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조리사 메뉴 중에 '선'자가 붙은 것이 세 개 있다. 호박선, 오이선, 어선(또 포뜨기다. 으윽!).

이는 다시 말해 한식의 족보에 '선'이라는 유형의 요리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인데, 

왜 나는 지금까지 얘네들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지??

 

대충 검색하니 선은 한자로 膳이고 채소를 (볶아서) 쪄낸 것을 말한다고.

호박선은 경상남도 음식이며 식초에 절인 호박을 사용한다는데, 조리사에서는 호박을 소금에 절인다.

 

(PS: 膳이 고기육 변을 쓰고 있고, 호박선-오이선-어선도 가만 보면 단순히 채소찜이 아니라 고기와 채소의 어울림을 말하며 그 어울리게 하는 방식이 바로 찜이다. 바이뚜에서 찾으니 膳은 기본적으로 육고기 음식을 가리켰다고 나온다. "膳,牲肉也。")  

 

만들기 전에도, 만들면서도, 긴가민가했다. 물에 익은 호박이 과연 맛이 있을까?

맛은 둘째 치고, 어떻게 먹나? 한 입에는 안 들어가니 베어 먹어야 할 것이다.

겨자장에 찍어 먹으라는 것도 재미있다.

 

(PS: 후추가 상류층만 먹을 수 있는 고급 향신료였다기에 겨자도 그렇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니 잘못 짚었다. 겨자는 중앙아가 원산지, 현재는 전세계 분포. 삼국시대부터 겨자를 먹었다고 추정된다고. 원산지 기후가 이곳 한반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는지 일찍부터 직접 재배-수확해 먹었다는 말 같다. 고추는 17세기에나 들어온 완전 늦둥이잖나. 고추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그러니까 고추장이 없던 그 긴 세월 동안, 이 땅 사람들은 겨자장을 흔히 만들어 먹었단다. Surprise!)  

 

손이 많이 가서 그렇지, 고기를 얇게 채 써는 것 말고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다.

 

포나 채가 잘 안 되면 칼을 갈아 써보라는 엄마의 조언.

지금도 가끔 베이는데, 갈린 칼에는 더 많이 베이는 것이 아닐지?

그리고 사실 칼을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갈아서 써 본 적이 없다.

 

색은, 주키니 말고 애호박을 썼으면 좀 더 예뻤겠다.    

먹어 보니, 역시 속의 것을 흘리지 않으며 베어 먹기가 편치는 않다.

맛은, 연겨자를 곁들였음에도 밋밋하고 덤덤하다.

 

한식조리사 시험의 요리들이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조미료는 당연히 쓰지 않고, 기초 양념도 결코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채화의 붓 터치가 다 보이듯이, 재료의 맛이 입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음식만 먹으면 살 찔 일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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