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류샤오보 지음, 김지은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현재 중국 사회는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 주입으로 역사가 단절됐고, 그 결과 인민들은 집단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듯 텐안먼민주화운동을 잊어버렸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중국에서는 처참한 역사적 재앙이 닥쳤지만, `텐안먼민주화운동` 이후 세대들은 풍족한 물질적 혜택 속에서 공권력에 의한 강제 진압이나 경찰국가를 모르고 자랐다.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에 물든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쉽게 돈을 번 벼락부자와 인기 스타들을 우상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역사의 암흑기와 모순 투성이인 현실에 대한 고찰은 젋은 세대들에게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이며 반우파 운동,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텐안먼민주화운동 등 지나간 역사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정부를 비판하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풍족한 물질생활에 도취된 중국 젊은이들은 정부가 떠들어대는 선전에 눈이 멀고 귀가 먹어가는 것도 모른 채 중국 공산당이 역사상 전례 없는 발전을 이뤄냈다고 믿는다. (22-3)

포스트 전체주의로 대표되는 중국의 의식은 분열과 동질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제도권 안과 밖의 행동, 제도권 안과 밖의 행동, 정부언어와 민중언어, 공식 입장과 사석에서의 태도, 비극적 현실과 유머 등 분열 현상이 중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은 한낱 만담 오락으로 변질되고, 날카로웠던 비판정신은 마취제를 맞은 듯 무덤덤해지고 권력에 대한 조롱은 단순한 농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국 사회에는 향락과 소비 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이익만 좇는 `경제인으로서의 이성`만이 남아있다. (30-1)

텐안먼민주화운동 이후 사상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신구 좌파는 마오쩌둥 혁명의 기치를 다시 들고 일어섰고, 신구 유가에서는 `왕도정치` 구호를 외쳐댔다. 하지만 두 사상 모두 국가주의를 위장한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편승하려고만 하는 얄팍한 술수일 뿐이다. 나는 "민주의 벽 세대"가 전해준 자유사상과 미학적 저항이야말고 전환기를 맞이한 중국을 이끄는 진정한 핵심가치라고 확신한다. (52)

독재정권에서 내세우는 `도광양회`는 가장 저급한 외교정책이었다.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외교정책은 도의적인 책임을 져버리고 이익에만 연연하기 때문에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행동도 서슴지 않으며 세상에 군림하려는 천하주의 유전자가 공산당의 핏속을 흐르기 때문이다. 힘이 부족할 때는 치욕을 참으며 와신상담하면서 훗날을 기약하지만 일단 힘을 키우고 나면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오월춘추의 `복수극`을 재연하면서 `천하의 중심`이 되려고 할 것이다. (63-4)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성한 시기에도 농민의 삶은 고통과 비참함으로 얼룩졌고 혼란기에는 그 어떤 계층보다도 더 잔인한 핍박을 받았다. 하지만 그 어떤 시대도 현재 중국 공산당만큼 잔인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가장 야비하게 중국 농민을 속이고 농민의 토지를 침탈하고 인권을 탄압했다. 농민의 지지를 통해 통치 기반을 마련하려는 속셈으로 중국 공산당은 `지주를 타도하고 토지를 새로 분배하자`라는 구호 아래 토지개혁을 실시했고, 1947년에는 <중국토지법대강>을 반포했다. 대강에서는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한 후 농민이 토지소유권을 갖는 것을 인정했고 농민의 자주 경영, 자유매매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잡자마자 명문화된 내용을 완전히 무시하고 공유화를 주축으로 하는 사회주의 개혁을 단행했다. (83)

루쉰은 중국 문화의 입장에서 중국 현실을 냉철하게 비판했으나 신해혁명의 실패와 5.4 운동의 퇴조로 말미암은 현실적 절망에 부딪히자 점점 내면세계로 빠져들어 자신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들풀> 이후 루쉰은 내면의 적막,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면세계의 몸부림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자신과 대적할 상대도 안 되는 세속적인 사람과 저급한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루쉰은 일개 범부로 전락했다. 루쉰은 미지의 세계와 어두운 묘지와 같은 세상에서 느끼는 공포를 홀로 이겨낼 수 없었다. 그는 초월자가 인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과 초월적인 대화를 나누는 걸 원치 않았다. 루쉰은 전통 사대부의 공리적 인격을 철저하게 극복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초월자가 없는 루쉰은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129-130)

