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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이념의 광우병으로 뇌송송 구멍탁! 반신불수 되다 
 - 신자유주의 프레임 자체를 버려라

심상정, 제발 오바(over)마!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자가 (획기적인 변화와 개혁의)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에 대해,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오바마 당선자가 그 소리를 듣는다면 '버락' 화를 내며 '오바(over)'마!"라고 할 것이라고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런데  자칭 진보 개혁을 표방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동관 보다 훨씬 심한 '오바'를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미국의 금융위기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면서, "한미FTA 훈수가 아닌 '고해성사'"를 요구한 것은 오바 중의 오바라고 할 수 있다.

 

결론만 먼저 얘기하면, 심상정은 노무현에게 "내 재임시 한미FTA를 밀어붙인 것은 과오였다. 금융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나의 인식은 한계가 많았다. 국민 여러분들께 사죄드린다"는 얘기를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닌 심상정 자신이 국민들에게 "한미FTA를 결사 반대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고해성사를 요구한 것은 나의 과오였다. 금융세계화와 개방과 한미FTA에 대한 나의 인식은 한계가 많았다"면서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0~90년대 군사독재정권은 간혹 돌출하는, 민족/민주/민중 운동의 과격한 행위를 빌미로, 사건과 상관이 있건 없건 그 조직과 가치들을 용공이라면서(공산주의를 닮았다면서) 싸잡아 탄압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심상정 비롯한 적지 않은 진보 좌파들이 미국 금융위기와 오바마 당선을 계기로 인과관계나 상관성을 찬찬히 따져보지도 않고, 참여정부가 추구해 온 가치가 신자유주의를 닮았다면서 고해성사와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심상정은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참여정부가 "제조업을 경시하면서 금융허브를 발전 동력으로 삼고자했던 무모함을, 금융자유화를 제도선진화로 잘못 이해한 '한미FTA'의 과오를 인정"하고 "구국의 심정으로 한미FTA는 역사적 오류였다고 지금이라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라고 한다.

 

이는 침소봉대, 거두절미, 인과무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수법으로 '용공(공산주의)'조작을 당할 때의 경험을 살려서, 비슷한 방식으로 '용신(신자유주의)'조작을 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용신'조작의 결론은 금융허브 전략과 한미FTA협상의 폐기이다. 이로써 시장의 자리에 정부를, 자유의 자리에 규제를, 민영화의 자리에 큰 공공부문을, 선진적 금융기법의 자리에 박정희식(좋게 보면 1960년대 독일.일본식) 금융통제를 앉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이것이 성공한다면 주관적 선의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시장과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여 명백한 실패 국가를 만든 조선노동당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사상이념적 광우병은 반신자유주의 프레임

 

심상정의 헛소리 내지 헛발질을 연출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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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착각과 무지다. 대표적으로 미국발 금융 위기와 한국의 과잉 충격의 원인에 대한 무지와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무지이다. 결정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지이다.(그런데 미국발 금융 위기와 한국의 과잉 충격 문제는 논지 전개상 꽤 필요하지만 너무 길어서 독자들이 지칠 것 같아서 글(2)로 떼어냈다.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105)

 

둘째는 미국과 개방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국과 개방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심리라고도 할 수 도 있다. 이는 미국과 개방의 의미를 몰라서만이 아니다. 과거의 혹독한 체험의 잔상이 많이 남아 현재 바뀐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불에 한번 데인 아이가 한 동안 불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는 미국처럼 쎈놈과 협상하면 우리가 무조건 당하며, 미국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각종 장벽을 낮추어도 우리가 무조건 당한다는 예단으로 나타난다. 심상정은 한미FTA를 '미국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불평등협정'이며 '미국의 법과 제도를 일방적으로 이식'하는 계기라고 본다.

