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를 분석을 하면 할수록, 정치세력한테는 너무나 중요한 교훈을 준다, 정치세력한테는 사상, 이념, 정책적 보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진보나, 보수나 가볍게 취급하는 것 같아요. 좌파라서 그런 거 아니냐, 이게 보수쪽 입장이지 않습니까?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라고해서는, 신자유주의 배신, 이런 식으로 해서 폄하를 해버리니까, 어떤 사람은 리더십이 뭐냐, 그러기도 하고. 제가 볼 때는 그런 식으로 노무현 정부를 간단히 평가하는 세력한테는 결코 미래가 없을 것 같애요. 그 소중한 지적 보고를, 거기서 그 정도밖에 뽑아내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제가 볼 때는 명백히 기회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참여정부를 설명할 때,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이 뭘까를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얼마전까지는 제가 빙산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빙산보다는 제가 볼 때는 화산이 좋은 거 같애요. 화산지대는 말입니다. 첫째, 화산은 평소 폭발하기 전까지 잘 모릅니다. 폭발하지 않으면 사람들 아름답게 농사도 짓고, 얼마든지 잘 살거든요. 온천도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폭발을 하게되면 그때부터 완전히 삶의 방식이 바뀌죠. 폭발한 상태와 그냥 있는 상태를 보면, 폭발한 상태는 어떻게 보면 시대정신이 바꿔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화산은 뭐냐면 그냥 폭발하는 게 아니고 그 밑에, 지각구조 자체가, 화산을 일으키는 구조 자체가, 여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축적이 되야, 이게 나중에 백 년이 갈지, 천 년이 갈지 모르지만 어쨋든간에 폭발하거든요. 그래서 이 지각구조를 알게되면, 여기는 화산지대와 지진지대라는 걸 알죠.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가 있죠. 정확한 시점은 모릅니다. 언제 지진이 터지고, 언제 화산이 터지고 모르거든요. 하지만 지진과 화산의 개연성이 높다, ..."  

"노무현 대통령이 갖고 있는 국정원리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원칙과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대화와 타협이라던지, 공정과 투명이라던지, 분권자유보다도, 가장 원칙이 이거예요. '원칙과 신뢰'가 바로 정치인 노무현의 정수죠. 나머지 국정원리를 포괄하는 최상의 가치다, 그렇게 생각해요. 이게 '바보 노무현' 탄생의 모태잖아요.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해서 느끼는 매력의 핵심이 여기 있을 겁니다.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힘이죠, 이게. 그 다음에 탄핵사태 때 탄핵사태를 일으키는 원천이죠. 야당이 사실 노무현 대통령을 협박을 했지 않습니까?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런데 노대통령이 굴하지 않았고, 그래서 탄핵이 터졌는데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박이 나버린거죠. 그 다음에 아마츄어 정권의 원천이고, 진보의 대분열의 원천이죠, 이게. 노대통령은 지지자만의 대통령이 안 될라 그랬죠.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될라 그랬고 역사적 소명을 받은 대통령이 될라 그랬어요. 국민이 만약에 왕이라 그런다면 노대통령이 신하인데, 현신, 간신, 충신인데, 간신이 아니라 충신형이죠. 충신형이 뭐나면, 목이 날아가도 '아니되옵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국민에 대해서. 그게 노대통령의 특징이죠. 재벌대연정, 한미FTA는 이런 정신의 발현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원칙과 신뢰'는 시대정신과 밀착돼 있으면 성공의 원천이지만, 시대정신하고 어긋나버리면 실패의 원인이 되죠. 당연히 아집이라든지, 독선이라든지 이런 거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요."  

http://www.goodpol.net/discussion/media.board/entry/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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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외로웠던 봄

1.

사저 안마당으로 통하는 작은 대문이 입주한 이래 항상 열려있었던 기억을 지워버릴 정도로 굳게 닫혀 있었다. 뒤편 가운데 위치한 대통령의 서재는 유난히 어둡고 침침해졌고, 남과 북으로 면한 통창의 절반 이상까지 황갈색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따스한 온기를 담고 지붕 낮은 집을 찾던 남녁의 햇살은 대문 밖에서 서성이거나 안마당 위의 허공을 맴돌았다. 창문 틈의 그림자까지 잡아채려는 취재진들의 렌즈가 내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조치가 만들어낸 사저의 분위기였다.