"여보, 겉으로 보기에 당신은 유명한 반역자이지만 사실 당신은 이 사회와 깊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어요. 이 사회는 당신의 태도에 반대하면서도 당신을 포용하고 당신을 용서하고 당신에게 힘을 줄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신을 부추기고 있어요. 당신은 이 사회의 반대편을 채워주는 장식품이에요.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일가요? 나는 당신처럼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 사회에 무엇도 요구하고 싶지 않고 욕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나야말로 이 사회 어디에도 마음을 줄 수 없는 사람이에요. (137)

따라서 나는 어떠한 민족의 번영도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모델로 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군중에게 희망을 기대하지 않으며 사회발전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의지하면서 용기와 투지로 이 세상과 싸워나갈 것이다. (141)

최근 첩을 거느리고 싶던 사대부의 열망이 참극을 빚은 사건이 발생했다. 구청은 첩이 집을 나가고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꿈만 같던 `일처 일첩` 생활이 깨지고 말았다. 그 후 극도의 초조함으로 구청은 미쳐버렸고 결국 도끼로 아내를 죽이고 자살했다. 그러나 중국 언론매체는 사건을 축소해서 보도했기 때문에 구청의 잔인한 살육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구청의 도끼에 비참하게 살해된 구청의 아내 셰예는 잊허졌다. 사람들은 오히려 구청을 `순정을 바친` 낭만 시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후 구청의 아버지, 구청의 첩이었던 잉얼 그리고 잉얼의 옛 연인은 이 사건을 이용해서 이익을 챙겼다. (157)

흑백논리의 민족주의는 `노예가 될지언정 외세의 치욕은 받지 않겠다`라는 기형적인 애국주의로 발전했다. ... 드라마 <5월의 꽃향기>는 중국인이 중국인을 속이는 것은 도덕적 타락이지만 중국인이 외국인을 속이는 것은 민족의 기개처럼 묘사했고, 타인을 패가망신시킨 파렴치한 골동품 상인이 국보 유실 문제에서 민족적 지조를 지키자 많은 시청자가 감동했다. 중국 인민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마오쩌둥을 지금도 중국인들은 `중국 인민의 지존`을 세워 준 영웅으로 추대하고 있다. (172)

신좌파가 시장화와 세계화 때문에 중국의 양극화와 부패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시장화와 세계화를 비인간화의 원인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핵심을 피하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일 뿐이다. 중국의 독재체제 자체가 이미 비인간화, 부도덕화 됐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가장 후안무치한 집단은 바로 정치권력집단이다. (173)

중국인은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한다. "사람에게 존엄과 양심이 필요할가? 이상, 양심, 동정심, 정의감, 수치심......이런 것을 믿는다고 현실이 풍족해질 수 있는가! 오히려 국가와 사람을 망치게 할 뿐이다! 현실적인 이익에 충실하면서 후안무치한 삶을 살아야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힘은 사악하다. 만약 대다수 사람이 사악한 힘을 택한다면 인류는 영원히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198)

하지만 그 중 누구도 바진이 약속했던 `진실선언`과 `참회`를 행동으로 이어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예를 들어, 위추위는 "바진의 `진실을 말하라`라는 가르침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라고만 평가했다. 하지만 위추위는 자신이 문화대혁명 당시 했던 행동을 참회하지 않았고, 수이는 문화대혁명 당시 자신의 아버지인 문학가 라오서를 저버린 행동을 참회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오도 참회하지 않는 이에게서 과연 진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201)

무장 경찰이 병원을 삼엄하게 경계하면서 관료의 출입만 허용하고 기자와 대중은 문밖에 그대로 서 있게 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바진은 최후에도 인민과는 괴리된 채 중국 공산당을 위해서 살았던 작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바진은 절대 중국의 `양심`이 될 수 없다. 그는 전체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중국 지식인일 뿐이다. 형편없는 작품, 비루한 인격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높은 명성, 이것이 중국 당대 지식인과 유명인사의 공통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바진을 애도하러 온 중국 공산당 고위 관료와 문인들은 바진의 충성스러운 후계자일 뿐이다. (209)

과거에는 울분을 참지 못한 영웅이 정권에 홀로 저항했지만, 지금은 민중이 함께 힘을 모아 불의에 저항하는 새로운 인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저항 운동에 참여하는 민중은 자유 의식이 투철하고 실천 능력이 뛰어나다. 그들은 힘의 한계 때문에 큰 환경을 한 번에 바꾸지 못하더라도 절대 낙심하지 않고 작은 부분부터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 나는 최근에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민중의 저항운동을 통해 중국에서도 언론의 자유가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222)

