들아! 당장 그만두지 못해!”
 

멀리서 들려오는 호통 소리에 오랑우탄 아니,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또 어디선가 촬영을 하거나, 우월의식을 가진 자의 참견일 거라 생각했다. 비싸 보이는 양복을 입은 노신사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아이들을 훈계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오더니 양복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지갑을 꺼내 수표 몇 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노인에게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역시 거짓된 모습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법칙이니까. 난 품속에서 거울을 꺼내 노인을 비춰보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짐승은 늙은 쥐뿐, 노인은 생긴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쳤다. 난 이 거울이 사람의 모습도 비출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니, 그보다 부유한 노신사가 다른 이들처럼 추악한 짐승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경직되어 있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노인은 내가 보고 있는 거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인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거울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서둘러 거울을 옷 속 깊숙이 넣으며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거울,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것 같군. 난 예전에 개였다네. 내 본성이 개라는 걸 알고 나는 충격을 받았네. 그래서 노력했지.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남을 위해 죽을 뻔하기도 해서 신문에 나기까지 했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 거울을 통해 원래의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네. 자네도 열심히 노력해보게.”
 

머릿속이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노인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돈도 많은 노인이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가치관이 산산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난 주머니 안에서 커터 칼을 꺼내 그의 복부를 깊게 찔렀다. 그의 당황한 눈빛이 내 눈동자에 깊이 각인되었다. 떨려오던 심장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예외였던 노인을 제거했으니 이제 더 이상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거울을 꺼냈다. 거울에는 이제 늙은 쥐는 사라지고 허름한 행색의 남자가 비쳤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동물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난 노인의 시체를 골목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가 줬던 수표를 그의 몸 위로 뿌렸다. 내게 필요한 건 몇 푼 안 되는 돈이나 충고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생각하는 원칙에 세상이 맞아떨어지는 것뿐이다.  


며칠 뒤, 노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죽은 노인을 불쌍히 여기며 세상의 각박함을 원망했다. 각종 동물들이 노인을 둘러싸고 있다. 동물원에 왔나 착각할 정도였다.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마음속 깊은 속에서 흐르는 눈물은 어느새 차가운 웃음으로 말라가고 있다.
 

 

 

참가상 2.
 

찢겨진 기억

의사가 자리에 앉아 내 얼굴을 살핀다. 정신과 의사란 참 희한한 직업이다.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있는 걸로 치료가 된다고 느껴지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내 병은 언제 다 나을까요? 라는 질문에 의사가 입을 연다. 그가 입을 열기 전 난 그의 말을 받아 적기 위해 메모지와 펜을 들었다. 의사는 내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희망이라는 말에 볼펜이 문득 멈춘다. 나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과거 어느 시점을 중심으로, 그 이후에 생긴 일은 전부 삽시간에 잊히고 만다. 계속되는 망각 속에서 나를 살게끔 지탱해주는 것은 모든 것을 기록하는 수첩과 볼펜밖에 없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들을 적어야 한다.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된 노트 필기는 이제 거의 광적인 수준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항상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화하라고, 수첩 표지에 적혀 있는 사항을 그대로 따른 것뿐인데. 수첩에 적힌 대로만 가면 나는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그러다가 문득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이코가 내 수첩을 훔쳐간 뒤 그 안의 모든 정보를 바꾸어놓으면 어떡하지? 라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생각. 수첩에 손을 가져가다가 멈추었다. 이런 꺼림칙한 생각, 몇 분 뒤면 잊어버릴 것을 괜히 종이 낭비하며 적을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내게 도움 될 만한 것도 아니니까. 이런 기억은 차라리 금방 잊어버리는 게 낫다.  


