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 소명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따라서 일본 측은 남만주 전역에 자유로이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고 보았지만, 중국 측은 이것을 일본의 중국 침략의 수단이며 영토주권의 침해로 간주하여 일본인에 대한 토지 대여를 매국죄, 국토 도매로 처벌하는 방침을 취함으로써 이에 대항했다. ... 이러한 중국 측의 토지, 가옥 상조 금지와 회수운동은 1929년 6월 펑톈의 사카키바라 농장사건 등 일본인과의 대립을 낳았는데, 이로 인해 더욱 고통을 당했던 것은 재만 조선인이었고 그들의 구제가 만주영유 정당화의 논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47)

그렇다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던 소련의 군사력 증강과 그에 따른 일-소 긴장감 고조를 이시하리는 왜 일부러 낙관시하면서, 중국 본토와 남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서 만몽을 중시했던 것일까. 실은 이시하라에게는 소련보다도 가상적국으로서 더욱 중요하고 하루빨리 개전 준비를 진행해야 할 '목표'가 존재했고, 만몽 영유도 바로 그 상대와의 대전을 염두에 두고 기도된 것이었다. 이시하라에 있어 그 '목표'란 미국이었다. ... 이시하라가 일미전쟁의 필연성을 확신했던 것은 1927년이었고 진주만 공격에 의해 일본과 미국이 교전 상태에 돌입한 것은 1941년 12월 8일이다. (68)

그러나 만약 이러한 연쇄가 아주 긴밀한 것이어서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일본이 만몽에서의 무력행사를 단념하거나, 미국이 일본의 만몽 영유시 바로 개전하지 않는다면(실제로 그랬는데), 일미결전전쟁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시하라의 논리는 명확히 파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세계 최종전이라는 명제가 먼저 있고 거기에 만몽영유론을 끼워 넣은 인과관계의 도착에서 발생한 딜레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만주사변 이후 중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행동이 일미전쟁 개전이라는 대하로 흘러들어가는 복류수였다고 한다면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제2차 대전에서 이시하라의 구상이 실현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다. (73)

오늘날에도 만주국을 이상국이라 평가하는 사람들은, 숭고한 이상을 내걸고 도의적으로 분투하였으며 오로지 나라 만들기에 정열을 기울였던 자치지도부를 논거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순 무아 무상의 헌신 선정 등은 그것을 공유하는 자에게는 사기를 높이는 섹트적 은어(cant)로서 효용을 가질지 모르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일방적으로 강요당해 어쩔 수 없이 '교도'되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은 없을 터이다. 진리에 대한 신자의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또한 거기에 기울이는 정열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율적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부가되는 압력은 저항하기 힘든 무게로 덮쳐올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더욱이 좀더 생각해보면 자치지도라는 것도 대단히 모순적인 표현이다. 자신의 주체적 의사에 의해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 자치의 본의라면 거기에 지도라는 요인이 작용할 여지가 없을 터이다. 또한 위로부터의 지도에 의해서 비로소 자치가 주어지고 보존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치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19)

그리하여 꿈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일본인과 그 꿈 때문에 고향을 빼앗기고 육친을 빼앗기고 목숨마저 빼앗긴 중국인들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본 국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이 죄업을 아름다운 꿈으로 미화하듯 끊임없이 배양되어 갔다. "... 사실이 어떤지 알지 못하나, 그처럼 명백하게 만주국은 전진했다. 즉 '만주국'은 지금 이미 프랑스 공화국, 소비에트 연방 이후 최초로,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고 과감한 문명이상과 그 세계관의 표현이다." "사실이 어떤지 알지 못하나"라고 하면서도 만주국을 "다른 의미에서 새롭고 과감한 문명 이상과 그 세계관의 표현이다"라고 단언하는 이 무서운 레토릭. 실로 화근이 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환몽을 퍼뜨리는 언령이다. (194)

만주국은 피와 공포를 대가로 치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다종다양한 꿈을 요람으로 키워갈 터였다. 그러나 타산은 꿈을 몰아내고 이해는 희망을 부숴갔다. 건국이념은 단지 현실을 호도하고 은폐하는 기능을 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만주국에 걸었던 꿈이 환상이었음을 싫든 좋든 깨달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처음부터 자기 수중에 없었다는 것을 호되게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184)

아니 이시하라가 만주국에 부임한 1937년에는 이미 만주국은 건국에 가담한 사람들의 손에서 훨씬 멀어져 능리형 군인, 행정 테크노크라트, 특수회사 경영자라는 철의 삼각추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체제를 상징하는 것이 '2키 3스케'라 불린 호시노 나오키...이다. 그리고 물론 저들을 정점으로 하여 피라미드 저변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243)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모습하에서 일본과 만주국이 서로 투영과 반사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주국을 가짐으로써 일본 자신이 어떻게 규정되었으며, 어떻게 변용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를 해명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만주국이 가진 역사적 의의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 (254) ...... 이러한 사례에 한정되지 않고 식민지 내에 그에 상응하는 국가를 가진 국가의 국민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원리에 의해 아무래도 스스로가 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일본이 만주국의 친방으로 일체화되어 움직이는 한, 일본에서 만주국으로 투사된 것은, 결국 그 빛과 그늘이 한층 강화된 형태로 만주국에서 일본으로 반사되어 오는 것이다. ... 정말 악순환이야말로 영원하다. 일본과 만주국은 마치 마주보고 있는 거울상처럼 일본은 만주국의 상 속으로 만주국은 일본의 상 속으로 각각을 투영시켜 무한의 상을 겹쳐갔다. (261)

루쉰은 동북항일영군의 고투를 그린 샤오쥔의 장편소설 <팔월의 향촌>(1935)의 서문에서 작가의 모든 생각이 다음과 일체가 되어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잃어버린 하늘, 토지, 수난을 받는 인민, 그리하여 잃어버린 풀, 고량, 귀뚜라미, 모기." 토지와 풀과 고량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하늘, 그리고 피해가 될 뿐인 모기조차 빼앗겼다는 샤오쥔의 절규. 그리고 거기에 한없는 공감을 보내는 루쉰... 이러한 피를 토하는 언어 앞에서... 일본인에 의한 '개발'과 그 '유산'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헛되며 또한 얼마나 무분별하게 들리는가. 혁혁한 개발은 벌거벗은 아이들에게 옷 한 벌조차 주지 못했던 것이다. (277)

아시아를 거론할 때 우리들 일본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항상 아시아 담론을 기만의 방패로 삼아 왔다. 만약 자신의 삶을 경멸할 생각이 없다면 21세기에는 이러한 '아시아'라는 담론으로 자신과 타자를 함께 속이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하고 절실히 생각한다. (289)

1945년 소련의 대일 참전에 의해 만주국은 사멸했고, 지금은 이미 그로부터 4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흘러 그 소련도 공산주의라는 환상과 함께 지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드디어 세기가 바뀌려 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사람이 죽었어도 옛일은 엄연한 사실로 지금 존재한다. 그것이 사라진 듯이 생각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옛일의 교훈을 민족이 남겨야 할 기억으로 마음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경박하여 타자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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