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에는 우리 대부분이 맹신자의 동기와 반응에 어느 정도 식견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을 믿지 않은 시대라지만 대중의 경향이 반종교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기 대문이다. 맹신자는 도처에서 행군하면서 전향하고 저항함으로써 자기 형상대로 세계를 빚고 있다. (13)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노동하는 사람들은 불평불만도, 꿈도 키우지 못한다. 중국의 대중이 반항적이지 않은 한 가지 이유는 죽자 살자 노력해야 간신히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사투는 "역동적이기는커녕 정적이다." (51)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재능이 없는 한, 자유란 따분하고 번거로운 부담이다. 능력 없는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는 있어 무엇하겠는가?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가담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자면, 열렬한 나치 젊은이의 말마따나 "자유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다. (55)

유대인의 경우도 비슷한데, 유럽의 유대인들이 보여준 행동으로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의 행동을 미루어 짐작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던 영국 식민성의 정책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했으나 통찰이 부족했다. 그들은 히틀러가 6백만 유대인을 심각한 저항 없이 멸할 수 있었으니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60만 정도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아무리 갓 모여든 집단이었어도 무서운 상대였다.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완강했으며 지략이 넘쳤다. 유럽의 유대인들은 영원한 공허 속에 떠다니는 티끌 한 점 같은 고립된 개인으로 적과 맞서야 했다.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은 일개 인간 원자가 아닌, 기억할 가치 없는 과거는 뒤로 하고 이제 숨막히는 미래가 앞에 놓인, 불멸하는 민족의 일원이 된 존재들이다. (101)

죽음과 죽임이 어떤 의례나 의식, 연극 공연이나 놀이의 일부일 때는 쉽게 느껴진다. 죽음 앞에서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상의 장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 현실을 살아가는 불완전한 우리에게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자기 목숨과 바꿔도 될 것은 없다. 오직 자신을 무대 위의... 배우로 여길 때 죽음은 공포와 최후라는 의미를 잃고 가상의 행위, 하나의 연극적 몸짓이 된다. 추종자들에게 죽음과 죽임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어떤 숭고한 장면, 엄숙한 혹은 유쾌한 연극 공연에 참여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대중운동의 지도자가 해야 할 주요 임무 중 하나다. (103)

이렇듯 혼란이 일어났을 때 정작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매달리며 몽상가처럼 구는 것은 이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반면에 현재를 거부하고 오로지 앞으로 일어날 일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에게는 다가오는 위험의 싹이나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자신에게 유리한 점 따위를 간파할 능력이 있다. 따라서 좌절한 개인과 맹신자가 현상유지를 바랄 이유가 있는 사람들보다 뛰어난 예언자가 된다. "미래가 요구하는 해결의 실마리는 영혼이 섬세한 사람들보다는 광신자가 쥐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111)

꿈과 상상, 무모한 희망은 강력한 무기이자 현실적인 도구다. 진정한 지도자의 현실 감각은 이러한 도구의 현실적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에서 온다. 이 능력은 보통 현실을 경멸하는 태도에서 나오는데, 거기에는 현실에 서툰 본성이 작용한다. 성공한 사업가가 공동체의 지도자로는 실패하는 일이 많은 이유는 머리는 "있는 것들"에, 가슴은 `자기 기대`에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맞추어져 있기 땜누이다. (117)

자신과 화해한 자만이 세계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신과의 조화가 깨지고, 자기로부터 거부당하고 자포자기하고 자기를 불신하거나 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고반응성 물질이 된다. 불안정한 화학원소 모양으로 손에 잡히는 아무것하고라도 결합하려 드는 것이다. 그는 초연할 수도 평정을 유지할 수도 스스로 만족할 수도 없어 어떤 것에든 전심전력으로 매달리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126)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없어도 가능하지만 악마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중운동의 힘은 대개 악마가 얼마나 선명하며 얼마나 만져질 듯 생생하느냐에 비례한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반드시 멸망시켜야 하느냐는 질믄에 이렇게 답했다. "아니오. ...... 그랬다가는 그들을 발명해야 할 것이오. 그저 추상적인 적만이 아니라, 유형의 적이 필수요건이오." (137)

자기경멸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부정하고 터무니없는 죄악적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탓이며 자기가 저지른 과오임을 입증하는 진실에 대항하여 도덕적 증오심을 품기 때문이다." (141)