 

자동차 관련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망한다고 본다. 이는 과거 한국을 미국의 '괴뢰'나 '식민지(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나 식민지반봉건사회)'로 인식하던 사고의 관성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심리적 장애가 있기에 심상정이 자신은 무조건적인 개방 반대론자가 아니라고 해도 감성은 이를 거부하게 되어있다. 결과적으로 찬성할 개방이나 FTA협상은 별로 없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는 규제완화, 민영화, 정부의 규모나 권능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주된 지지층의 이해관계이다. 사실 나는 한때 반신자유주의 기치아래 시장주의, 자유주의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업, 교육, 재정, 보건의료복지, 공공부문 등 바닥현실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는데,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물질적 이익(이해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해관계는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참여정부 류가 주타격 방향이기 때문이다. 즉 심상정과 그 일파들에게는 참여정부 추종(?) 대중들은 전취해야 할 대상이기에 지금은 참여정부의 반동성과 후진성을 폭로, 고립시켜야 하는 것이다. 물론 노무현과 참여정부와 철학, 가치, 정책을 공유하는 세력들이 신자유주의에 세뇌되어 한국의 대외의존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존재들이 맞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지층들이 그 본질을 모르고 추종한다면 노무현과 참여정부류를 줄기차게 공격, 폭로, 고립시켜서 그 지지층들을 전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심상정 류의 반동성과 후진성이 폭로되어 그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겠지만......

 

위에서 말한 헛발질의 세 요소를 인류 역사상 최고(最高, 最古)의 심리학 이론인 불교식으로 정리하면, 첫째는 무지, 어리석음=치(癡)이고, 둘째는 증오심, 분노=진(嗔)이고, 셋째는 이해관계, 탐욕=탐(貪)이다. 불교에서 탐. 진. 치 삼독을 떨쳐내면 열반에 든다고 하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삼독에 너무 쩔어 있으면 곤란하다. 심상정 등 상당수 진보 좌파는 삼독에 쩔어도 너무 쩔어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무지와 착각, 피해의식, 물질적 이해관계가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신자유주의 반대를 진보의 총노선으로 삼는 이념이 하나 만들어졌다. 민주노동당 전 대표 권영길은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2002. 1. 14, 178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시기 진보정치의 핵심적 요구는 '反신자유주의(反약탈주의)'여야 한다. IMF가 요구하고 있는 일방적 금융개방, 대기업의 해외매각, 공기업 사유화, 대량해고 등을 반대하는지가 이 시대 진보의 기준이다.'

 

이는 지금 상당수 진보 좌파 세력에게 상식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유력한 창이자, 안경이기도 하다. 나는 심상정과 상당수 진보 좌파 인사들이 신자유주의라는 사상이념적 광우병에 결려 뇌에 숭숭 구멍이 뚫리면서 반신불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안전망, 고용안정, 시장 폭력 완충 등 진보 개혁의 왼쪽 팔다리에서 나오는 힘만 쓸 뿐 시장주의, 자유주의라는 오른쪽 팔다리에서 나오는 힘을 거의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왼쪽 반신만 쓰는 중풍환자의 힘은 온전한 사람의 절반이 아니라 그 1/10, 1/100도 안되듯이, 왼쪽 가치만 부르짖는 진보, 개혁 세력의 힘은 왼쪽, 오른쪽을 자유자재로 쓰는 온전한 진보 개혁 세력의 힘의 1/10, 1/100도 안된다.

