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즐거움 - <걷기예찬> 그 후 10년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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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월을 반영한 걷기

 

전작인 <걷기예찬>보다 고집스럽던 저자의 생각이 유해졌다. 우유부단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럼으로써 읽기가 더 편해진 건 사실이다. 이전 책과 겹치는 내용도 적지 않지만, 챕터별 분류가 더 선명해서 체계적으로 내용을 수용하기 좋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먼저 읽고 전작인 <걷기 예찬>을 읽으면 더 치밀하고 섬세하다고 느낄 것 같다.


이전 책에 비해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성의 걷기와 육체적 소멸에 따른 변화를 언급한 내용이다.


81p 레베카 솔닛 나 역시 대다수의 여자들처럼 너무 많은 포식자들을 만나다 보니 스스로 먹잇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남자는 아무데서나 자도 되고 아무 길이든 태평하게 다닐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다고 생각한다.


147p 자클린 십 년 동안 나는 생트 빅투아르 산에 갈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아니면 어쨌든 마지막 게절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왔다. 대퇴골 경부 골절이나 심장에 느껴지는 피로만으로도 포기하기에 충분했다. (중략) 그래도 나는 노력한다. 그리고 분명히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 이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지금 내가 더욱 열심히 글을 쓰도록 부추기는 것 같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노잣돈처럼 늙어가는 일을 돕는다.


걷기를 통해 비행청소년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단체도 소개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용의 변화는, 저자가 타인과 공감하며 걷는다는 걸 의미한다. 걸으면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적어준 것 같은 공감대 형성의 목적에는 여전히 충실하다. 다만 내가 이런 책들에 익숙해진 덕분에 신선함이 주는 감동이 덜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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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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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상을 많은 예시와 함께 쉽게 설명해주지만, 반면 예시가 너무 강해 프레임을 희미하게 만든다. 저자의 감성이 넘쳐서 이야기를 보는 사람에게는 좋을지 모르나, 구조를 보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진다. 단정적인 어투는 명료하지만 반발심이 들 수도 있다. 장점과 단점이 한끝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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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김호영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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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긍정하는 공감


마르슬랭은 얼굴이 수시로 얼굴이 빨개지지만 정작 얼굴이 빨개져야 할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는다. 친구들이 얼굴에 대해 계속 질문하자 마르슬랭은 점차 친구들을 피하고 혼자가 된다. 그때 르네가 이사를 온다. 르네는 재채기를 하는 습관이 있어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얼굴색과 재채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두 아이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림이 만화컷으로 되어 있어 깨알같은 재미가 곳곳에 숨어 있다. 심각한 장면까지도 유머로 승화하는 저자의 재치가 돋보인다. 르네의 재채기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면 저자가 얼마나 세심한지도 알 수 있다.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 마르슬랭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모든 인간이 같을 수가 없는데, 그 다른 점을 우리는 감추거나 누르고 산다. 언젠가 그 다름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보고 우리는 불행해진다. 그러나 나의 다름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 한 사람만으로도 불행은 사라지고 그만큼 행복이 내 곁에 머무른다.


마르슬랭과 르네가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성장했을까. 과연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었을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그들은 동심을 회복하고 변치 않는 우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도.


한 번 만들어진 희망이 계속 이어지는 영속성의 발견은 미래를 긍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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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책세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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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나 철학가 및 문학가를 소개해주는 부분이 되레 재미있으니 책의 본질에서 벗어난 격이다. 물론 공감되는 내용이나 깊이 있는 사유는 흥미롭다. 반면 그만큼 연결고리가 약한 내용이나 단정적인 어투는 다소 거슬린다. 드물게나마 빛나는 구절이 분명 존재하기에 읽어봄직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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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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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 현대문학


걷기란, 기획되고 규정된 사회 속에서 일탈을 의미한다. 걷는 동안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다가 거처를 정한다”. 때로는 시간의 제약마저 벗어버리는데, 그때 자기 몸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음으로써 상처 입은 세계관을 회복한다.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속도대로 살아가는 것이 걷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첫 문장에서부터 빨려 들어갔다. 서문의 압축적인 내용에 비해 본문은 장황하지만, 장황하다는 것은 그만큼 흥이 넘친다는 뜻이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수다를 감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다소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금만 익숙해지면 그들이 걷는다는 행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평소 그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죄다 드러나서 흐뭇해진다. 그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지적 유희가 이루어진다.


걷는 속도로 세상을 보면 시시콜콜한 것들이 다 눈에 들어오는데, 그 작은 것들을 저자는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글로 옮겨놓았다.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그 풍경을 내 머릿속에 끌어다놓을 수 있을 정도이다. 거장들의 묘사 또한 일품이다. 알베르 카뮈가 고대도시의 폐허에서 걸으며 쓴 글 이따금 무언가 메마르게 탁 부딪치는 소리,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곤 하는데 그것은 바로 돌들 사이에 가만히 엎드려 있던 어떤 새 한 마리가 문득 날아오르는 기척이었다.”는 잠자고 있던 감각 하나를 일깨우는 듯했다. 육체적 행위의 가장 기본 단위인 걷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 또한 고찰해볼 수 있다. 걷기가 사색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걷기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향유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걷는 행위를 향유하는 동지로서 이 책을 읽는 행위 또한 즐거웠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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