집 안으로 들어오니 묘한 낯설음이 느껴졌다. 수첩을 살펴보니 ‘엄마에게 다시 전화’라는 글자가 보인다. 전화를 걸어보지만 부재중이라는 안내음이 나온다. ‘엄마’라는 글자 옆에 ‘또다시’라고 적어놓는다. 내 기억의 지속 시간은 길어봐야 삼십 분. 그 삼십 분 안에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아마 내 뇌는 터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수첩에서 찢긴 부분을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 항상 지니고 있고 분신처럼 아끼는 수첩인데 이럴 일이 없다. 도저히 생길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엄마에게 다시 전화, 또다시’라는 문구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프링 부분에 채 덜 찢긴 여분의 종이들이 덜렁거리며 남아 있었다. 그전의 기록을 살펴보니 ‘엄마와의 마지막 통화’였고 그 후는 ‘저녁 식사: 소시지 빵’이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대신, 담당의사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수첩 앞면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의사는 나에게 차분해질 것을 명령했다. 그러고서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보라고 한다. 이 사람, 내 담당의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의식이 희미해진다. 이 기억을 잊기 전에 얼른 펜을 들었다. ‘누군가 내 수첩에 적힌 기억을 찢어버렸다.’ 


누군가 내 수첩의 기억을 찢어버렸다고?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이 수첩은 분신처럼 항상 내 몸에 소지했던 것인데. 그런데도 누군가 접촉할 수 있었다면 이 수첩에 적힌 모든 기억도 누군가에 의해 오염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온갖 추측이 난무한 상황에서 나는 패닉에 빠져버렸다. 누굴까? 이 기억 또한 잊혀버리기 전에 기록해두어야 한다. 나는 수첩의 다음 장을 채웠다. ‘기억이 오염되었을 수 있다. 수첩에 적힌 모든 내용을 믿지 마라.’ 


화장실에 다녀온 뒤 수첩을 보니 알 수 없는 말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수첩의 내용을 믿지 말라는 둥 종이가 찢어졌다는 둥. 분명 내 글씨인 건 맞는데. 문득 다급한 글씨로 ‘엄마에게 또다시 전화’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본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뚜뚜 하는 안내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옆에 놓인 휴지통으로 간다. 그리고 가득 채워진 채 묶여 있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비죽이 구겨진 종이가 튀어나온 것을 본다.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꺼내 펴본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그만 바닥에 떨어트리고 만다. 거기에는 다급한 글씨로, ‘엄마 장례식, 나눔병원 지하 1층’이라고 적혀 있다. 종이 위의 글씨는 눈물자국을 따라 번져 있고 심하게 구겨져 있다.
 

분명 내 글씨가 맞고, 집 안에 누군가 출입한 흔적은 없어 보이는데. 누굴까? 이 종이를 수첩에서 찢어버린 사람은. 그가 바로 나인 것일까. 하나밖에 없던 나의 보호자, 내 과거를 아는 유일한 친족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미래의 나에게 도저히 알릴 자신이 없었던, 그래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리 알고 있었던 과거의 내가 은밀히 주도한 이 비밀을, 나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핸드폰에선 여전히 안내음이 들려온다. 뚜뚜. 울면서 나는 수첩의 다음 장을 채운다. ‘엄마 장례식, 나눔병원 지하 1층, 절대 이 종이를 뜯어버리지 말 것.’
 

  

 

참가상 3.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종우는 영 기분이 별로였다. 꽤 유명한 피서지라고 해서 와봤더니 하필 장마가 겹쳐 사람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었고, 편의시설이 없어 피서객 대부분이 당일치기인지라 민박집도 하나뿐이었다. 더구나 산골짜기에 위태롭게 서 있는 민박집은 달랑 방 하나에 먼저 온 손님까지 있어서, 민박집 주인어른의 변명을 별도로 듣지 않아도 오늘 밤은 낯모르는 사람과 지새우게 생겼다.
 

“아유~ 요새 안 그래도 거 뭣이냐. 흉흉한 사건 있잖소. 신문에도 나오던디.”
“피서객만 전문적으로 살인 강도 하는 놈 말이죠?”
“잉, 그거유 그거. 그니께 이렇게 오붓~하게 두 분이서 같이 계시면 참 좋을 거 같은디.”
 

최근엔 모방 범죄까지 종종 발생하는 모양이니 주인장의 설레발도 완전히 허튼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내킨 것은 아니지만, 비 오는 밤에 처량한 꼴로 돌아다닐 수도 없어서 종우는 할 수 없이 싼 값에 묵기로 결정했다.
 

