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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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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만 대강 읽고 덮어놓은 『다정한 편견』을 다시 들춰보게 된 건 지인의 블로그에서 우연히 읽은 칼럼 한 편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손홍규가 경향신문에 쓴 칼럼이었다. 지인은 칼럼을 소개하면서 '세상에 작가가 필요한 이유'라는 제목을 달았다. 칼럼을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는 저절로 깨닫게 된다.

 


기억이 우리를 본다

(경향신문 2014-10-20)

 

슬픔과 고통으로 한 번 구겨진 사람은 제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은박지가 그러하듯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해를 기억한다. 나른한 휴일 오후였고 태양은 맹금류처럼 서쪽 하늘로 느리게 활강하는 중이었다. 마을 회관 앞에서 놀던 내게 동네 어른 가운데 누군가 달려와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전했다. 탈곡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절단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던 동네 어른의 말투는 안도와 경악을 오갔는데,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로서는 아버지의 오른손목이 뭉텅 잘려나가지 않아 다행이라는 건지 집게손가락이 잘려나간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질 만큼 슬픈 일이라는 건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마루 끝에 앉아 노을이 물든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땅거미가 내리고 여기저기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병원에 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어둠이 번져오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난생처음 어떤 방식으로 세상이 어두워지는가를 알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소가 울어댔고 개가 낑낑거렸다. 쇠죽을 쑤어 외양간 여물통에 부어주고 개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할머니의 상을 치른 지 삼 년이 되지 않았기에 마루 한 귀퉁이에는 상청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할머니 영정 앞에 밥과 국을 올렸던 걸 떠올린 나는 부엌의 큰 솥을 부신 뒤 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설익은 밥 한 그릇과 김치 한 보시기를 상식으로 올리고 나니 더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자 마당을 채운 어둠이 내게 와락 덤벼드는 것 같았고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숨을 죽인 채 터뜨리는 비명이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자정 즈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왔으나 우리 세 식구 가운데 누구도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 이 슬픔도 언젠가는 잊힐 것이니 굳이 반추하여 견고한 기억으로 남길 필요가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도 나는 그날 밤 느꼈던 쓸쓸함과 두려움을 되풀이해서 겪어야 했고 그 탓에 기억은 견고해졌다. 그런 순간은 언제나 불현듯 찾아왔다. 이를테면 어느 날 무심코 집안 구석에 버려진 낡은 목장갑을 발견했을 때처럼. 그 목장갑에도 집게손가락이 없었다. 그러면 집게손가락 없는 목장갑을 끼고 다니던 아버지가 떠오르게 마련이었고 뒤이어 여지없이 그날 밤 홀로 마루 끝에 앉아 부모를 기다리던 어린 나를 보게 마련이었다. 아마 한쪽 팔을 잃은 누군가를 안다면 그이의 한쪽 소매가 없는 셔츠를 볼 때마다 이와 비슷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농기구를 챙겨 새벽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마저 예사롭게 볼 수 없었고 아버지의 등에 새겨진 침묵을 해석하려 애써야 했다. 아버지는 이전과 분명히 다른 존재였으나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나는 괴로웠다.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그의 시 “기억이 나를 본다”에서 이처럼 문득 찾아오는 기억을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이라고 불렀다. 내가 눈을 감아도 기억은 눈을 뜬 채 나를 따라온다. 아버지 역시 그랬던 것이리라.

 

한 번 지나간 순간은 재현할 수 없지만 앞에 놓인 무수한 시간들 안에서 그 순간은 수많은 변형태로 돌연 되살아나게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참혹한 순간을 겪어야 했던 이들에게 이제 그만 떼쓰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자들은 정녕 알지 못한단 말인가. 그이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일상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한 번 구겨진 그이들은 아무리 반듯이 펴도 잔금 하나 없던 매끈한 은박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참혹했던 순간의 변주에 불과한 영원히 고통스러운 순간을 매번 맞닥뜨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책을 읽다 ‘세월’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문득 오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작가는 우리가 보지 못한 진실을 가장 아름답고, 또 명확한 언어로 건드린다. 이것이 지인이 손홍규의 칼럼을 소개하며 밝힌, 세상에 작가가 필요한 이유였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였다. 칼럼을 읽고 나자 『다정한 편견』에 실린 글들을 제대로 읽고 싶어졌다.

