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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학교에서 아이들은 새 책을 받고 두근대며 책을 넘겨봤을테다. 비록 교과서여도 새 책은 언제나 설레는 법! 지난 달 출시된 책 중 3월에 읽어봄직한 책들을 골랐다.

 


 

 

한병철 선생님의 <심리 정치>. 146쪽.

책 소개부터 보자.

 

(...)한병철이 내세운 이 책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

 

감이 오지 않나요.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달라 기도하다니. 열정, 꿈, 청춘이 가장 무서운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누군가는 '꿈'은 이 시대 가장 잔인한 단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의한다. 차라리 꿈이 없었다면 '스스로'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내 꿈과 열정이 진짜 내것인지 아니면 강요당한 것인지 구분할 여력조차 사라졌다. 대부분의 청춘들에게 이를 구분할 지혜는 없다.

 

청춘뿐 아니겠지. 회사원들에게도, 중장년층에게도, 노인에게도 '네 나이가 어때서'라며 낭만을 주입한다. 대한민국 모두가 내 욕망과 남의 욕망, 주입한 욕망과 주입된 욕망에서 뒤엉켜 허우적 거리고 있는 느낌. 한병철 선생님은 이 은밀한 욕구를 낯뜨겁게 잡아줄 터.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을 위해서 일한다. 자본에서 생성되는 자본의 고유한 욕구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구라고 착각한다. 자본은 새로운 초월성, 새로운 예속의 형식이다. 우리는 삶이 어떤 외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오직 삶 자체로 머물러 있는 차원, 즉 삶의 내재성에서 다시 추방당한다. (심리정치 17p)

 

한병철의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내 욕망과 남의 욕망을 구분할 지혜가 생길까.

 

한병철 선생님의 책이 나올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책 표지가 참 예쁘다. <피로사회>에서는 보기만 해도 피로해지는 보라색으로, <투명사회>는 바닷빛처럼 투명한 파랑색이었지. <심리정치>가 왜 초록색인지 아직 감이 안온다.  예전에 모닝글로리였던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색이라며 노트 맨 앞장에 초록색 종이를 붙여놓기도 했었는데. 그런 맥락일까나.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700쪽에 31500원.

롤랑 바르트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가는 중이었단다. 그가 진행하던 세미나는 끝나지 못했다. 그 세미나 원고가 수록된 책.

 

이런 비극적 스토리(?) 외에도 롤랑 바르트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놨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세미나 원고도 중요하지만 강사의 육성으로 그것을 옮겨놨을 때 그가 하려는 말이 몇배는 더 쉽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더 기대되는 점은 책 소개에 나오는 바르트 제자의 말인데, 바르트는 세미나 원고를 그대로 읽는 법이 절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중에 원고를 들춰보면, 원고 내용과 강의 내용이 정확히 일치했다고. 종종 원고는 훌륭하지만 강의가 횡설수설인 강사들을 보기 마련인데, 바르트는 강의까지 잘했나 보다.

 

강의는 소설에 관한 것이라 한다. '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성찰.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서도 그랬지만, 그는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강렬한 사람이라, 쓰기 행위에도, 사진을 찍는 행위에도 어머니의 기억을 연결시킨다. 쓰기든 사진찍기든 기록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보존해주는 '구원'이라는 것. 그는 죽기 전, 어떤 구원을 남겼을까.

 


 

 

한겨레 토요판 팀장인 고경태 기자의 <1968년 2월 12일>. 376쪽.

1989년 생인 나에게 1968년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이다. 그 때의 이야기가 내 일상에 들어온 처음은 한겨레21에서 베트남전에 관련한 칼럼을 읽었을 때다. 사실, 베트남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왜 지금까지 베트남전의 기록을 읽는 것이 중요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자는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한국에서의 베트남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시 한 번 베트남 전쟁을 생각해 본 때는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을 때다. 영화 <알포인트>을 거론하며 전쟁에 동원된 피지배 남성의 여성 착취를 다루는 부분이었다.

 

군 제도에 동원되는 피지배 계급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성찰하여 지배 계급 남성과의 연대와 동일시 욕망을 극복하고 여성들과 연대할 때, 군사주의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273p)

 

베트남전은 이렇듯 전쟁을 그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것이라고 보지 않게 만드는 사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 아래 피해자에게 착취당하는 또 어떤 존재. 지금 식으로 말하면 갑과 을만의 관계가 아닌, 갑-을-병-정-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리가 드러난 사건일테다.

 

이번 고경태 기자의 기록엔 베트남전 당시 사람들의 현재 모습도 기록됐다고 한다.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베트남전쟁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때다.

 


 

 

 

 '교양 만화'로 분류되어 있는 마스다 미리의 <평균 연령 60세의 사와무라씨 댁의 이런 하루>. 144쪽. 9000원.

 

지금까지 나온 마스다 미리의 책들은 대부분은 30대 후반, 40대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결혼하지 않고 애인도 없는 혹은 썸을 타고 있는 30대 중후반 여성들이 '이렇게 살아도 될까..'하는 일상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엔 60대 이야기다. 70대의 부모님과 마흔의 딸이 함께 사는 이야기. 아무래도 일본의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가장 일상의 것을 담는 일상툰의 주제가 된 듯하다.

 

종종 마스다 미리를 읽다보면 좀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데 책을 읽거나 하는 것보다 감성에 자신의 솔루션을 맡겨버리는 어떤 여성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솔루션이 도끼로 찍힌 것처럼 신선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던 터라, 한국에서 마스다 미리의 인기가 좀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강렬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법없이 '~지 않을까?'하는 조곤조곤한 주인공들의 솔루션이, 꼰대가 득실거리고 모두가 멘토를 자처하는 한국사회에서 불편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사실, 특별한 교양이 쌓이진 않지만 이상적인 일상툰의 모형을 보여주는 것같아 마스다 미리를 꼬박꼬박 읽게 된다. 한국의 일상툰은 보통 작가 스스로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 많아 작가가 결혼을 하거나 육아를 하게 되면 그 일상이 그대로 전해져 좋아하는 작가여도 돌아서게 되는데(결혼이나 육아를 만화에서까지 봐야하나 싶어서;;) 마스다 미리처럼 가상 인물의 일상툰이 한국에서도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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