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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ㅣ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반적으로 여행기라 하면 해상도가 높은 카메라고 찍은 컬러풀한 사진들이 즐비해있고, 기본적으로 지도로 가는 곳을 안내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 책....지도는 유럽을 옮겨 다닐 때마다 눈곱만하게 나라만 표지되어 있고, 사진 한 장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훌륭하다. 묘사가 어찌나 뛰어난지 사진이나 지도가 필요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의 단점으로는 혼자 읽다 키득키득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인데, 이를 어쩌면 좋아?? 사무실에 앉아서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뛰어난 표현들 때문에 혼자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웃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음담패설에 가까운 서양식 조크를 이해하지 못해 힘들기도 하고 적나라한 표현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문명의 발달로 일어나는 우리의 어리석음도 때로 너무 콕콕 찍어주며 말하며 아프게 하는 재주도 비상하다. 매력적인 책이다. 그의 입담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불가리아는 나라라기보다는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체험한 곳이었다. 나는 언제든지 쉐라톤 호텔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행운이었다. 차가운 맥주와 훌륭한 음식을 먹고 마시며 내 방에서 CNN을 볼 수 있었고, 비겁하게도 매 끼니를 호텔 안에서 해결했다.‘ 소피아 373p中
90년대 초반 소피아 여행기는 꽤나 우울하고, 내게는 인상적이었던 이스탄불은 시끄럽고 정신없고, 단지 유럽의 끝이라는 이유를 제외하고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게 적혀있다.
그럼에도 여행에 나서고, 또 나서고 싶다.
70년대에 친구와 함께 했던 유럽 여행을 거의 20여 년 만에 그때의 발자취들과 비교하면서 느긋하게 돌아보고 있는 빌 브라이슨의 모습은 아주 좋아 보인다.
'여행, 유럽 누구나 설레게 하는 두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여행을 꿈꾼다면, 시시한 여행기에 싫증이 났다면, 여행기를 읽으면서 글 읽는 재미 또한 느끼고 싶다면, 또는 전문 글쟁이들의 여행기 마니아라면 나는 독자에게 이 책을 슬쩍 건네주고 싶다.'
역자 후기에서 390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나게 번역을 해준 번역가에게도 고맙다...
런던에 있을 때 유럽 여행을 한 다음 책을 쓸 거라고 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지나 보군요.”
“아니, 영어밖에 모르는데요.”
내가 모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그것이 외국 여행의 묘미다. 나는 여행지의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이 어디 있을까. 여행자는 갑자기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신히 눈치로 알 수 있을 뿐이며,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가 없다. 존재 자체가 연이은 추측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오슬로 중 52-54
이런 빌 브라이슨의 말에 힘입어 영어조차 잘 못하는 나도 용기 백배해져서 언젠가 내가 돌아본 유럽의 장소들을 빌 브라이슨처럼 비교해가며 그렇게 다시 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