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렸나
스티브 와인버그 지음, 신윤주.이호은 옮김 / 생각비행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미국의 최초의 여기자겸 작가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하지만 엄밀한(또는 어떤) 의미에서는 과연 이 책이 정말 평전으로서의 완벽한 면모를 갖춘 책인가에 대해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의문의 여지는 남았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 정도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평전이라고 하느니만큼 타벨이 태어난 배경과, 어떤 교육 과정을 거쳤으며 누구와 교우했는가 하는 인생 배경, 또한 그녀의 주요 업적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주요 쟁점인 록펠러와의 관계 등.  

타벨은 그다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는 못했다. 타벨이 태어난 때는 미국이 막 유전 산업을 시작하기 즈음이었고, 타벨의 부모는 같은 일은 아니지만 유전 사업에 따른 부가적 사업, 그중 기름을 담아두는 통 즉 배럴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타벨의 아버지가 그 일을 한 것이 작은 불씨가 되어 나중에 록펠러와 어떤 인연이 되는가를 책은 지루하지만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정 분위기는, 타벨이 어린 시절 동생이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는데 고통속에 신음하며 죽었던 기억은 평생토록 그녀를 괴롭혔지만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화목했던 것 같다. 그런데 비해 록펠러는 불행한 가정환경 가운데서 자라 자수성가 했다.    

사실, 타벨이 나고 자랐던 시기는 1800년 중반인데,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시기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그다지 관대했던 시기는 아니었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그렇게 많이 주어졌던 것도 아니고, 사회에 진출해서 일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으며, 참정권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타벨의 부모는 딸에게도 교육의 기회는 공평하게 제공해 주었고 그래서 타벨은 비교적 무난하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해도 여학생은 본인을 포함해 단 두 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대학을 들어갈 때부터 기자가 될 꿈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졸업해서 고향으로 돌아와 학교에 학생이나 가르치는 교사가 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기자의 꿈을 갖게되고 그로인해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오게 된다. 이때를 전후로해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기도 한다.       

그녀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건 어찌보면 필요불가결한 선택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요즘엔 결혼도 하면서 자기 일에도 성공한 우먼 파워들이 많지만, 당시로선 기자로써 활동하면서 동시에 결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초원의 빛> 같은 서부 개척 시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책 사이 사이에 타벨의 사진이 몇 점 들어가 있는데, 아는대로 그 시대 서양의 여성들이라면 레이스가 달린 브라우스에 머리는 풍성하게 위로 묶어 올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스커트를 입고 살았다. 기자로 활동했을 타벨 역시 그러고 일을했을거라 생각하니 왠지 이색적이란 느낌이 든다. 사실 그녀는 '탐사보도'로 유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탐사보도'란 사건 이면을 파헤쳐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책상에 앉아서만 되는 것은 아니고, 발로 뛰어 자료를 모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타벨은 이 일에 있어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지금이야 책도 많고, 이메일도 있고, 스마트 폰도 있어 자료를 구하는 것이 편하다지만, 당시로선 교통이나 통신이 지금만큼 발달되지도 않았는데 자료를 모으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다면 그 '초원의 빛' 패션은 얼마나 거추장스러웠을까,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난 솔직히 타벨이 어떤 식으로 자료를 모았을지가 궁금한데, 그런 것들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타벨은 그런 탐사 보도로 링컨과 나폴레옹을 재조명했고, 당시 선한 기업가로 알려진 록펠러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했다. 사실 이들은 인간의 상상에 의해 덧씌워진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 링컨은 신앙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진영에선 거의 신화와 같은 존재로 다뤄지기도 하는데, 타벨에 의해 이 부분이 많이 깎여지면서 좀 더 냉철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폴레옹과 함께)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타벨하면 탐사 보도고, 탐사 보도하면 타벨을 떠올리는 건 이제 일도 아니게 됐다. 하지만 당대 그녀가 있을 수 있기까지 가장 공이 컸던 사람은 매클루어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잡지를 창간했고, '전속 작가'제를 만들어서 물심양면으로 타벨을 도왔다. 타벨이 그 유명한 링컨과 나폴레옹을 재조명하는 작업도 매클루어가 아니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록펠러의 비리 역시 폭로할 수 있었던 것도. 일을 할 땐 둘이 죽이 잘 맞아 한때는 연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매클루어는 이미 아내가 있고 또 아내를 사랑하지만 일부일처제를 부담스럽게 여겨 청교도적인 타벨에게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책은 '의도적'으로 타벨과 록펠러의 같으면서도 다른 점을 부각시킴으로 독서의 효과를 극적으로 높이려 했다.  이 둘의 같은 점은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그 계율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투철한 직업관 또는 사명 의식은 둘이 비등해 보인다. 다만 하는 일이 다르다보니 결과 또한 다르게도 보인다.  이쯤해서 내가 제기하고 싶은 건, 이 책이 과연 온전한 평전의 면모를 갖췄느냐는 것이다. 사실 평전도 그것을 쓰는 작가가 어느만치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부제처럼,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을 쓰러뜨렸는가?'에 집중하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타벨과 록펠러의 관계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할애해 버렸다. 그러므로 정말 타벨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려고 했을까에 일말의 의구심을 갖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록펠러에 대해서 많은 작가들이 평전을 썼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타벨 역시도 이 한 권 가지고는 그 사람을 온전히 조명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즉 말하자면 저자의 작가적 취향이 많이 반영된 평전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피해갈 수 없는 거겠지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한 거인의 실체가 벗겨지는데는 기자 정신만으로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인간의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했다. 타벨이 록펠러의 실체를 벗기는데 나름 이유가 있기도 했다. 록펠러가 그녀의 아버지가 하는 사업에 타격줬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록펠러를 폭로하게 되었다는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일 타벨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진실을 규명하는 데있어 인간은 얼마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타벨이 자신의 감정을 정제시키고 오직 진실만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을까? 난 그녀가 순도 100%를 자랑할 수 없을 거라고 본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역사는 또 굴러간다. 확실히 생각해 볼만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게다가 록펠러는 한 여기자에게 자신이 까발려졌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다(또한 그렇게 많은 록펠러 평전에 타벨은 어느 정도 차지하고 있는지? 과연 언급이나 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인물과 역사는 끊임없이 연구되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보다.   

