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게 봄비가 내렸다. 아파트 근처에 씨앗을 심을 준비로 땅을 고른 밭에는 충분한 양이 아니었을까 싶다. 봄비가 지나간 자리에 연두가 가득할 거라 기대한다. 연두라는 말을 하는 동안 입안에 싱그러움이 돋아나는 듯하다. 연두와 초록이 주는 산뜻하고 상쾌한 이미지. 어떤 말을 꺼낼 때,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을 때 그런 기분이 떠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은 때로 피로하다. 유독 말을 많이 했을 때 나의 일부가 소진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반대로 말은 편안하다. 우리는 말이라는 통로로 불쾌한 감정을 쏟아낸다.
말이 사라진 정적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고요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고요와 하나가 된다면 덜 외로울 텐데. 아니, 외로움을 느끼는 건 다행한 일이다. 곁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며,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 싶다는 신호일 테니까.
말을 뒤로하고 책을 읽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여도 충분하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을 잡고 씨름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행간을 따라가다 다시 돌아오고 책 속의 등장하는 사물이나 이름을 속삭이듯 가만히 소리 내어 말하는 일. 책을 읽을 때 종종 노래를 듣는다. 말을 뒤로한다고 하면서도 노랫말에 의지한다. 말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책은 누군가의 말이다. 듣고 싶은 말, 목소리를 상상하는 말은 이런 책이다. 줌파 라히리의 『내가 있는 곳』, 아니 에르노의 『세월』, 김훈의 『연필로 쓰기』.
맥락 없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잣말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