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나 내가 토토로에 환장한 것을 알고 난 친구 녀석이 그 영화를 구해서 시디로 구워주었다. 가끔씩 기분이 좀 안 좋을 때, 난 그 토토로 시디를 돌려 보면서 그 속의 음악처럼 둥당둥당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걸 지켜보는 게 무척이나 좋다. 그런데 그 친구가 토토로를 주면서 몇 개 다른 영화도  같이 구워줬는데 매번 토토로만 보느라 바빠서 다른 것들은 그냥 방구석을 굴러다니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우연찮게 그 중의 하나를 골라서 보다가...... 정말 우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제목은  <반딧불의 묘>.

 

 

 

 

 

 

 

 

 

 

 

 

 

 

 

 

 

 

 

 

 

 

대강의 줄거리 정도는 어찌어찌 주워 들어 알고 있었고 또 감독인 다카하시 이사오라는 사람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지브리 스투디오를 어쩌구 저쩌구 한 여차저차한 사이라고도 하니(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해야하니 대충 얼버무리기 전법;;) 내 마음은 이미 예전부터 심각하게 반딧불의 묘를 원하고 있은 셈. 허나 함부로 그 시디를 돌려보지 못한 단 하나의 이유는, 주변에서 본 인간들마다 무지하게 슬퍼서 펑펑 울었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우는게 겁나서)매번 시디 껍데기만 만지작만지작 망설이다가 에이, 다음에~ 하고는 늘상 토토로만 줄창 봤던건데, 어제 밤 실행에 옮긴 결과, 조울증의 주기 중 울의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편안한 조증 상태에서 밥먹고 술먹고 (둘다 얻어 먹어)기분이 좋았고 집에 와서 씻고 보니 웬일로 맥주도 냉장고에 얌전히 앉아 있어 혼자 캬캬 거리며 맥주를 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영화를 척 돌리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곧장 희희낙락의 시간은 끝이 났고 그에 이어 바로 마시는 맥주가 그대로 눈을 통해 다시 빠져나오기라도 하는양 계속 줄줄줄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프고 안되었고 속상하고 해서 목에서 꺽걱 소리가 날 지경이었는데 약간의 술기운이 감정의 오바를 가져왔을 지언정, 이 영화는 아마 근 5년 아니 10년안에서라도 나를 가장 많이 울게 한 영화로 단숨에 기록되었다.

주인공은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다. 세이타는 중학생 정도의 나이, 여동생인 세츠코는 다섯 혹은 여섯 살 정도이다.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의 어디. 전쟁 때문에 엄마가 죽고 군인인 아빠도 죽고 결국 고아가 된 그들이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점차 냉대와 구박을 받고, 둘 만 방공호 속에서 지내면서 굶고 훔쳐먹고 굶고 하면서 겨우 살아가는, 죽는, 뭐 그런 이야기.

나는 전쟁의 가장 극단, 반대말은 아이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전쟁의 광기와 끔찍함을 아직 세상이 뭔지 납득은 커녕 미처 다 알지도 못하는 나이의 아이들이 겪는다는 건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다. 허나, 그래서,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아이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을 하고 실눈을 뜨게 된다. 흥, 얄팍할 수도 있어. 어린 아이가 주인공에다 전쟁이 배경이야?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웃다가 결국 맑고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장면 보여주려고? 흥! 내가 이번엔 그렇게 순순히 같이 울어줄줄 아시나? 하는 같잖은 반항심으로 말이다.

물론 <반딧불의 묘>는 그딴 알수 없는 반항보다는 무조건적인 기대감과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는 상태로 보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주변 인간들이 울었다는 말에 약간은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초반부터 그딴 마음은 눈사람 녹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미 나는 줄줄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눈물은 다 마셔버린 맥주병을 다시 채우고도 넘칠 만큼 멈추질 않았다. 함께 넘쳐버린 먹먹한 감정들은 밤사이 내내 나를 들쑤시고 떨게 만들었다.

새삼스레 전쟁의 무모함이니 잔혹함 같은 것들을 말하는 건 뭣도 모르는 내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고, 애써서 말하려 한다고 해도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부족할 것이다. <반딧불의 묘>를 보고 그 배경이 된 전쟁에 관해서나, 스토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감독의 의도나 덧붙여 많은 이들이 칭찬해마지않는 그 섬세한 동작과 표정의 표현에 관해서조차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설사 잘 안다고 해도 그것에 관한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나는 역시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흔들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만났을 때, 진정으로 감.동.했을 때는  진짜 할 말이 없어진다. 그저, 부르르 떨면서 맘껏 울면 그 뿐. 그리고 그러한 순간 순간들이 주는 힘으로 어쩌면 계속
살아 갈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연엉가 2004-07-07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냥 퍼갑니다.

2004-07-08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16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