그런 것처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명의 저널리스트로 인해 록펠러라는 인물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는 것에만 끝나선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전까지 록펠러를 하나님이 축복하신 선한 기업인이라고 알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명백히 기독교의 잘못이고, 록펠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다. 또한 기독교 가르침의 모순을 여지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성경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는 구복신앙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벌어들인 재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돈을 벌기위해 얼마나 많은 착취와 비리를 감당해야 했는가? 바로 록펠러는 타벨로 인해 이 모순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같은 기독교 신앙을 가졌고, 똑같은 사명을 가졌다. 하나는 돈을 버는 사명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사명. 둘은 다 자기 사명에 충실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둘은 그다지 만족한 말년을 보낸 것은 아니다. 타벨이 록펠러의 비리를 밝혔다고 해서 그녀의 말년이 행복했던 건 아니고, 록펠러 역시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행하거나 비참했던 것은 아니다.  누구는 남의 비리를 밝혀 좋은 게 뭐가 있느냐? 덮고 갈수있는 건 덮고가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복잡하다. 단지 우리가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그렇게 사는 동안 자기 사명에 충실했다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누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삼성을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걸 읽으면서 몇년 전에 있었던 이랜드를 생각했다. 물론 삼성이 일으켰던 윤리적 파장이 이랜드의 그것보다 큰 바람에 묻혀진 느낌도 들고, 그 일 이후 이랜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기독교 기업 윤리란 측면에서 이랜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솔직히 록펠러가 그렇게 선한 이미지 속에 그런 이면을 갖게된 건 어떤건지 모르겠다. 일종의 기업인의 생리 같은 걸까? 아니면 돈 앞에 무력한 개인의 속성인가? 알 수는 없다. 단지 아는 건 인간은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그 악한 본성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며, 인격도야의 길은 평생해야한다는 교훈 정도랄까? 사실 타벨로인해 록펠러가 추악한 일면이 까발려지긴 했지만, 그가 사회에 끼친 영향는 평가절하 되서는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록펠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역사를 보는 눈은 어느 한쪽으로 경도 되어서는 안되며 통시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주 선하지도 않지만, 아주 악하지도 않다.  

솔직히 기독교인의 직업 윤리로 봤을 때 나는 타벨이 평생 유지했던 그 자세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록펠러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사회에 환원하고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그것 보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가지 아쉬움 속에서도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고 본다. 세상에 지금까지 몰랐던,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란 여인이 살다가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는 있어 보인다.     

 

   

아이다 미너바 타벨(Ida Minerva Tarbell, 1857년 11월 5일 ~ 1944년 1월 6일)은 미국의 언론인으로 미국의 진보시대에 유력한 지도자였다. 그녀의 1904년 '스탠다드오일회사'라는 책이 가장 유명한데, 이는 뉴욕 타임즈 신문이 선정한 미국 20세기 저널리즘중 가장 중요한 100개의 보도에서 5번째로 뽑혔다. (위키 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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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포핀스님의 서재에 이 책 내용을 본 적이 있어서 좋았는데
타벨이 링컨과 나폴레옹에 대해서도 재조명했군요, 이 책 급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stella.K 2011-02-08 12:17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록펠러에 비하면 링컨과 나폴레옹의 할애가
그다지 많지 않아 아쉬웠어요.
그녀가 어떻게 재조명했을지 좀 더 자세한 걸 알고 싶더라구요.
앞으로 타벨의 저작물이 번역되서 나올거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평전을 밝혔다시피 뭔가 모르게 치우친감이 있어서
아쉬워요. 오타도 생각외로 많은 것 같구요.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고 묻고 싶어진다능.
별점에 반개도 취급된다면 3개는 박하고 4개는 좀 많고
3개반이 적당할 것 같은 책이어요. 참고하시길.^^

카스피 2011-02-0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록펠러는 경쟁자를 무자비하게 제거하면서 기업을 인수 합병시켜서 대 재벌이 되었지요.석유 독점 재벌인 스탠다드 오일이 무너졌다고 했는데 수십개의 회사로 나뉘어지면서 그 지분 관계가 베일에 휩싸여 지금도 누가 실질적인 지배자인지 모른다고 하더군요.겉으로는 무너져 보이지만 결코 무너진것이 아니라는 거죠.

stella.K 2011-02-08 10:22   좋아요 0 | URL
기업인이 그래서 무서운거로군요.
이쯤되면 필요악이라고 말해야하나? 여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