4월 중순, 대통령의 사저는 생기를 잃어가면서 때로는 적막감마저 휘감고 돌았다. 그 안에 선 대통령은 유난히 머리가 희여 보였다. 사저를 둘러싸고 형형색색들의 꽃들이 피어나 울적한 대통령을 위로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시야에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특유의 농담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이제는 부산 사투리의 억양마저 없어진 듯 나지막하고도 담담한 대통령의 어조가 서재 밑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형님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대통령은 지인들의 사저 방문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대통령의 만류에 많은 참모와 지인들이 발길을 돌렸지만, 2009년 새해 첫 날에는 그래도 적지 않은 손님들이 사저를 찾았다. 이어지는 설 명절, 대통령의 만류는 더욱 강해졌고 손님의 숫자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서울로부터 여러 명이 참모들이 내려오는 일이 있으면 대통령은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로 다녀갈 것을 주문했다. 긴 외로움으로 생겨난 마음 속 빈 자리를 그렇게 해서라도 채워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4월, 봄이 되면 재개될 것으로 생각했던 방문객 인사는 고사하고 대통령은 오히려 사저 안으로 안으로만 갇혀질 수밖에 없었고, 사저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더욱 더 뜸해졌다. 5년 전 탄핵의 봄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유폐생활에 대통령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는 위로와 격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오히려 마음의 부담만이 커지고 있는 듯했다. 원래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기약 없이 계속되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 길었을 법하다. 재임시절 내내 은밀한 독대는 거부하면서 회의실 의자가 동이 나도록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대통령에게 홀로 앉은 텅 빈 서재는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뇌하는 캐릭터,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워크홀릭, 대통령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진보주의 연구’ 등에 대한 생각을 천착하고 다듬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작업은 예상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틈틈이 대통령은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겠나?’, ‘이렇게 된 내가 이 이야기를 한다 해서 설득력이 있겠나?’라는 회의를 스스로에게 때로는 참모들에게 던지곤 했다.

4월초의 어느 날, 대통령을 둘러싼 파란이 시작되기 1주일여 전, 대통령은 구술회의를 마치고 서재를 나서다가 무언가 아쉬움이 남은 듯 출입문 앞에서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던졌다.

“내가 글도 안 쓰고 궁리도 안하면 자네들조차도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

차마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 채 서재를 나선 대통령. 그 뒤에서 참모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거나 아니면 뒤돌아서서 소리 없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2.

길고 고독한 시간들. 그 피폐한 시간들 속에서도 서재 안 대통령의 자리 앞에는 언제나 수북이 책들이 놓여 있었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책과 자료를 찾았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그 속에서 다시 두 권의 책을 찾았고, 심지어는 외신에 등장하는 기고들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독서가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더욱 치열하게 하고 생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다.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그 주제 속으로 파고들어 애초의 줄거리에서 일탈하는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엔 그다지 흔치 않았던 일이었다. 작은 주제 하나를 이야기하는 데 인용되는 책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인간의 기원으로부터, 유전자, 국가의 기원과 역할, 지나간 우리 역사에 대한 회고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탐구하는 주제와 소재들은 방대했다. 방대한 넓이만큼이나 그 천착의 깊이도 땅속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큰 나무의 뿌리와도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식의 수준과 양의 측면에서 대통령과의 격차를 느끼던 참모들은 이 시절을 거치면서 그 격차가 더욱 커져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쉽고 편안한 대중적 언어를 구사하는 대통령이었지만, 이미 그 철학과 사상의 깊이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책을 향한 깊은 몰두를 보며 오죽하면 고시공부 할 때 독서대를 개발했을까 하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단순히 혼자만을 위한 지적 호기심 충족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읽은 책 가운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강력히 추천했다. 아니, 직접 수십 권을 구입해서 나눠주곤 했다. 작년에는 폴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회보장체제를 설명한 [유러피언 드림]. 대통령은 특히 이 책을 최고의 책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보내며 이런 책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

말 잘하는 대통령이란 세평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확실히 말보다 글을 선호했다. 독서를 좋아한 이상으로 글을 잘 쓰고 싶어 했다. 글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대통령의 수많은 욕심 가운데 최대의 것이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기막힌 카피도 종종 튀어나오고 또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즐겼다.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언어를 구사하다가 수많은 공격을 받아 시달린 경험 탓이었을까? 대통령은 말로서 사람을 설득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 설득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집착 이상의 것이었다. 글을 잘 정리하는 사람을 옆에 앉혀두고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집념이었다.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카페를 열고 시스템을 만들어 공동창작을 모색했다.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각종의 문제를 제기하고 댓글을 다는 순간, 대통령은 분명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공동창작을 위한 시스템이 뼈대를 갖추었던 날, 사저의 모든 비서들이 참으로 오랜만에 대통령의 생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글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약한 허리에 상당한 무리를 주고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글을 쓰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수록, 허리를 비롯한 육체의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밖으로부터 다가오는 힘겨움과 그 긴 시간들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책과 글에 대한 집념이 건강을 갉아먹는 악순환의 늪으로 대통령을 서서히 끌어들이고 있었다.

3.

