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에 자네 부친이 일본에 왔을 때, 이런 얘기를 했다네. 한국전쟁 때 부상을 당해 부산까지 후송됐는데, 거기서 부산 앞바다를 보면서 '내 고향은 저 바다 건너인데......'라고 생각하면서 눈물만 흘렸다고. 그때부터 삼십년 동안, 그런 얘기 남한테는 한번도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 일본에 와서 우리한테 한다면서 엉엉 울더라니까."
이번에는 귀를 막지도 욕지기를 느끼지도 않았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중공군이 쏜 총알에 부상당해 후송된 부산에서 바다를 보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라고 생각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나의 삶이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 글을 쓰느냐면 바로 이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의 리얼리티는 이 현실에서 약간 비껴서 있는 셈이다.-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