 

신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버려라

 

나는 신자유주의라는 불량 안경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주도권 경쟁의 승패는 '신자유주의'와 '친북좌빨'이라는 각자가 사용하던 오랜 흉기 내지 불량 안경을 누가 먼저 쓰레기통에 버리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유럽, 미국, 일본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쓰이는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거의 공공의 적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없다. 그 많은 보수 인사 중에 신자유주의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 같이 개별 정책으로 말한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 신자유주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공공의 적이자 만악의 근원이다. 신자유주의 개념 규정도 제각각이다. 노무현과 심상정의 개념도 다르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를 '작은 정부 사상'을 핵심으로 한 부자를 위한 정책,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으로 규정하였다. 심상정, 정태인은 신자유주의가 부자와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이라는데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작은 정부 사상은 '70년대의 시카고학파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초기에 나온 학설'이라고 일축하고, 신자유주의의 핵심 내용은 개방과 규제완화, 민영화를 핵심으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미FTA는 워싱턴컨센서스를 실현하는 경제체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전형이라고 하였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고, 신자유주의로 통칭되는 정책 중에서 아주 극단적인 정책에 한해서만 시장만능주의, 시장근본주의라는 표현을 쓴다. 최용식 21세기 경제학연구소장은 드물게도 '진보가 신자유주의를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해석, 도입'할 것을 강조한다.

 

"그동안 국내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만악의 근원으로 낙인찍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즉 개방화, 민영화, 규제완화 등을 추구하지 않고 경제가 번영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보수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면 사회적 혼란이나 국제적 분쟁을 초래하거나 오늘날과 같은 금융위기를 부르곤 하지만, 진보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면 사회 안정과 국제 평화 속에 경제번영을 누린다는 것이다(미래창조포럼 국민 대토론회 토론문, 2008.11.19)."

 

그는 그 예로 영국 토니 블레어 정권, 미국 클린턴 정권, 아르헨티나  메넴 정권, 브라질의 까르도수와 룰라 정권, 호주와 뉴질랜드의 노동당 정권, 중국 공산당을 들었다. 요컨대 최용식에게 신자유주의는 '부자와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작은 정부와 개방화, 규제완화, 민영화를 강조하기는 하지만 시장만능주의도 아니다. 한국 진보가 현 시점에 주체적으로 해석, 도입해야 할 경제 정책 패키지라고 한다. 최용식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위기 역시 "신자유주의의 산물도, 파생금융상품이 빚은 산물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내 생각도 최용식과 대동소이 하지만 나는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자체의 폐기를 주장한다. 그것은 사회주의나 사민주의적 가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빨갱이라는 개념을 세분화하여 엄밀히 규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 개념 자체를 폐기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심상정은 신자유주의자를 세분하려는 시도를 한다. 노무현은 그냥 신자유주의이고, 이명박은 막가파식 토건형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그렇다면 심상정 눈에 최용식은 무슨 신자유주의일까? 줄.푸.세를 내세우는 박근혜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박세일은? 사회(민주)주의적 가치의 합리적 핵심과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합리적 핵심을 옹호하는 김대호는 무슨 신자유주의 일까? 나는 안다. 좌파신자유주의!

 

실체도 모호한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시비가 유독 한국 진보 진영에서만 넘쳐나는 이유는 한국 진보의 지적 나태 내지 지적 오퍼상 전통과 관련이 있다. 공동체자유주의를 주창하는 박세일 교수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피력했다.

 

"우리나라에는 신자유주의가 옳으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미국의 이야기이고 유럽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자기 할 일은 잃어버리고 남의 집 싸움에 나서는 셈이다. 그 동안 한국의 전통적 담론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허구와 허구의 싸움이었다. 신자유주의도 올바로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사회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진정한 문제는 무엇을 해도 제대로 성공시키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는 원인을 찾고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 학자들이 자기들 상황에서 이야기 하는 것 가지고 떠들 것은 없다 한마디로 우리는 신자유주의도 하고 사민주의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고 사민주의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문제를 풀 '능력과 구조와 주체'가 없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문제이다. 그래서 중진국이 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흔들리고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한겨레21, 제736호(2008.11.21))"

 

박세일이 지적한 한국 지식사회(국가 경영담론)의 오퍼상 전통과 더불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처럼 복잡다단한 현실을 단순하게 설명하려는 경향도 신자유주의 시비를 확산하는데 일조했다고 보아야 한다(차베스는 국내 유가를 1리터에 20~30원으로 유지하여 미국의 온갖 폐차장 차를 다 들여오게 만들고, 국제 외교 무대에서 끊임없이 반미, 반신자유주의를 고창하는 등 한국 진보 좌파와 정서와 용어가 정말 비슷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 나라 보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후졌을테니까. 한국의 후진 진보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처럼....).