2004년 하반기.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순방의 강행군은 대통령의 건강을 무력화시켰다. 대통령은 극도로 지쳤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치의와 진료의는 금연을 강권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흡연과의 전쟁이었던 셈. 번번이 대통령은 패배했다. 후보 시절의 금연 패치가 그러했고, 이 때의 금연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는 손님이 오면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내심으로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한 두 개비씩 조심스럽게 피우던 담배는 2005년 대연정 제안으로 인한 상처가 깊어지면서 이전의 애연가 수준으로 완전히 회귀하고 말았다.

봉하마을로의 귀향. 어쩌면 그것은 대통령이 금연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만 비서로부터 개비로 제공받는 제한적 공급에 동의했다. 이 방식이 얼마나 담배를 줄이는 데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나마의 끽연조차도 작년 말 건강진단 후에는 의료진의 강력한 금연 권고 앞에서 다시 중단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건강은 완벽한 금연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작년 말부터 시작된 상황은 대통령의 손에서 담배가 끊어지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담배, 어쩌면 그것은 책, 글과 함께 대통령을 지탱해준 마지막 삼락(三樂)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남긴 글에서 말했듯이 책 읽고 글 쓰는 것조차 힘겨워진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기댈 수밖에 없는, 유일하지만 허약한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담배로는 끝내 태워 날려버릴 수 없었던 힘겨움.

지금이라도 사저의 서재에 들어서면 앞에 놓인 책들을 뒤적이다가 부속실로 통하는 인터폰을 누르며 ‘담배 한 대 갖다 주게’하고 말하는 대통령, 잠시 후 배달된 한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대통령이 ‘어서 오게’ 하며 밝은 미소를 짓는 대통령.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 모습이 영결식을 앞두고 다시금 보고 싶어진다. 미치도록….

윤태영(전 청와대 대변인) 
 

 

http://member.knowhow.or.kr/memory/view.php?pri_no=999758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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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비굴이냐, 고통이냐 / 김종구
아침햇발
 
 
한겨레 김종구 기자
 




 

» 김종구 논설위원
 
지금 이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쓰고 있다. ‘잔인한 4월’의 마지막날, 추락하는 꽃잎은 초라하고 비장하다. 노 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지금 어떤 상념이 스치고 지나갈까. 뒤늦은 자책과 회한인가, 아니면 분노와 결연한 의지인가. 그의 얼굴 표정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앞날과 관련해 주목되는 여론의 흐름 하나는 불기소론이다. 법치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감옥에 보내지 말자는 일부 보수 논객들의 호소는 눈물겹다. 주된 근거는 국가의 위신이다. 나라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국가적 차원의 모욕감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국가의 위신 추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부에 불편한 글 좀 인터넷에 썼다는 이유로 미네르바를 구속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것만할까. 서울 한복판에서의 토끼몰이식 철거민 진압으로 죄 없는 목숨들이 죽어나간 사건보다 나라의 체면이 더 깎일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사실은 모두 부질없는 말들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겠지만, 혹시 노 전 대통령이 불기소론자들의 아량과 은총에 감읍해 용기백배한다면 정말로 ‘바보’다. 맘껏 희롱하고 조롱한 뒤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잔인한 처사는 없다.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놓고 목숨만 살려놓는 것이야말로 ‘적’에게 가하는 최대의 복수임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노 전 대통령의 가슴은 지금 검찰의 정치보복성 수사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번 수사에는 그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권력을 기쁘게 하려는 수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있었다. 검찰은 본래 그러하다. 죽은 권력에는 굶주린 하이에나요, 살아 있는 권력에는 순한 양의 속성은 세세연년 변치 않는다. 자신들의 떡값 의혹에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일반 하급공무원이 기백만원 받은 봉투에는 추상 같은 게 검찰이다. 그러니 너무 서러워하지도, 분노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런 검찰을 대통령 재임 때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원죄도 있으니 말이다.

조금 매정하게 말하면, 노 전 대통령의 앞에는 비굴이냐, 고통이냐의 두 갈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프고 괴롭겠지만 지금의 운명을 긍정하고 고통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가령 노 전 대통령이 앞으로 기소를 면한다고 치자. 그래도 그의 무죄가 확인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와 박연차씨의 돈거래를 상부상조의 미담으로 여길 사람은 더욱 없어 보인다.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진술할 필요야 없지만, 피의자의 방어권을 내세워 구차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수록 더욱 초라해질 뿐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봉하마을 집 주변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고 ‘위리안치’되는 신세나, 옥중에 갇히는 생활이나 오십보백보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 그가 한때 탐독했던 책이 마침 <칼의 노래>가 아니던가. ‘사즉생’을 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부활을 뜻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http://www.hani.co.kr/arti/SERIES/52/3526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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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무현의 입' 천호선 "검찰, 사회적 흉기"


기사입력 2009-06-10 오전 10:04:13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 동안 몇몇 인사들도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 "대통령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사를 낭독해 심금을 울렸던 한명숙 전 총리, 분노를 감추지 않아 보는 이에게 공명을 일으켰던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등.