방은 낡았지만 의외로 넓고 괜찮았다. 게다가 동숙하는 상대도 종우의 마음에 들었는데, 큼직한 선글라스에 철로 된 얇은 작대기 같은 것을 쥔 폼이 영락없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오경훈입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어딘가 어두울 것이라는 종우의 편견과 달리 경훈은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는데도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 내리는 시골, 편의시설조차 없는 방 안에서 두 사람은 각자 들고 왔던 맥주 캔을 금방 비워버렸다. 어느새 둘은 형아우하는 사이가 되었다. 경훈이 한 살 많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플라스틱 안약통을 만지작거리던 경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혼자서 괜찮겠어요?” 


경훈은 대답 대신 씩 웃더니 능숙하게 지팡이를 움직여 방 밖으로 나갔다. 어수선한 시기에 모처럼 서로 마음이 맞는 여행객이었다. 특히 종우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질 일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이거 받아.”
 

눈이 불편해서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경훈은 오는 길에 주인 방에 있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얻어 온 모양이었다. 왠지 몸이 불편한 사람을 고생시킨 것 같아 종우는 내심 미안했다. 두 번째 술자리도 금방 맥주가 동났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눈꺼풀이 심하게 무거웠지만 종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제가 다녀올게요.”
“아, 그럴래? 더 마시려고?”
 

경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친한 척하는 게 아니었는데.
 

“예? 예. 형은 더 안 마셔요?”
“아니. 마셔.”
 

경훈은 자신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나자 당황했지만 종우는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경훈에게 술을 잔뜩 먹이려는 분위기였다. 종우는 대청마루 형태의 복도를 지나 냉장고가 있는 주인 방을 노크했다. 그러자 잠겨 있지 않은 문이 열렸다.
주인은 이미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종우는 순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피서지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형! 여기 우리 말고 누가…….”
 

종우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눈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복도에 쓰러졌다. 사지가 저릿했다. 주머니에서 안약통이 굴러 떨어졌지만 손가락을 움직일 힘도 없었다.
방 안에서 초조하게 밖을 내다보던 경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품에서 칼을 꺼냈다. 경훈의 주머니에서 삐져나와 있는 안약통을 보며 종우는 장님이 무슨 안약을 갖고 다니겠느냐는 의문을 겨우 떠올렸다. 종우의 술에 약을 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경훈은 무릎을 꺾으며 문지방에 허리를 걸치고 쓰러졌다. 종우는 혀를 찼다. 요즘 모방범이 생겼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모처럼 장소를 옮겨볼까 했는데.
참을 수 없을 만큼 졸음이 몰려왔다.
흐려지는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 보다가 두 사람은 문득 깨달았다.
내일 아침, 이곳을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잠에서 깨는 쪽이다.
 

  

 

참가상 4.

A씨의 습득물

캬앙—.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토해낸 건 거의 돼지만큼 뚱뚱한 고양이였다. 툭 하고 둥근 뭔가가 굴렀다. 고양이는 그것을 물고 가던 중이던 모양이었다. 잔뜩 취한 A는 놀라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발을 헛딛고 심하게 비틀거렸다. 빌어먹을 괭이 새끼. 욕을 퍼부으며 A는 발치에 와 닿은 그것을 퍽 소리 나게 걷어찼다. A가 걷어찬 물건이 위로 좀 떠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져 두어 번 퉁퉁 튀었다. 절반은 긴 털이 달리고, 절반은 편편했다. 편편한 면의 중간에는 솟은 부분이 있고, 위에는 두 개의 둥근 구멍이, 아래에는 길게 찢어진 입구가 있었다. 반달 모양의 고리 같은 것이 양쪽으로 나와 있기도 했다.  


얼굴이랑 비슷하네. A는 취해서 몽롱한 머리로 생각했다. A는 피식 웃었다. 얼굴이거나 머리일 리는 없었다. 길바닥이니까 말이다. 갑자기 뭔가 특이한 걸 보고 있다는 생각이 흐릿한 머릿속을 채웠다. 특이한 거라면 찍어둬야 했다. A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몇 번인가 셔터를 누른 뒤, 골목길 끝에 위치한 다다연립 4층에 위치한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뇌를 난도질하는 숙취 속에서 깨어난 A는 샤워하고, 가방을 정리했다. 카메라에 흙이 묻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내용을 살펴보던 A는 비명을 내질렀다. 
 절반쯤 썩은 사람의 머리가 이쪽을 퀭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A는 고양이가 물고 가려던 둥근 물체를 기억해냈다. 머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진짜 머리였나? 심지어 자신은 그것을 발로 걷어차고, 키득거리며 사진까지 찍지 않았나? 
 