"... 공자의 책을 읽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요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공자는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적합할 것이다." (225)
......
"나는 <논어>를 통해 역사를 연구할 뿐이다. <논어>는 성인을 숭상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227)

선진 제자 중에서 성인으로 추대 받는 공자가 가장 평범한 도덕 설교자였다. 장자와 비교하면 공자는 초탈, 소요유, 얽매임 없는 자유, 상상력, 호방한 언어,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철학적 지혜와 문학적 재능이 현저히 부족했고 인류의 비극에 대한 확고한 의식마저 없었다. 맹자와 비교하면 공자는 대장부의 기백과 패기가 부족하고 권력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으며 `백성을 중시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권력은 중요하지 않다`는 백성을 위한 배려도 부족했다. (236)

한비자와 비교하면 공자는 위선적이고 교활하며 한비자처럼 직설적이지 못하고, 신랄하게 비판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반어법과 풍자도 할 줄 몰랐다. 묵자와 비교하면 공자는 평등을 이상으로 하는 도덕적 규율을 간과했고 사상이 논리적이지 못했다. 공자는 극단적인 공리주의자이며 교활하며 미적 영혼과 철학적 깊이도 없을뿐더러 고귀한 인격, 넓은 도량과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공자는 정치가들을 찾아다니다가 실패하자 결국 도덕의 교주가 됐다." (236)
......
중국 문화의 최대 비극은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아니라 한 무제의 `백가를 모두 내치고 유가만을 떠받들었던` 사상에서 시작됐다. (239)

당대 중국 지식인은 독재에 기대어 성인을 숭상하는 습성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권력에서 독립하여 5.4 운동 이후 나타난 `자유로운 사상, 독립적인 인격`의 새로운 전통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당대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40)

절름발이 개혁이 지탱해주던 경제성장이 주춤할 경우 중국은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중국의 저가제품은 노동자의 인권유린과 노동착취, 에너지 낭비와 환경우염을 대가로 얻어낸 결과물이다. 중국공산당이 거금을 들여 러시아에서 첨단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재정권이 국민의 자원을 독점하고 국민의 고혈을 자신의 재산처럼 마음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부 중국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 돈을 뿌릴 수 있는 것은 권력과 부의 사유화와 제도의 부패로 인해 중국 사회가 양극화되었기 때문이다. (273)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홍콩인이 중국화를 거부하고 자유를 수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홍콩인 스스로 단결해서 정치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행정장관 보통선거를 실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륙의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홍콩의 자유체제 수호는 홍콩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중요한 사명이다. 대륙의 정치 개혁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홍콩인에게도 중요한 사명이다. 중국인과 홍콩인 모두 중국의 자유를 실현하는 양대 산맥이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때 홍콩의 자유가 보장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85)

체제와 제도 간의 갈등을 민족 충돌로 무마해버리려는 중국 공산당의 거짓과 위선이 바로 티베트 사태를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이다.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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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태는 한족과 티베트인의 갈등이 아니라 독재와 자유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발생했다. 현재 한족과 티베트 민중은 공산당 독재정권이라는 공공의 적과 대치하고 있다. 따라서 티베트인이 직면한 문제는 곧 한족이 직면한 문제다. 티베트 사태가 일어나자 한족은 인터넷으로 달라이 라마를 비난하고 욕을 퍼부었지만 실상 한족과 티베트 민중 모두 독재정권에 희생된 `죄수`일 뿐이다. 한족이 자유를 잃고 독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티베트 역시 자유를 얻기 힘들다. 중국 민중이 진정한 자치를 얻지 못한다면 티베트인과 다른 소수민족 역시 진정한 자치를 얻을 수 없다. (291)

이렇게 오랫동안 비극이 이어지는데도 우리에게는 하벨처럼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거인`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네. ... 이제껏 인간은 우연히 태어난 사람에 의지해서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을 지켜나갈 수 있었네. 대중의 집단적인 양심에 의지해서는 하나의 큰 힘을 만들 수 없네. 오직 위대한 개인의 양심이 나약한 대중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네. 우리 중화민족에게는 정의의 거인이 절실하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거인의 감화력은 무궁무진하고 그가 남기는 상징적인 의미 하나에 더 많은 사람이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이네. 예를 들어 방리즈는 미국대사관을 나올 수 있었고, 자오쯔양은 숙청된 이후에도 여전히 항쟁을 벌였으며, 다른 인사들은 중국을 떠나지 않았네. `텐안먼민주화운동` 이후 사회에 적막과 역사적 망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에게 정의를 지켜줄 거인이 없기 때문이네.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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