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새해가 왔는데 출판계는 숨을 죽이고 있는지 지난 몇 달에 비해 신간이 눈에 띄게 적다. 그래서 고민의 시간은 더 짧아졌다.


1. 김시덕, 그들이 본 임진왜란, 학고재

 외국 이야기를 읽는 것은 자신의 상황과 시간적, 공간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임진왜란은 보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로 결국 조선이 일본을 격퇴한 전쟁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명청 교체기와 얽힌 동아시아적 사건이었다. 그동안 임진왜란에 대한 시각은 침략을 당한 우리의 시각에서 주로 다뤄졌다. 조선을 도운 명에 대한 자료는 많이 이용되는 것 같지만 침략자인 일본의 입장에 대한 글은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풍신수길이 전국시대를 끝내고 내부 불만을 위해 조선을 침략한 것이었는지, 중화질서를 교란시키고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입장에서 이 전쟁의 의미는 상당히 컸을 것이다.

 간단한 책 소개를 읽어보면 이 소설은 일본에서 에도 시대에 유명했던 임진왜란 관련 책들의 내용을 통해 그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인식했고, 침략을 정당화하는지 분석했다고 한다. 원나라와 고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었다는데, 나중에 구한말에 실제 한국을 구체적으로 점령할 때는 어떤 명분을 내세웠는지 궁금해진다. 장기적으로 보면 임진왜란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다이나믹스의 일부다. 그러므로 일본의 시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2. 수전 벅모스, 헤겔, 아이티, 보편사, 문학동네

 제목만 보고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책 같았는데 저명한 출판사인 문학동네의 책임을 확인하고 주목하게 되었다. 저자인 벅모스는 제목만 들어본 책인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식이 얕아 잘은 모르지만 헤겔이 살던 시기에 아이티 혁명이 있었고 그 사건이 어떤 식으로건 헤겔의 사고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추측은 납득할 수 있다. 더구나 책 소개에서 혼란스럽게 설명이 되지만 이 혁명이 헤겔 '정신현상학'의 노예와 주인의 변증법의 실현이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러나 저자는 헤겔이 아이티 혁명에 대해 침묵한 것보다 서구 지식인들이 이 둘의 연관관계에 대해 침묵한 걸 더욱 문제삼는다고 한다. 책 제목에 있는 보편사는 서구근대의 가짜 보편사에 대항한 다원주의의 담론도 아니고 제3세계적 보편사라고 한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보편적'인지는 책을 봐야 알겠지만 꽤 재미있는 추론이 전개된 것 같다. 헤겔 때문에 골치만 앓고 있는데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다.


3. 페리 앤더슨, 현대 사상의 스펙트럼, 길

 페리 앤더슨하면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라는 오래된 책이 떠오르는데 이 책은 2005년이라는 비교적 최근 저작이다. 제목은 다소 추상적인 '현대 사상의 스펙트럼'인데 내용은 좌, 우, 중도를 모두 다루고 있다. 말 그대로 사상의 스펙트럼인데 이 책에 눈길이 간 것은 칼 슈미트, 레오 스트라우스 등 악명높지만 학문적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우파 거장들에 대한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이엑, 하버마스, 롤스, E. P. 톰슨,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호스봄 등 과히 현대 사상의 주요 인물이라 할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한편으로는 어떤 원칙에 의해 이 인물들을 선정했고, 스펙트럼상에 늘어놓게 되었는지 그 기준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책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믿고 읽을만한 저자의 책이라 기대가 된다.




4.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로마 멸망사, 루비박스

 로마 멸망에 대해서는 에드워드 기번의 너무나 유명한 책이 있다. 이 책은 로마가 정말 멸망했는지를 묻고, 그렇다는 대답을 한 후 왜 그랬는지 과정을 객관적으로 추적한다고 한다. 

 원래 책 제목은 '로마 멸망사'가 아니라 '서구의 몰락'이다. 부제가 로마 초강대국의 죽음이다. 로마 멸망사라고 하면 단순한 과거 역사를 연구한 것으로 보이지만 원제는 현재 국제 상황을 반영한 것 같다. 실제로 책 소개에 나온 선데이 타임스의 서평은 현 상황을 후기 로마 시대와 비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미국 패권을 과거의 제국과 연관시킨 책은 적지 않다. 아마 이 책이 정말 독특하거나 새롭게 기여할 점이 있다면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두되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했다는 책 소개가 진실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로마 제국 멸망사는 진실로 미국의 몰락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5. 헤어프리트 뮌클러, 새로운 전쟁, 책세상

 이 책에 대한 유일한 100자평이 2점짜리 악평이라 얼마나 책이 별로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책의 목차는 나에게는 꽤 매력적이다. 근대국가가 폭력을 독점했다는 것은 널리 공유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국가가 통제하지 않거나 못하는 전쟁이 증가하고 이것을 저자는 '새로운 전쟁'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건 새로운 전쟁이 사실은 새로운 게 아니고 근대국가들간의 전쟁이 핵심이었던 200년간이 오히려 예외적인 기간이라는 내용이다. 근대국가의 효력 혹은 적실성에 대한 논란은 워낙 오래되어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현재 국민적 정체성 이상을 잘 상상할 수 없는 우리에겐 근대국가 시기와 그 전후를 비교하면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좁은지 깨닫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목차를 보니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내용은 아닐 것 같다. 2점을 주신 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다섯 개 리스트에 넣지 않았지만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도 중요한 저작이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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