A는 벌렁벌렁 날뛰는 가슴을 누르고, 112에 전화했다. 
 

두 명의 경찰이 온 것은 이십 분 후였다. 그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이미 신고할 때 A가 말하는 정황을 듣고, 들어오기 전 골목길에서 쓰레기 수거 장소를 조사하고 들어왔던 것이다. 청소차가 돌아서 골목의 쓰레기들을 모두 수거해 간 뒤였다. 증거라고 해봤자, 주정뱅이가 찍은 흔들린 사진이 고작이었다. 그들은 A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보자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발을 씌운 마네킹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형식적인 질문을 한 뒤 장난신고로 결론짓고 돌아갔다. 경찰의 무성의에 분개한 A는 그 사진을 몇 군데 웹에 올렸다.
엽기 짤방으로 인기를 끌었다. 골목 어딘가 다른 연립에 사는 부녀회장, 통장, 이장이 왔다. 그들은 깨끗한 골목을 위해 고양이 퇴치를 호소해왔다고 했다. 시골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살인강도를 만났다는 게 정말이냐? 부동산을 운영하는 집주인이 들이닥쳤다. 이딴 사진을 올려서 이 일대 치안이 안 좋은 걸로 소문이 나 집값이 떨어지면 어쩔 거냐고 호통을 쳤다. 실종자 가족 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그들은 그 인근에서 실종된 사람들 3421명의 사진을 보내주며, A가 봤던 머리통의 얼굴과 일치하는 사진이 있는지 봐달라고 했다. 회사에서 부장이 A를 불러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 구속됐던 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범죄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연대에서 사람이 왔다. 그들은 심각한 범죄를 다루는 경찰의 안이한 자세를 성토하며, 미해결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A가 지장을 찍어주길 요구했다. A의 초등학교 동창 한 명이 전화를 걸어, 사람을 죽였다는 게 정말이냐고 물었다. 그는 목사였는데,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인은 없다고 위로했다. 모두가 A만 보면 머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번엔 경찰이 아니라 형사들이 왔다. 그들은 A의 직업과 소득, 인간관계, 사진을 찍은 즉시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캐물었다. 형사들은 시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범인 아니면 목격자뿐인데, 목격자의 경우는 대부분 제거당하지, 남는 건…… 등의 말을 중얼거리다가 또 보자며 사라졌다. 
 

A가 이제 꿈속에서까지 잘린 머리를 보게 됐을 무렵, 유명한 탤런트 K씨가 욕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모두들 A가 찍었던 머리를 잊었다. A도 잊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육 개월 후. 토요일 오전, A는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갔다. 고양이들이 퇴치되어 이제 찢어진 쓰레기봉투는 없었다. 시멘트로 낮게 벽을 세워 그 안에 든 것이 바깥으로 굴러다니지도 않게 되었다. 쓰레기봉투를 던져 넣자, 그중 하나가 풀썩 굴러 내렸다. 묶은 주둥이 부분에 기다란 털이 바깥으로 삐져나왔고 밑에 둥글게 생긴 뭔가 들어 있었다.
A는 그것을 잠시 쳐다보다가 발로 밀쳐서 쓰레기장으로 돌려놓았다. 
 

 

 

참가상 5.