'봉하 마을 대변인'으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그 중 한 사람이다. 천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 인터넷과 K-TV로 생중계된 청와대 정례브리핑(정권 교체 이후 생중계는 물론 일일 정례브리핑도 사라졌다)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기에 '전 대변인'이라는 문구는 부족하다.


▲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프레시안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인터넷기획실 실장이었던 천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출범 때 참여기획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해 정무기획비서관, 정무팀장, 국정상황실장, 의전비서관 등 핵심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는 2006년 8월 청와대를 떠났지만 8개월 만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컴백해 끝까지 노 전 대통령 곁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의 수많은 참모 가운데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정도를 제외하면 이 정도 경력을 갖춘 인물을 찾긴 어렵다.

지난 주말에도 봉하에 다녀왔다는 천 전 수석을 8일 오후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천 전 수석은 대변인 출신답게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은 삼갔지만 현직에 있을 때보단 거침이 없었다.

"'손발 묶기'넘어 '삼족 멸하기'로 느껴진다"

일단 천 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퇴임하면서 "정당성과 당위성을 인정해달라"고 말한 데 대해 "검찰이 피의 사실을 공표하고, 아주 의도적으로 여론을 이끌어나가면서 기소 정당성을 만들어가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정당한 수사가 아니다"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검찰을 향해 "사회적 흉기가 될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다.

'참여정부에서 검찰을 놓아주긴 했지만 개혁은 못한 거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천 전 수석은 "논쟁적 대목"이라고 일부 문제제기를 인정하면서도 "제도적 개혁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검찰을 통해 손발을 묶겠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아예 삼족을 멸하라는 의도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천 전 수석은 "지금 현 정권의 의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후자로 느껴질 수밖에 없게 주위 사람들이 체험하고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권력에서 독립했다'는 인식이나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민주주의를 되돌릴 순 없다'는 인식은 착각이었을까? 노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었다.


ⓒ프레시안
천 전 수석은 "제일 어려운 질문"이라면서 "노 대통령은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확보된 민주주의적 권리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쉽게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한편으로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미약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주권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중 진보진영과 논쟁 때로는 신경전은 적잖았다. 서거 이후에도 인터넷 상에서 지지자들과 진보진영 사이에서 비슷한 논쟁이 전개되는 모습도 보인다.

핵심적 논란거리였던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에 대해 천 전 수석은 "두 문제는 좀 달랐다"고 말했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 노 전 대통령 본인의 고민도 컸지만 한미 FTA에 대해선 확신이 있었던 것.

하지만 천 전 수석은 "하나 하나의 정책을 놓고 그 정책이 진보냐 보수냐 판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면서 "하나 하나 쪼개놓으면 보수적일 수도 있지만 큰 국정운영을 진보적 방향으로 하기 위해 때로 양보해야 할 것과, 타협해야 할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일반 민주주의 퇴행 국면에서 이른바 개혁 진영과 진보 진영의 연대가 나름대로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은 여전한 논쟁거리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기적 국면에서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해야될 지점이다.

"민주당, 지켜보고 격려하겠지만 한계가 있어"

현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천 전 수석은 조심스러웠지만 말을 아끼진 않았다. 그는 "추모 열기가 깊고 오래 갈 것이다. 각급 선거까지 갈 것이다"고 내다봤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남겨준 자산과 숙제를 어느 누구가 독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해왔던 분들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겠지만 '친노냐 아니냐'해서 배타적 정치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유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관계에 대해선 "앞으로 지켜보고 격려하겠지만, 한계가 있다"고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친노진영 내에서도) 단기 처방은 틀리고 서로 연합하고 연대하고 하는 과정들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천 전 수석이 친노진영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이른바 친노정치세력화는 민주당 안과 밖, 투 트랙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단일 구심을 형성할 사람도 마땅찮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두 분은 지금도 훌륭하지만, 더 큰일을 통해 훌륭한 지도자로 더 거듭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만 말했다.

이렇든 저렇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친노세력은 '폐족 신세'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유시민, 한명숙이 차기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 오세훈 시장을 따돌리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물론 '노무현 후광효과'가 이 정도 크기로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방선거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 혹은 '반MB진영'에서 친노세력은 주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천 전 수석의 희망대로 친노세력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수 있을까?

다음은 한 시간 반 동안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수사 정당성 인정해달라? 언어도단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퇴임사에 보면 "노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자신이 '보혁'의 중간에 끼어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천호선 : 나름대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지 않나. 검찰의 독립성을 진정으로 지키는 게 중요한데, 독립성은 양면이 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독립성, 하나는 내부에서 스스로 어떤 정치적 편견 갖지 않게 치우치지 않게 지키는 것이다.

임 전 총장이 청와대나 법무부의 박연차 수사에 대한 지휘 여부에 대해선 '노코멘트'라던데….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 와서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싸워줬어야 하는 문제다. 지금 이야기는 자기 변명 아닌가?

