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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보통 번역본이 두 개 이상 나와 있는 책을 구입할 땐 미리보기로 일일이 번역을 대조해 보고 구입하는데 웬일인지 이번엔 그러질 않고 그냥 문학동네 것으로 구입을 했다. 완전 패착.
첫 문장을 읽는데 완전 질려버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p.11)
아니 이게 뭔 동요집도 아니고...
거기에 몇 줄 내려가 또...
한 여인숙에서 우연히 같이 묵게 된 사람들일지라도 자신들보다는 서로서로 훨씬 친근한 관계로 맺어졌을 거라고 느끼고 있었다. (p.11)
밑줄을 그어 지워버리거나 고쳐쓰는 부분이 발생하면서부터 이 책은 내게 수정본을 기다리는 가본이 되고 소장가치는 제로가 된다.ㅠㅠ
민음사에서도 똑같은 가격으로 50% 할인하는 책을, 다른 책이 급해 함께 끼워 넣어 주문하느라 번역을 대조해 보지 않고 구입했더니...ㅠㅠㅠㅠ 전집 비닐커버를 뜯었고 읽기 편하라고 표지를 접었으니 반품도 안 되겠지...ㅠㅠㅠㅠㅠ 그냥 문학동네를 믿었을 뿐인데 이런 배신을...ㅠㅠ
쓰린 마음을 부여잡고 미리보기로 확인한 민음사 판 번역은 다음과 같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오블론스키의 집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전에 자기 집의 가정교사로 있던 프랑스 여자와 바람이 난 것을 알아차리고, 남편에게 더 이상 한집에서 살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이 벌써 사흘째 이어지자, 당사자인 부부뿐 아니라 다른 가족과 하인들까지 못 견디게 괴로웠다. 가족과 하인들은 모두 오블론스키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심지어 여인숙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도 오블론스키 가의 부부, 가족, 하인들보다는 사이가 더 좋을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아내는 자기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고, 남편은 사흘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부모 잃은 고아처럼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가정교사인 영국 여자는 가정부와 다투더니 친구에게 새 일자리를 구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요리사는 어제, 그것도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집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와 마부는 급료를 계산해달라고 성화였다. (pp.13-14)
- 민음사 판
이쪽도 아쉬운 부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내용이해가 훨씬 선명하게 잘 된다. 문학동네 것은 다음과 같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오블론스키 집안은 모든 것이 어수선하게 들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전에 그들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있었던 프랑스 여인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남편에게 더이상 한집에서 살 수 없다는 말을 내놨다. 이러한 상태가 벌써 사흘째나 계속되어 당사자인 내외는 물론 가족들과 같이 사는 사람들까지 더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 모두 자신들의 동거생활은 무의미하며, 한 여인숙에서 우연히 같이 묵게 된 사람들일지라도 자신들보다는 서로서로 훨씬 친근한 관계로 맺어졌을 거라고 느끼고 있었다. 아내는 제 방에서 얼굴도 내보이지않고 남편은 사흘째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온 집안을 마치 부모를 잃은 아이들처럼 뛰어 돌아다니고, 영국인 가정교사는 가정부와 말다툼을 하고 친구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주었으면 한다는 편지를 썼다. 그런가 하면 어제는 또 요리사가 식사시간에 맞춰 자취를 감춰버렸고 가정부와 마부까지도 급료를 계산해달라고 하였다. (pp.11-12)
- 문학동네 판
그러니까, 행복한 가정들의 모습은 다 비슷한 모양새인데 (그림이 그려진다) 불행한 가정들의 사연은 다 제각각으로 다양하다는 말이다. 근데 대체 행복한 가정은 고만고만하고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 불행하다는 건 대체 뭔 뜻이냐고..ㅠ
<"가족들과 같이 사는" 사람들>은 누구고 "동거생활"은 또 뭐냐고...ㅠㅠ 영국인 가정교사는 갑툭튀 친구를 위한 일자리를 부탁하는 편지를 누구한테 썼다는 거지?? 요리사는 담배 피러 갔나? 가정부와 마부가 급료 달라는 게 뭔 문제? ('성화'라고 하면 뭔가 줘야 하는데 못 주고 있다는 걸 내포하지만)
문학동네판을 읽으며 뭔가 안개속을 헤매는 것 같은 찜찜한 느낌은 민음사 판을 읽으며 걷히고 무슨 뜻인지 선명해진다.
문학동네판 역자 약력을 보니 러시아문학회 고문, 러시아 톨스토이 박물관 '벗들의 모임' 명예회원, 고대 교수...
이 21세기에까지 왜 이런 안개가 낀 것 같은, 무슨 소린지 종잡을 수 없는 번역으로 세계명작을 읽어야 하나 싶다.
(돌이켜 보니 저 위 100자평에 "최고의 번역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이란 문구가 구매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또 밑에 다른 분이 "미친듯한 웹서핑 끝에 박형규 교수의 번역이 좋다는 이야기를 보고"란 문구도 있었구나. 웹상에 고대 제자들이 작전을 펴고 있나? 종이도 잘 바래지 않는 얇은 미색 종이로 내가 젤 좋아하는 재질인데 내용물이 이게 뭐냐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