공소시효 2

 시간이 없었다. 남자는 너무 오랜 시간을 망설였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 시간이었다. 하나를 원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다른 하나를 더 원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남자는 자유와 돈, 두 가지를 원했다. 열 살 남짓한 딸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온 여자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건 그 때문이었다. 그 남자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여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설득한 다음 부탁해야 했다. 추운 겨울 골목에 서서 여자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황당하면서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남자는 십오 년 전 살인을 저지르고 십사 년을 도망 다녔다. 공소시효가 일 년 남은 날에 그는 복권을 샀고 거짓말같이 일등에 당첨되었다. 세금을 제외하고 수령할 금액은 16억. 남자의 고민은 그런 행복과 같이 시작됐다. 복권의 유효기간은 일 년. 아이러니하게도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이 복권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날이었다. 당첨금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신분증과 복권을 가지고 농협중앙회 본점으로 가야 한다. 일반통장이 아닌 농협중앙회 본점 통장의 계좌도 필요했다. 수배 명단에 올라 있는 남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소시효를 넘기자니 16억이라는 당첨금이 아까웠고 16억을 받기 위해 농협으로 갔다가는 체포되고 말 것이다. 이제 마감시간이 열 시간 남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든 이야기를 끝낸 남자는 품속에서 복권을 꺼냈다. 남자는 여자에게 돈을 수령한 다음 계좌 하나를 더 만들어서 8억씩 나누자고 제안했다. 8억이 든 계좌의 카드와 비밀번호만 주면 나머지 8억을 준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그동안 딸을 데리고 있겠다는 말을 했다. 보증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경찰에 연락하지 않고 돈만 찾아주면 여자에게는 8억이 생긴다는 말을 한 번 더 강조했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 인터넷으로 복권의 번호를 확인했다.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자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남자의 말대로만 하면 8억이 생긴다. 여자는 딸아이를 안심시킨 다음 혼자서 농협본점으로 향했다.
 

남자는 딸과 함께 여자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다. 가수가 꿈이라고 했다. 남자는 돈을 받게 되면 아이에게 예쁜 옷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이 지나서 여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농협본점에 도착해서 안내를 받고 돈을 수령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남자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여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속이고 당첨금 전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딸아이를 데리고 있다지만 이곳에 경찰이 들이닥친다면 손쓸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여자아이를 해칠 용기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사람을 너무 믿은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때 여자에게서 두 번째 전화가 왔다. 시계는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자는 약속한 대로 다른 계좌를 하나 더 만들어서 8억을 입금했다고 했다. 남자는 확실히 해두기로 했다. 
 

“딴생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당신과 딸 모두가 좋습니다. 딸의 목숨을 욕심과 바꾸지 말아요.”
 

여자는 잠깐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그럼 이렇게 해요. 지금 당장 아이를 데리고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서 자정까지 기다려요. 자정이 지난 다음에 나랑 만나서 돈을 확인하고 아이와 교환해요. 나를 못 믿겠다면 그렇게 하자고요.”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남자는 안심했다. 괜찮은 생각이었다. 남자는 딸아이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여자에게서 전화가 온 건 정확히 자정이 되어서였다. 약속장소는 ATM 기계가 있는 편의점 앞이었다. 계획부터 시작해 약속 장소까지 맘에 들었다. 남자의 불안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남자는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약속 장소로 갔다. 여자는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를 보고 아이가 달려가려 하자 남자는 손을 놓아주었다. 여자는 딸아이를 꼭 껴안았다. 그런 다음 딸을 내려놓고 남자에게 통장과 카드를 주면서 비밀번호도 말해주었다. 남자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면서 모녀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카드를 기계에 넣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계좌에 8억이 들어 있었다. 여자는 약속을 지켰다. 남자의 코끝이 찡해졌다. 순간 그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남자는 수갑을 채운 사람과 밖에 있는 모녀를 번갈아 보았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이 경찰은 어디서 나타났다는 말인가? 수갑을 채운 경찰은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동유괴 혐의로 체포합니다.”
 

남자는 밖으로 끌려 나오면서 원망 어린 눈으로 여자를 보았다. 왜 그랬을까? 어찌되었든 남자는 자유와 돈 모두를 잃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 2011-12-0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울'은 남자의 심리가 잘 이해되지 않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해서 좋네요.
'찢겨진 기억'은 주인공이 계속 수첩에 뭔가를 적고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걸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지만,
문장도 좋고 굉장히 잘 쓰셨네요.
'일찍 일어나는 새...' 과연 누가 더 일찍 일어났으려나 궁금합니다.
'A씨의 습득물'은 요즘 화제가 됐던 3초 뒤에 이해가는 그림 같네요. 생각해보니 주인공이 으흠..?
'공소시효2'는 진짜 궁금하네요. 그 애엄마는 왜 그랬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