프레시안 : 이인규 중수부장 체제로 수사를 마무리하고 가는 것 같다. 어쨌든 임 전 총장은 "안타까움은 있지만 수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은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게 검찰 전체 입장인 것 같은데

천호선 : 아주 정의로운 집단이 있고, 그런 집단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부여되서 정의를 지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를 보면 그런 검사가 나오고 일부 법을 뛰어넘는 행위가 용인된다. 간혹 국민들이 그런 검사상을 바랄수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검찰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볼 때도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 검찰의 주류 세력이 정치적 편견이나 선입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주어진 법 조건을 뛰어 넘어서 위법적이고 불법적 권한까지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리고 그에 대해 사후에 아무런 문제 제기 되지 않고, 또 처벌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검찰이 때로는 사회적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검찰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첨병이어야 한다. 지금 갖고 있는 법적 권한으로도 정의를 세우는데 부족하지 않다. 검찰이 주어진 권한을 뛰어넘어, 피의 사실을 공표하고 아주 의도적으로 여론을 이끌어나가고, 그것을 통해 실질적인 재판을 이끌어 나가고, 기소 정당성을 만들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정당한 수사 아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 정당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프레시안 : 방금 '검찰 주류 세력'이라고 언급했는데 참여정부 시절 임명장을 받은 임채진 전 총장은 물론이고 이인규 중수부장 역시 그때도 아주 잘 나가던 검사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이라는 게 뭐였을까? 천정배 법무장관 시절 수사지휘에 반발하면서 김종빈 당시 총장이 사표를 쓰며 저항했고, 나아가 '차떼기 수사'로 범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송광수 총장도 검찰개혁에 반발했었다.

'검찰 주류'는 참여정부 때도 지속적으로 강화됐다. 개혁이라기보다 그냥 '놓아버린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천호선 : 노 전 대통령은 기존 대통령이 가져왔던 초법적 권한을 스스로 내려놨다.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메시지는 대통령 당신이 법을 뛰어넘는 권한을 스스로 내려놨듯이 검찰도 법을 뛰어넘는 수사나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자기 편 사람, 또는 개혁적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을 (수뇌부에) 임명해서 이끌어나가려 했다기보다, 검찰 스스로의 자기 개혁을 기대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민주주의, 역행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을까

프레시안 : 검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몇 번 부딪혀 보다가 검찰 자체에 넘긴 것은 어떻게 보면 책임방기 아닌가?

천호선 : 논쟁적 대목이다. 우리 안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박연차 리스트 사건 터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했겠나. '그것 봐라, 검찰을 바꿨으면 이런 고생은 안 했을텐데…'라고. 하지만 대통령께선 '그런 부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자율적으로 개혁해 나가는 게 옳다'는 식의 생각을 주변 분들에게 이야기했다.

프레시안 : 그럼 검찰을 자정 능력 혹은 자기개혁 능력을 갖춘 집단이라고 신뢰했다는 이야긴가

천호선 : 자정능력을 신뢰했다기보단,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고 제도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할 일이라고 보는 것인데. 제도적 개혁은 대통령 권한으로 하루 이틀 이뤄질 게 아니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시간을 갖고 여야가 합의하고, 법조계 전체가 동의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하는 거니까. 실제로 시도하려 했던 것이 몇가지 있다.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같은 것. 경찰 수사권의 독립 등 이런 것이 제도적 접근인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 엄청나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뤄지진 못했다. 제도적 개혁을 신경쓰지 않았다는 지적은, 제 입장에선 편견인 것 같다.

프레시안 : '이미 검찰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했다. 다른 권력기관도 마찬가지다'는 인식, 나아가 '일반 민주주의는 비가역적이라는 인식' 예컨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역사가 거꾸로 가진 않는다"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도 있었다. 그건 노 대통령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진보진영도 가지고 있었던 인식이다. 돌이켜보면, 잘못된 생각이었을까?

천호선 :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저는 대통령께서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확보된 민주주의적 권리나 권리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한편으로 있었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이 대통령 된 것도 '참 운이 많이 따른 일'이라 한 것처럼 아직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적인 제도나 이런 게 서구 나라처럼 오랜 투쟁 과정을 통해서 이뤄졌다기보다 갑자기 주어진 게 적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 주권운동 등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쉬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지켜내는 시민들의 노력도 커져야한다'는 양면의 생각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본 게 아닐까 싶다.

"파병과 FTA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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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노 대통령 재임 중에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언급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연세대 특강(보수와 진보에 대한 구별에 대한)도 그렇고 최근 공개된 유고(진보주의 연구)를 보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진보적 문제의식에 천착했구나 싶다.

참여정부에 대해 진보적 관점에 입각한 논의가 많지만 논란꺼리는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두 개로 집중된다.

