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조성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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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고골의 세계입니다. 그는 이런 세계에서 구원의 방도를 찾으려 했습니다. 피로고프나 코발료프의 세계만 그리라면 하면 고골은 천재적 작가입니다. 얼마든지 그려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 이것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겁니다. 악마적인 세계 말고 뭔가 긍정적 세계, 선한 인간과 아름다운 인간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소명, 욕망이 그의 창작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의 생명을 단축하게 만든 겁니다. (139)

톨스토이의 세계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입니다. 두 세계가 분명히 나뉩니다. 우회가 불가능하죠. 소설이라는 미학적 형식을 통해 우회해서 선에 도달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소모적입니다. 그래서 <안나 카레니나>를 쓴 다음에 톨스토이는 더 이상 예술로서의 소설은 쓰지 않습니다. (216)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논리는 헤겔식의 변증법적 논리입니다. 변증법적 논리라는 것은 대립물의 동일성을 말합니다. 선이 곧 악이고,악이 곧 선이다, 이런 식의 논리입니다. ... 인간이 구원받고자 할 때, 바로 선의 길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우회해야 한다는 겁니다.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의 단계를 거쳐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죠. 고통이 자기 인식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처럼, 죄를 통한 고통과 수난은 구원에 필수적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삶의 변증법입니다. (216)

체호프는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10년 동안 유머 단편을 쓰다 보니 작가로서 매너리즘에 빠진 겁니다. 더는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고 그저 판에 박힌 작품들만 쓰는 것 같다 보니 작가로서 위기의식을 느꼈을 법합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더 알아야겠다고 판단하고 결행한 것이 바로 사할린 섬 여행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사할린까지 가서 그가 한 작업이 면접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3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만든 면접 카드가 8,000장이라니까 거의 하루에 100여 장씩 만든 셈입니다. 그만큼의 사람들을 만났다는 얘기에요. 그렇게 석 달 동안 사람을 만나 면접 카드를 만드는 일만 하고 돌아왔어요. (276)

체호프의 인물들은 이처럼 주로 삶의 결정적인 기회를 두 눈 다 뜨고 놓쳐버린 가련한 `등신들`인데, 그걸 확인한 이상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면 `비극적`일 테지만, 이 `등신들`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런 희망 없이 담담한 회한만을 가슴에 안은 채 예전의 일상적 삶으로 돌아갑니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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