 

이는 중세 시대에는 만악의 근원으로 사탄과 마녀를 지목했고, 근대에 들어서는 우파는 공산주의를, 좌파는 자본주의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지목한 심리의 연장이다. 확신컨대 진보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사용하면, 다시말해 시장 만능주의에서부터 (오바마는 물론 북유럽 사민당도 채택하는) 건강한 시장주의, 자유주의까지를 다 포괄한다면, 결국 대중적으로 거부당해서, 15~20년 전쯤 진보가 한창 써대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나 '식민지반봉건사회'라는 개념처럼 이념의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 볼 수 있는 퇴물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론의 진짜 패악

 

내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에서 든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내가 가장 심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놈의 편광 안경이 국정과제 내지 진보, 개혁 과제의 우선 순위를 완전히 뒤바꿔 놓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럽, 미국, 일본에서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저성장-고인플레이션에 봉착한 케인즈주의/복지주의에 대한 반동(Anti these)으로, 이론적으로는 시카고학파가, 정치적으로는 대처와 레이건에 의해 구현된 경제사회 정책패키지로 간주된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컨셉은 대처리즘으로 정식화되었는데 요약하면 "개인을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기업을 정부와 노조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정부를 복지부담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정책의 주요 지렛대는 엄격한 통화관리(통화주의), (공급중시 경제학에 기초한) 소득세와 법인세 등 직접세 감면,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과도한 노조의 권능 약화, 복지 지출 억제 등이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교조는 아니다. 당장 대처와 레이건 시기부터 달랐다. 대처는 실업 증가의 후과로 GDP대비 복지지출을 많이 늘렸고, 레이건은 현상 유지했다.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핵심 컨셉에 흐르는 정신이다. 이는 첫째,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면서 전향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일찍이 아담스미스가 역설한 시장과 경쟁에 대한 믿음과 유사시 국가의 조정통제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여기에는 자유와 풍요의 대가로서 시장과 경쟁이 초래할 충격과 불안을 어느 정도는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셋째, 개인(민간)의 자율 책임성과 창의성에 대한 믿음과 자본 운동의 장벽을 최대한 낮추고, 자본운동에 물려진 재갈(규제)을 가능하면 느슨하게 해야 경제와 사회의 활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이다.

 

이제 한국에서 개인과 기업의 창의와 열정을 옥죄는 존재, 자본 운동을 옥죄는 재갈이 무엇인가 따져보자. 복지병인가? 절대 아니다. 노조인가? 대기업, 공기업에서는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재갈은 따로 있다. 대부분의 벤처. 중소기업에게 물어보면 재벌.대기업의 불공정거래, 내부자 거래를 지목할 것이다. 똑똑한 소비자에게 물어보면 무수한 독과점과 너무 허술한 소비자 보호조치, 너무 취약한 소비자 정보를 지목할 것이다. 똑똑한 납세자에게 물어보면 재정이 쓸데없는 도로, 공항, 건물(SOC 건설) 짓는데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재정, 특히 지방 재정 관련 감시.통제가 너무 느슨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에 활력을 가져오는 도전자, 비기득권자들에게 물어보면 기득권자들이 쳐놓은 진입장벽, 경쟁제한 장벽이 너무 높고 강고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정부의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교육, 보건, 의료 분야 종사자들에게 물어보면 지키기 힘든 법규, 시행령이 너무 많고, 공무원들의 자의적 권능(규제, 단속, 처벌권, 결정권 등)이 너무나 크다고 할 것이다. 원래 교통 법규나 정치자금 법규처럼 대부분이 지키기 힘든 법규가 많은 곳에서는 처벌(단속)권의 위력이 더 커지는 측면이 있다.