천호선 : 진보, 보수 혹은 좌파, 우파까지 말이 많다.

어쨌든 일단 진보라고 놓고 말해보자.

대통령께선 국정운영을 하면서도 진보를 고민했고, 유고에도 남아있지만 퇴임 후에도 국정운영을 반추하고 자기성찰을 하는 과정을 갖고 있었다.

파병에 대해선 재임 중 공식적 자리에서도 "나중에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이 있었다.

다만 대통령 생각이라기보다는, 제 생각에는, 진보라는 것을 결국 다수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본다면 하나 하나의 정책을 놓고 그 정책이 진보냐 보수냐 판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하나 하나 쪼개놓으면 보수적일 수도 있지만 커다랗게 국정운영을 진보적 방향으로 하기 위해서 때로는 양보해야 할 것과, 타협해야 할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이 전형적인 그런 케이스일 수 있다. 파병 자체로 보면 진보적 결정이라 볼 수 없지만 당시 남북관계과 한미동맹 상황을 놓고 보면 동맹으로써 최소한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남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에 보다 유연한 태도를 촉구해나가는 것은 커다란 의미에서 보면 진보적인 성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옳으냐 그르냐를 이 자리에서 말할 것은 아닌데, 어쨌든 이라크 파병은 대미관계에 있어 어떤 레버리지를 삼기 위한 불가피성 등에 대한 깊은 고민 같은 것이 엿보였다. 반면 한미 FTA 경우는 '수단적으로도 맞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노무현식 개혁을 위한 노무현식 외부충격론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천호선 : 한미 FTA를 통해 통한 개방과 도약을 의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봐야 할 것 같다. 반대하는 쪽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다.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있었고, 개방도 좋은데 한미 간에 먼저 하는 것은 전술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개방은 불가피하고, 개방을 통해 한국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불가피하게 약화 되거나 피해보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부분은 개방을 안 해도 장기적으로 마찬가지 피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농촌 문제 등인데, 그 쪽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세우자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개방이 되면 꼭 양극화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주장이 많이 제기됐기 때문에 개방에 대한 복지 정책의 실현 등을 모색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미 FTA와 비전2030은 한 패키지의 정책이다. 한 패키지의 매우 거대한 정책이라고 보면 될것 같다.

프레시안 : 경찰 수사권 독립, 검찰권 독립 같은 문제랑 마찬가진데 한미 FTA의 경우, 재계나 이른바 기득권 층에선 자기들한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고 비전2030 같은 것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온데 간데도 없다

천호선 : 모든 사회 집단이 다 그렇다. 특이한 현상이라 보기 어렵고,

"현 정부, 정치적 협량함 뛰어넘지 못해"

프레시안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거대한 추모열기. 대체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내지는 '나도 그에게 돌을 던졌다'는데 대한 후회가 첫 번째 인 것 같다. 두 번째는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안타까움. 이게 겹합된 것 아닌가 싶은데

천호선 : 우리는 상을 치르느라 이 열기를 객관적으로 자료를 갖고 분석해본 적은 없다. 저는 여러 가지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분노도, 안타까움도, 미안함도. 그 중 미안함이 큰 동기 중 하나 아니냐는 해석에 공감이 간다.

프레시안 : 퇴임 후 현 정권과 관계를 짚어보자. 첫 번째로는 서거 이후 장례를 치르는 동안의 관계가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대통령 기록물 논란이 났을 때를 포함해 대선 이후 지난 1년 반 동안의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첫 번째부터 이야기 해보자. 실무자들한테 확인해봤는데, 봉하 마을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의 애도화환을 택배 기사가 들고 왔더던데

천호선 : 화환을 수석 혹은 비서관 등 어떤 '인사'가 가져온 것은 아닌 게 맞다. 그런데 저도 김영삼 전 대통령 생신 때 난을 들고 가봤지만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난은 '인사'가 들고 간다. 그런데 전 대통령 서거 같은 일이 있을 때 일단 애도 화환이 먼저 따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더 큰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 애도화환 문제로 뭐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프레시안 : DJ조사나 만장 깃대 문제 등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천호선 : 정부가 행정적으로는 굉장히 열심히 도와주려 애썼다고 생각하는데, 추도사나 노제 문제를 보면 정치적 협량함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본다.

추도사 문제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지도 않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하라고 해도 안했을 것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라는 약간의 파격이나 배려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사안이 어디까지, 최고위층'까지 보고된 뒤 결정됐는 진 모르겠지만..

프레시안 : 서거 전에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참여정부 인사들이 부당한 탄압을 받은 사례를 모으고 있다고 그랬었다. 퇴임 후 일년 반 쭉 짚어보자. 사례를 전해줘도 좋고

천호선 : 참여 정부의 모든 인사를 대상으로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요 인사를 대상으로 해서 무언가 사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꼬투리를 찾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검찰, 국세청, 감사원이 동원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감사원이 대부분 공기업을 몇 달씩 특별 감사 했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사장, 감사가 무슨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는지 찾아내려고 했고, 일부 그런 것들을 예단하고 기사를 흘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거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국세청은 대통령과 인연을 가진 한둘 밖에 안 되는 기업인을 타겟으로 해서, 기업인들의 일반적 취약점이 있지 않나, 어떤 목표를 세우고 세무조사를 한 것이다.

