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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관련 책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때문에 인문학에 관한 인식까지 좋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직까지 인문학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이며, 일상의 생활을 전제해야만 하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 혹은 철학은 가난을 벗어나야만 공부할 마음이 동하는 그런 학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철학자는 이런 말에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처럼 철학자와 일반 대중 간의 괴리는 상당히 크다. 현실을 외면하는 철학이나 삶의 본질을 성찰하지 않는 현실은 이 괴리를 좁히기 힘들다. 하지만 철학자 중에는 일반 대중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고병권은 이런 시도를 하는 철학자 중 하나다. 그는 철학하기란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현실에 집중하는 철학자다. 또한 그는 11번째 책 <철학자와 하녀>라는 책을 통해 현실을 외면하는 철학이 아니라 현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자와 하녀의 이야기

 

저자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탈레스와 트리케의 하녀에 관한 우화를 인용하면서 철학자와 일반 대중의 관계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 따르면 탈레스는 어느 날,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하녀가 깔깔대며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우화는 일반 대중이 당장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철학자를 비웃는 지금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철학자는 이런 재치가 넘치는 이들을 무지한 대중이라 폄하했다. 소크라테스는 아마 이들은 철학자의 높이에 세워놓으면 높은 곳에 처음 매달린 탓에 어지럼증을 느낄 것이라며 하녀와 같은 이들을 비웃었다.

 

서로 조롱하고 적대하면서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불행하다면, 역설적이게도 각자의 구원은 서로에게서 오는 게 아닐까. 삶의 절실함과 대면하면서 철학자는 새로 철학을 배우고, 앎의 각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새로 살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7)

 

사실 이 둘의 말은 모두 옳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철학에 아무리 고매한 뜻이 있다 하더라도 일상의 삶과 무관하다면, 철학은 자족적인 유희로만 머물 수밖에 없고, 현실 감각을 통해 성공적 삶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삶의 성찰이 없는 현실 감각은 현실에 얽매인 노예의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옳으면서도 완벽한 것은 철학자와 하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철학은 지옥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철학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은 배부른 자들의 고상한 유희이자 현실 바깥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철학은 천국과 같은 유토피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중략) 깨달음은 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천국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20)

 

보통 사람들은 현실을 속된말로 지옥이라고 부르곤 한다. 철학은 지옥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띄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현실이라는 지옥에 천착해야만 가능 한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철학이 가지는 가치이자 본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일반 대중이 가졌던 철학에 관한 통념을 깸과 동시에 현실과 괴리된 철학을 하는 철학자들에게 일침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천착함으로써 꽃피는 것이 철학이라는 선언을 한 저자는 이어 현실에 관한 여러 통찰을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책 내용의 전반을 이루는 철학적 성찰을 저자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이 철학의 내용은 다양하다. 거대한 담론에 매몰돼 미처 보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것인지 니체를 끌어들여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해석노동에 관한 문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핵 발전에 관한 문제, 성소수자를 비롯한 여러 소수자들의 문제 등 여러 사회문제까지도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유감없이 발휘해 독자들에게 지적인 달콤함을 선사한다.

 

구경꾼에서 체험하는 자로

 

예수를 믿는 사람, 그 믿음을 과시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처럼 사는 사람은 드물다. (중략) 우리는 무소유 정신을 갈파한 어느 스님의 책을 백만 권 넘게 사지만 정작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좋은 말을, 박물관이나 명승지를 관람하듯, 그저 듣고 구경하면서 입장료로 책값을 내는 것이다.(248~249)

 

<철학자와 하녀>는 철학자인 저자가 하녀인 일반 대중에게 건네는 말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독자들에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던진다. “세상에 옳은 말은 많다. 하지만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최근 인문학에 관한 대중의 관심과 출판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 서적처럼 현재 우리 사회에 옳은 말은 흘러넘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을 읽고 소비할 뿐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 구경꾼으로 머물 뿐이다. 저자는 <철학자와 하녀>라는 책을 통해 철학자로서 하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제 독자들이 철학자의 말을 구경하는 구경꾼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것으로 체험함으로써 화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하녀가 나설 차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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