 

이 책 역시 저자가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손홍규의 로그인'을 묶은 산문집이다.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우직하고 따뜻한 애정과 함께 부조리한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진실한 주장을 담았다. 4.5매 내외라는 분량상의 제약 때문인지 한 꼭지의 글이 두 페이지를 넘어가지 않는다. 분량이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한 꼭지마다 주는 울림이 너무 커서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고 넘어가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p.195 작가와 작품

여전히 나는 작가와 작품을 오롯이 분리해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늘도 내 사유와 감각의 얕음보다는 나라는 인간의 됨됨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내 글이 못난 건 창작방법의 한계 때문이거나 부르주아가 아니어서가 문학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못된 녀석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작가와 작품을 오롯이 분리해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손홍규라는 사람이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에 휘둘리지 않는 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행간 사이사이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특히 좋았던 점은 생경한 순우리말을 익힐 수 있었다는 것.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옆에는 핸드폰 국어사전 어플이 켜져 있었다.






p.33 싸목싸목

밥 먹는 걸 흐뭇한 얼굴로 내내 지켜보며 당신은 싸목싸목먹으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넣어주곤 했다. 싸목싸목. 지금은 이 낱말을 천천히라는 뜻으로 풀어 새기지만, 이런 뜻풀이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정서적인 무언가가 여전히 남는다. (중략) 한 생을 두고 우리가 자신의 길을 싸목싸목 가듯이 밥 한 공기 싸목싸목 뜨고 사람 사이도 그처럼 싸목싸목 두터워지는 거라는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싸목싸목, 발싸심, 흠구덕, 신산스럽다, 앙구다, 버성기다, 눙치다, 드잡이질 등등소풍날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놀이 종이를 찾듯, 그의 글 속에서 심심찮게 발견하는 순우리말은 사전을 찾으며 배우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우리가 보지 못한 진실을 가장 아름답고또 명확한 언어로 건드린다누군가 내게 세상에 작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물어본다면, 나는 조용히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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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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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항에서 태어나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쭉 살았다. 대입을 준비하던 고3 시절, 친구들은 포항이라는 시골을 벗어나고 싶어 했고 가깝게는 대구나 부산으로, 멀게는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어 했다. 달리 집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서울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나는 집 근처 대학으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4년을 보냈다. 실패도 없었지만 발전도 없었던 나날. 그러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편집자가 되고 싶었고, 지방에는 출판사가 없었던 터라 취직을 위해 자연스럽게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회사는 역삼역 근처에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나가보면 다들 목에는 사원증을 걸고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외국은커녕 포항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내게 테헤란로는 심정적으로 뉴욕과 같은 곳이었다.

 

p.10 서문 중에서

자귀 짚다라는 말이 있다. 짐승을 잡기 위해 그 발자국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나라는 짐승은 무슨 먹이를 찾아 어떤 발로, 어떻게 걷고 있을까. 어떤 길을 다니고, 어떤 풀의 냄새를 맡고, 어디서 물을 먹으며, 가끔씩은 멀리 보기도 할까. (중략)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어느덧 서울로 거취를 옮긴 지도 5년이 넘어간다. 그 사이 나는 왕십리 건대입구 수유 합정을 오가며 네 번의 이사를 했고, 출판사 편집자에서 서점 매니저로 이직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남자와 결혼을 했고,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과 자주 시간을 보낸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서울의 곳곳을 누비며 이곳에서만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만끽했고, 지금의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을 서울에서 배웠다. 나라는 짐승의 자귀를 짚어본다면 분명 그 배경은 서울일 것이다. 이곳에서 보낸 5년이 내 인생의 변환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켰다


『나의 사적인 도시』는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간 저자가 뉴욕에서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정리해나간 아주 사적인 뉴욕기다. 그녀가 느낀 뉴욕은 5년 전 내가 느꼈던 서울과 매우 흡사했다.


p.75 이방인

뉴욕은 나에게 어떤 곳일까. 어느 쪽이라 말하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뉴욕에서 미학적으로 훨씬 만족하고 있고, 그 이유 때문에 어쩌면 나는 고향보다 뉴욕에 더 끈끈한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붕 뜬 이방인 신세인 것도 그리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상처가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말과 관련된 이유일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실감.