프레시안 : 노 전 대통령이 잘 가던 효자동의 삼계탕집 토속촌 세무조사했다는 소식도 있다. 이건 참 너무 '찌질한' 것 같은데 또 다른 케이스가 있을까?

천호선 : 대통령 측근 모 인사를 도와준 어떤 사람의 통장을 털다가, 그 통장에서 사업하는 자기 후배에게 돈을 꿔줬다가 받은 것을 보고 그 업체를 압수수색했다. 모 인사도 아니고 모 인사를 도와준 사람이,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꿔 준건데, 왜 꿔줬는지 보려고 압수수색했다는 말이다.

"'환상 속의 공포'에 사로잡힌것 아닌가?"

프레시안 : 노 대통령 '측근이라는 대표적 인물 한 두 명을 손 봐서 손발을 묶겠다는 의도 였을 수 있고, 아니면 아예 '삼족을 멸해라'는 의도였을수도 있다. 뭘까? 서거 직전 국면 을 보면 후자였던 것도 같은데

천호선 : 지금 현 정권의 의도를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후자로 느껴질 수밖에 없게 주위 사람들이 체험하고 체감하고 있다.

프레시안 : 촛불 정국 때 인터넷 등에서 노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을 비교한 글과 사진이 넘치는 등, 어떻게 보면 과도할 정도의 이른 재평가가 엿보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현 정권의 위기의식을 자극했을까

천호선 : 현 정권에는 '노무현이 정치를 재기할 가능성 있는 것 아니냐'부터 '참여 정부 세력의 존재 자체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된다'까지의 폭을 가지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대통령 본인이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진 모르겠지만.

그건 참 잘못된 생각이다. 퇴임 후부터 서거 직전까지 현 정부가 수행하는 중요한 정책을 먼저 나서서 비판한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는 본인이 세력을 만든다는 것인데 '노무현이 정치를 재개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속의 공포일 뿐이다.

"배타적 정치세력 형성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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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봉하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지인 진보주의 연구에 동참을 제안하는 글도 나왔다.

결국 현실정치와 연결될 수 밖에 없는데

천호선 : 함부로 해석할 순 없지만 제가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대통령께서 스스로를 던지신 것은 자리를 비켜주신 것이다.

두 가지인데 당신이 존재하는 이상 주변 사람의 탄압과 모욕, 그리고 고통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하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대통령과 함께 해왔던 참여 정부 인사들이나 대통령 적극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노무현의 존재, 노무현 때문에 함께 씌워진 굴레 때문에 어떤 과제를 앞으로 해결해나가는 데 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 짐은 당신이 진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저희가 보기에, 참여정부가 왜곡되고 저평가 되고 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게 굉장히 오래간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재평가가 있겠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활동을 하려 했는데 대통령이 비켜주시면서 우리 사회와 국민들이 기존에 가졌던 어떤 왜곡된 인식, 선입관, 편견들이 치워졌다. 참여정부의 성과가 갑자기 눈 앞의 자산이 됐다.

이 자산을 어떻게 앞으로 국가 발전에 도움 되는 형태로 만들어갈 것이냐가 큰 숙제가 됐다. 하나는 시민주권운동으로 풀 과제가 있고 또 하나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는 것이다. 길게 가져갈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당면의 문제로 다가와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야하게 됐다.

프레시안 : 진보주의연구는 미래발전연구원에서 맡고, 또 현실 정치에 조응하는 부분은 다른 쪽에서 맡게 될 텐데. 역할 분담이라든가 실질적 적용이 어떻게 될까? 이른바 '친노'라고 해서 모두 생각이 완벽하게 같은 것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어느 한 사람이 '내가 대장이다. 내가 진짜 후계자다'이러고 나설 수도 없는 것이고

천호선 : 남겨진 자산과 숙제를 어느 누구가 독점할 수 없을 것이다. 크게 얘기를 벌려서 보자면, 노무현이 던진 자산과 숙제는 모두의 것이고, 누구든지 자기 성찰적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참여정부 인사도 그렇고, 보수 언론에는 기대 하지 않지만 진보적 내지 양심적 언론도 그렇고, 지식인 사회도 그렇고, 국민들도 성찰적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큰 부분은 정치적 실천에 있을 텐데,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역할을 하기보다는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흔히 '친노 독자세력화'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해왔던 분들이 많은 자산도 받았고 숙제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겠지만 '친노냐 아니냐'해서 배타적 정치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유지에도 맞지 않는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선 대통령 주변 사람들 중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지켜보고 격려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프레시안 : 결국 현실 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예컨대 민주당과의 관계는? 정세균 지도부 같은 경우 이른바 친노진영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안희정 최고위원도 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이다. 당밖에 있는 정동영 의원은 그 반대 케이스다. 민주당 등과 관계 설정은 어떻게 될까?