 

자본운동의 활성화 측면에서 창의와 열정이 뛰어난 청년 인재의 배분 상황을 보면, 한국 공공부문의 처우는 너무 높고 안정적이어서, 자격증으로 보호되는 전문직, 민간 재벌대기업과 더불어 청년 인재의 진공청소기로 되어 있는 현실이 보일 것이다. 자산, 소득의 흐름으로 보면 부동산 소유자에게 너무 많은 가치(불로소득)가 쏠리는 현실이 보일 것이다. 국제적 비용 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땅값(공장 용지 등)이 너무 높고, 주거비, 교육비, 식비가 너무 높은 현실이 보일 것이다. 이 역시 독과점, 진입장벽, 땅값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시장경제와 반드시 동반해야 할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헌법재판소, 법원, 검찰 등 사법기관은 민주적 통제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가운데, 사법고시를 통과할 엘리트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현실이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규제완화, 민영화, 유연화, 작은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활력(개인과 기업의 창의와 열정)을 옥죄는 너무 많은 강고한 재갈들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 작은 정부론은 한국에서 GDP대비 조세부담률 및 재정규모 시비를 일으켰고, 인구 천명당 공무원 숫자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한국은 봉건-식민통치-전쟁-냉전-개발독재를 거치면서 조세부담률은 대체로 낮았고, 공무원 숫자는 적었지만 결코 작은 정부가 아니었다. 규제, 처벌권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성격)이 문제였지만 신자유주의라는 편광안경은 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작은정부 사상을 가지지 않았으니 신자유주의와 상관없다고 한 노무현의 생각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후진국에는 정부 규모는 작아도 민주적 통제력은 약한 가운데 자의적 권능이 크고, 서비스맨쉽이 취약한 정부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이 아프리카 후진국적 요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지금 검찰의 행태를 보라! 참여정부의 순진성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측면을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노동의 양,질이 비슷하면 처우가 비슷하지만, 한국은 그 소속이 공공부문, 대기업, 자격증 부문이냐 아니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영국, 독일의 축구 1부 리그 팀과 2부 리그 팀처럼, 실력(성과)에 따라 소폭이라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맛도 없다.

 

대기업, 공기업에서 아무리 일 잘하는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올라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일 못하는 정규직이 아래로 내려오는 법이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승자독식 사회보다 더 나쁘다. 승자도 아닌 줄 잘선 놈이 독식하고, 승자를 가리는 방식도 공정하지 못하고, 패자나 줄 잘 못 선 사람들에게 재도전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과 경쟁을 비껴가는 곳이 너무 많아서다.

 

대기업/공기업 노조원의 처우나 한나라당, 민주당의 특정 지역 독식 현상, 아니 이것을 보장하는 선거제도가 그 전형이다. 그런데 반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승자독식 현상을 거의 시장과 경쟁의 과잉 탓으로 돌린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이나 공정하지 못한 경쟁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독과점 철폐, 소비자 보호, 세련된 규제.감독, 패자부활전 활성화를 도모하는 쪽으로 갈 소중한 정치사회적 에너지를 돈키호테가 풍차를 공격하듯이 시장과 경쟁 자체를 적대시 하도록 유도한다.

 

그런 점에서 반신자유주의라는 편광안경은 기본적으로 규제완화, 민영화, 유연화, 작은정부론이 공공부문과 대기업 쪽으로 밀고 들어오나 안오나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기능을 한다. 규제완화, 민영화, 유연화, 작은정부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눈에 불을 켜고, 쇠파이프를 들고 지키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철저히 공공부문과 대기업 종사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 이데올로기다. 신자유주의를 '작은 정부'사상이라고 하고, 부자와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한 노무현의 생각은 이들의 공작이 반쯤은 먹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동체와 소비자에 대한 약탈은 신자유주의가 데려온 '규제완화' '민영화'라는 놈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국가안보, 유치산업보호, 수출장려, 경기부양, 균형발전 등)의 미명하에 만들어진 국가의 규제, 촉진권도 못지않게 심각한 약탈꾼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 두 부류의 약탈꾼을 다 풀어놓았다.