 

나 역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실감으로 상처를 입을 때가 많았다. 내가 취직했던 출판사는 주로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책을 만들던 곳이라 그런지 일반 출판사와는 다르게 패션 업계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다들 옷도 잘 입고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 제품만 쓰니까 알게 모르게 주눅이 많이 들었다. 작가들과 미팅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가 낯설고 어려웠다. 다른 에디터들은 요즘 핫하다고 하는 장소, 사람을 얘기하는데 나는 도통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땐 사회 초년생이었고, 이제 막 서울에 올라왔고, 서울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p.214 공기 속 단어들, 종이 위 시인들

신문 지상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미학적 조화를 쉽게 볼 수 없는 문화에서, 이미지가 가진 의미에 둔감한 사회에서, 독자가 읽고 배울 만한 평론이란 것이 부재한 문화에서, 텍스트의 시각적 미학을 평가하는 능력이 역사적으로 줄어온 문화에서 온 나에게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많은 자극과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내게 서울은 상처의 기억보다 성장의 기억을 더 많이, 더 자주 선물한 도시였다. 그녀는 로버트 크릴리 같은 시인과 인사를 나눌 수 있기에 뉴욕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나에게도 서울이 그랬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들의 강연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서점과 영화관과 미술관은 나에게 많은 자극과 즐거움을 주었다.

 

p.138 재즈 인 뉴욕

모국을 떠나 산다는 건 나를 구성하는 상당 부분이 그 의미를 상실함을 뜻한다. 이를테면 어떤 음악을 즐겨들었다는 일 따위가 그렇다. 롤링스톤스나 루 리드를 들은 것은 그렇다 해도, 산울림이나 동물원을 들으며 자랐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외국 생활 초기엔 대개 취향의 공황을 겪게 된다. 그 공황은 현지 문화에 대한 관심과 탐색을 통해 서서히 메워지는데, 내 경우에 그 공황의 틈을 타고 스며든 것이 재즈였다.

 

서울 사람이 아니었기에 쉬는 날이면 잡지에서 본 예쁜 가게를 찾아 부지런히 낯선 동네를 찾아다녔고, 서울 사람이 아니었기에 보고 싶은 전시가 있거나 관심 있는 저자의 강연이 있는 날이면 빼놓지 않고 다녔다. 덕분에 나는 서울 생활 초기에 겪었던 취향의 공황을 나만의 관심과 탐색을 통해 서서히 메워갔고, 그런 시간이 5년쯤 쌓이자 물건이나 옷을 살 때, 책과 음악을 고를 때, 사람을 사귈 때 실패하지 않는 나만의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p.22 좁게 살기

사는 방법엔 넓게 사는 방법과 좁게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피카소는 넓게 살았지만 모란디는 좁게 살았다. 어떤 사람은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두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평생 한두 명의 친구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하고 살고,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만 하고 산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큰 집에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좁은 집에 산다.

좁은 집에 살려면 집에 두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불필요하고 탐탁지 않은 것은 과감히 내다버리는 것이 좋고, 그보다 좋은 건 애초부터 안목을 가지는 일이다. 그래서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곁에 두고 크게보며 살아야 한다. 그 방법만 잘 터득하면 좁은 집에 사는 게 그리 답답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난 지금 그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p.246 비싼 여자들

한 사람의 컬렉션을 들여다보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다. 허구한 날 카탈로그로 주문한 옷만 입어도, 맛없는 치즈를 내놓아도, 벽에 걸려 있는 게 흥미롭다면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벽에 걸린 게 부실한 이유가 돈이 없어 그렇다는 건 설득력이 별로 없다. 돈이 없다면 눈이 있으면 된다. 아이가 어쩌다 잘 그린 그림이나 잡지에서 본 사진을 오려 걸어놓을 수도 있고, 길거리에 흥미롭게 찌그러진 타이어라도 골라다 놓을 수 있다.