천호선 : 결국 대통령 추모 열기 속에서 생긴 국민들의 의식 변화는 매우 깊은 것이고 그래서 멀리 갈 것이다. 노제를 치르며 경복궁부터 서울역 광장까지 갈 때 운구 행렬 맨 앞에서, 국민들의 말을 듣고 표정을 봤다. 당장 무엇을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열심히 도와줄 테니, 노무현이 이루지 못한 정치적 꿈을 이루어라'는 것으로 봤다. 그래서 결국 당장에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대중적 움직임을 넘어 앞으로 선거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게 내 인식이다.

국민의 이런 깊은 문제 의식이나 멀리 갈 추모 열기를 정치적으로 모두 담아내는 데는 민주당이 한계도 있어 보인다. 민주당 내에도 노무현 대통령을 존중했온 사람도 있고, 또 몇 가지 문제에서 비판적이었지만 존중 자체를 잃진 않은 사람도 있고, 또 적지 않게는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도 있다.

민주당이 작년 촛불이나 지금 추모 열기에서 나타난 국민의 요구를 담는 데는 세력적으로나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민주당 노력을 앞으로 지켜보고 격려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이런 부분에서 앞으로 국민들의 의지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담아나갈 것인가는 큰 숙제다.

프레시안 : 그 부분은 아주 예민한 지점이다. 예컨대 친노신당론이 있고, 영결식에서 가장 주목된 장면 중 하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열하는 부분이 상징할 수 있는 민주당으로 대동단결론이 있을 수 있다. 이 두 이야기 사이에서 긴장관계가 깊어질까?

천호선 : 그 부분은 일단 접자. 49재까지 잘 치르고, 잘 보내 드리고 나서 다양한 국민적 토론이 일어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추모의 흐름이 깊고 길어 선거에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내년 지방선거가 곧바로 서거 1주기 즈음에 치러진다.

천호선 : 상중에 벌써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건 객관적 분석 틀이니까. 그리고 지금 유시민, 한명숙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것 자체가 정치적 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5.18때 광주 가고 5.23(서거일)에 봉하 가는 것이 영호남 민주화세력의 통합 기제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현실 정치에 주요 변수다.

"차이를 인정하고 연합해 나가지만 결국 하나 된다"

천호선 : 그건 그렇다. 어쨌든 (이른바 친노 안에서)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은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대로,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하는 사람대로, 민주당 안에 있는 사람은 안에 있는 사람대로, 밖에 있는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대로 나름대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단기 처방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될 것이다.

당장의 민주대연합론식의 이야기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차별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연합하고 연대해 나가는 게 정치의 본질이라 보면, (친노 내에서도) 단기 처방은 틀리고 서로 연합하고 연대하고 하는 과정들이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서거 정국에서 국민들 눈에 세 사람이 들어왔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절도 있고 격조있는 모습들, 품격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워낙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니….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 역시 온화하면서 격조있는 모습을 어필했다. 분노를 감추지 않는 유시민 전 장관의 모습도 지지자들 사이에 많은 공명을 일으켰다. 이런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망해본다면?

천호선 : 너무 저널리스틱한 질문이다. 잘못 답변하면 무지 욕먹을까봐 추상적으로 재미없게 답하련다.(웃음) 추모 열기가 깊고 멀리 갈 거라고 이미 말했는데, 지금 한 두 사람이 어느 공직에 출마하느냐 자체는 부차적인 문제다. 다만 내 개인적 소망을 이야기한다면, 어느 분이든, 개인적 거취 문제를 뛰어넘어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에서 이루고자 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을 찾는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

프레시안 : 앞으로 정국 전개가 중요하겠지만, 노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정치인이 성공하려면 권력 의지가 어느 정도 크냐가 중요한 문제다. 두 사람을 보면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한 것도 같다.

천호선 : 지금 이런 정국이 되면서 '누가 다음 지도자 될 수 있을까'라는 국민의 관심이 있다. 지도자가 정치에서 꼭 필요하지만, 지도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지도자 개인을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정치인 노무현'의 뜻에도 맞지 않다. 당신이 계속 꿈꾸고 이루려고 했던 것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긍정적으로 지켜보고 공감한 것처럼,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고를 가진 정치세력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방금 언급한 분들은 지금도 훌륭하지만, 바로 이런 것들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더 큰일을 통해 훌륭한 지도자로 거듭나실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게 아니겠나


/윤태곤 기자,박세열 기자,여정민 기자(=사진)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609164403&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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