 

한국 사회의 속살은 신자유주의라는 안경보다는 도적 정치라는 안경으로 보면 사회가 훨씬 잘 보인다. 한국은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상벌을 시행해야 할 공공적 존재(정치, 관료, 언론 등)들이 약하다 보니, 아니 스스로가 사익 집단화 되다 보니,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모든 힘 있는 존재들이 자신의 기여, 부담, 의무에 비해 훨씬 많은 권리, 이익, 혜택을 누리려는 사실상 도적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한국 노블레스를 포함한 사회적 강자들의 도적질은 현 세대 내에서는 사회적 약자(하청 중소기업, 비정규직, 실업자 등)를 향한다. 도적질은 세대 간에도 벌어져 현 세대 전체가 미래 세대를 약탈한다. 이것이 바로 지독한 청년 실업으로, 대기업.공기업 노조원의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전반적인 저출산 고령화로 나타난다. 물론 다음 세대 몫조차 앞 다투어 약탈하는 상황에서 말없는 자연 환경을 그냥 둘리 있겠는가?

 

그래서 신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리모델링 할 것이 아니라 아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우상을 숭배하다가 야훼의 진노를 사서 탈출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40년 광야 생활을 거치면서 다 죽어버려서 결국 단 한명도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진보, 개혁세력 앞날에 드리운 먹구름이 보았다. 내가 이 글에서 비판한 상당수 진보 좌파 세력은 수십년간의 민주/민중/민족 투쟁을 주도하여, 권력과 자본의 전횡으로부터 탈출을 주도한 사람들이다. 정말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견인차이자, 너무나 소중한 에너지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 공동체 전체와 진실과 진리를 섬기지 않고, 탐. 진. 치 삼독에 쩔어 반신자유주의 우상,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노동의 우상을 섬긴다면 향후 15년간 보수 정권이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1980년 광주의 피로 잉태되어 1987년 유월항쟁의 단비를 맞으면서 자라난 소중한 자식들이 모조리 정치적으로 사망한 후에 비로소 그 자식세대에 의해 진보의 시대가 열리는 비극이 탄생할 수 있다.

 

한국 보수가 공공적 마인드라도 좀 있으면, 또한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약진 등 거대한 도전을 받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그 때까지 온전하기만 하다면, 광주와 유월의 아이들이 정치적으로 사장되어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한국 보수 대부분은 평생을 사익이나 권력이 주는 이권만 추구해 온 도적 집단이기에, 또 너무 무능하기에, 진보, 개혁 세력의 환골탈태와 정권 조기 탈환에 대한 미련을 결코 꺾을 수 없다. 이 집착만은 버릴 수 없다.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104)

 

(사회디자인연구소 / 김대호 / 2008-11-27)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오늘 처음 이분 글을 읽었는데, 그동안 이해불가였던 몇가지 정치이슈들을 시원시원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품고 애독하리라 마음먹었다.   

   
  참여정부는 그 어떤 정부보다 사심없이 의욕적으로 부지런하게 개혁을 추진했지만, 예상외로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명백하다. 김영삼 정부의 '외환금융 자율화'처럼,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 자율화,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의약분업처럼, 의욕적으로 추진한 많은 개혁(선진화)이 낡은 연관 시스템(법, 제도, 관행)과 국지적으로 선진화된 시스템의 모순(충돌)을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때론 시스템 전체의 퇴행과 거의 예외없는 사용자의 왕짜증을 초래하였다.  
   

www.goodpol.net/inquiry/statistics.board/entry/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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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수토님의 "사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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