  

『반 고흐 인생수업』이라는 책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글귀가 있다. "파리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를 품고 키워줄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진 도시를 선택하여 살 권리가 있다. 여행을 통해 낯선 도시를 적극적으로 느끼고, 그 가운데에서 자신을 품어 키워줄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나는 서울을 떠올렸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나를 품고 키워줄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진 도시. 나에게 그 도시가 서울이었다면 저자에게는 뉴욕이었다. 『나의 사적인 도시』는 뉴욕보다는 되려 나에게 사적인 서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자신을 품고 키워줄 수 있는 도시를 이미 만난 사람에게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이 책은 근사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미 그런 도시를 만난 사람이라면 나처럼 이 책이 그간의 경험을 곱씹어보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고,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사적인 도시를 찾아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게 만들어 줄 테니.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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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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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다 내음이 물씬 나는 산문집이 또 있을까. 바람과 파도로 빚은 듯한 산문. 책을 비틀어 짜면 금방이라도 소금기 가득한 물이 후드득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새벽 어시장의 활력이 느껴지는 것 같은 생생한 표현과 맛깔스러운 사투리, 걸쭉하고 능청스러운 입담,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야무진 기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게 '한창훈'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의 소설이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어느 책을 살펴보아도 '바다와 섬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눈에 띄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문도에서 태어나 바다 곁에 머물며 그곳에서 얻은 언어와 정서로 글을 지었으니 그의 글에서 바다 내음이 짙을 수밖에. 그가 쓴 산문집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는 그의 글쓰기가 어디에서 출항하여 닻을 내리는지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한창훈의 소설을 읽는 맛은 냉동식품이나 방부처리된 포장식품만 먹다가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를 먹는 맛과 같다고나 할까. 도시적인 감수성을 여유있게 비껴가면서도 재미가 여간 아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이렇게 정면으로, 능청스럽고도 건강하게 그릴 수 있다는 건 그의 작가적 역량도 역량이지만 남다른 체험의 소산일 듯싶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그의 소설을 읽고 평한 말이다.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 같은 맛. 해녀의 말간 맨 얼굴처럼 수수하지만 진솔하고 건강한 문장을 뜻하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전에 본 적 없는 말간 문장에 반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밑줄을 그었다.

 

p.34

항해와 노동으로 채워졌던 이십대 후반의 시절은 기억 속에 촘촘한데, 삶의 매 시기마다 닻 주었던 자리는 이렇듯 흔적이 없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저 들어온 식혜 그릇'(p.59)으로 표현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 일은 '얼마 되지 않은 영토를 둘러보는 가난한 왕처럼 길을 나선다'(p.101)고 표현한다. 그의 이런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 같은 문장의 맛은 바다를 표현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p.97

바람 불지 않는 바다는 적도뿐이다. 그래서 바다의 특산품은 대구나 참돔이나 돌김보다 바람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다.

 

p.109

당신이 고향에 두고 온 것들 중에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

몇 년 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유학 온 여학생에게 내가 물었다. 흔히 가족이나 친구, 또는 연인 중에 하나를 댈 텐데 서울 생활 삼 년째라는 그녀는 바람이라고 대답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독한 바람. 극도로 추웠던 바람. 너무너무 지겨웠던 그게 가장 그리운 거란다. 허락한다면 고향에서 한 사흘 그 바람만 맞다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가 됐다.

하매, 여인네는 서울 가는 기차에 몸 실었겠다. 4년 동안 그녀를 감싸고 있었던 바람과 파도와 소금기가 문득 아득한 먼 옛날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불현듯, 이곳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면 울란바토르 출신의 여학생이 그러했듯, 그 사나운 바람과 거친 파도가 그립구나, 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는 한창훈이 글을 통해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 같은 맛을 낼 수 있도록 비옥한 땅이 되어주고 햇볕과 물을 제공해준 창작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다. 우리는 뇌나 심장과 같은 신체기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하나만 썩거나 발톱 하나만 빠져도 잠을 못 잔다. 그에게는 썩은 이, 빠진 발톱 같은 존재가 바로 섬사람인 것이다. 있는 자의 얘기를 하면 그건 정치지 문학이 아니라고, 그래서 이 땅에서 가장 소외받은 섬사람을 소재로 글을 쓰는 거라고 말하는 작가 한창훈. 자신만이라도 잊고 사는 변방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자꾸 확인시켜서 중심만을 위한 삶이 아닌 온전한 한 덩어리가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삶을 궁리하는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p.322 초판 작가의 말

각자 다른 주민번호처럼 그들은 자신만의 율법과 국경과 보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걸어다니는 공화국들이여 만나주어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흔적이자 이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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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 특강 - 생각 정리의 기술
김민영.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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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서평 쓰기에 관심이 많은 터라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읽었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내용은 없고 서평 쓰기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만 계속 반복되어 조금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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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9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리뷰 - 당신이 생각하지 못한
김리뷰 지음, 김옥현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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