자기를 버리고 어떤 꽉 짜인 전체의 일환이 된다는 것은 개인이 누릴 이익을 포기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책임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다. 개인의 판단력에 동반되는 두려움과 망설임, 의심과 막연한 체면의식에서 해방된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잔인하고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개인이 대중운동의 조직성 속에서 독자성을 잃게 되면 새로운 자유가 생긴다. 수치심과 회한 없이 증오하고 겁박하고 거짓말하고 고문하고 살해하고 배신할 자유가 그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는 대중운동의 매력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욕될 권리"를 발견하는데, 도스토옙스키에 따르면 이는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이다. ...... 이기심을 원천으로 하는 증오와 잔인함은 자기를 버린 사심 없는 심리가 만들어내는 원한과 무자비함에 비하면 효율적이지 못하다. (149)

우리 시대에 성공을 거둔 많은 대중운동 지도자들이 주창한 사상의 유치함을 보노라면 어느 정도의 생경함과 정신적 미숙함이 지도자들에게는 하나의 자산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에미미 맥피어슨...이나 히틀러가 추종 무리를 얻고 유지하게 해준 것은 그들의 조잡한 지성이 아니라 그 터무니없는 사상을 멋대로 휘두를 수 있게 해주었던 끝없는 자신감이었다. ... 중요한 것은 자신만만한 몸짓, 타인의 견해를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 혼자 힘으로 세계에 도전하는 근성이다. (170)

사는 것이 무기력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자족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기꺼이 복종한다. 좌절한 사람들은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보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에 더 솔깃하다. 그들은 자발성과 결정, 피할 수 없는 실패에 책임지는 일에서 부담을 덜기 위해 개인의 독립성으르 기꺼이 처분하려 든다. 그들은 계획하고 지휘하고 모든 책임을 떠맡고자 하는 사람에게 얼마든지 자기 인생의 지휘권을 양도한다. 더군다나 만인이 최고위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평등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173)

이렇게 세 유형을 구분해보면 대중운동의 기반 작업은 말이나 글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한 사람들이 가장 훌륭하게 해낸다는 사실, 대중운동이 실질적으로 부화하기 위해서는 광신자의 기질과 재능이 필요하다는 사실, 대중운동이 공고해지는 마지막 단계는 주로 실천적인 행동가들의 몫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193)

운동을 개척하는 것은 지식인,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굳건히 다지는 것은 행동가다. (214)

하지만 정작 이 과정에서 속아넘어가는 것은 지식인 선구자들뿐이다. 선구자들은 구질서에 반대하여 일어나며 그들의 비이성과 무능을 비웃고 그들의 정통성을 상실한 포악한 체제임을 고발하고 표현의 자유, 자기 실현의 자유를 요구한다. ... 하지만 대중이 갈망하는 자유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를 실현할 자유가 아니라 자율적인 삶이라는 견딜 수 없는 부담으로부터의 자유다. ...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가 아니라 확신--맹목적인, 권위에 대한 확신--이다. 그들이 봉기하는 것은 구체제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무능하기 때문이다. 압제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흔들림 없는 강력한 하나의 전체로 만들지 못하는 무력함 때문이다. ... 대중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는 대개 사람들이 원하는 바와 일치한다. 대중은 이 과정에서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206-7)

일본에서는 외부 세계의 영향이 지식층이 아닌 메이지 황제를 포함한 상류 행동가 집단에 작용했다. 이들 현실적인 행동가 집단에는 마찬가지로 행동가인 포트르 대제에게 없는 선견지명이 있었으며, 표트르 대제가 실패한 곳에서 그들은 성공했다. 그들은 외국의 문물과 방식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일본을 일깨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 세기 뒤처진 상태를 몇십 년 안에 따라잡도록 몰아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토록 전례없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종교화 기술이 없어서는 안 될 요인임을 간파했다.
......
J.B.S. 홀데인은 기원전 3000년과 서기 14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 가운데 정말로 중요한 4대 발명품으로 광신주의를 꼽는다. 광신주의는 유대기독교의 발명품이었다. 세계가 이 영혼의 질병을 얻으면서 사회와 국가를 죽음에서 일으키는 기적의 도구--부활의 도구--도 함께 얻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2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