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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계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아서 코난 도일에게 있어 '셜록 홈즈'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명탐정 셜록 홈즈'는 그에게 전세계적인 명성을 부여했으나 동시에 코난 도일의 다른 영광마저 모두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말았다. (그는 1899년 보어 전쟁에 참전하여 종군 경험을 토대로 여러 저작물을 발표했고, 그 사회적 공헌을 인정받아 1902년 기사 작위를 받기에 이른다. 헌데 종종 코난 도일의 기사 작위를-마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경우처럼-'셜록 홈즈' 시리즈의 창작 때문에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마저 있으니, 셜록 홈즈가 앗아간 그의 영광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만 하다.)

그리고 본 작품, <잃어버린 세계> 또한 셜록 홈즈가 앗아간 코난 도일의 영광 중 하나다. (아아, 기존에 SF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은 이 발언을 참아주시길. '코난 도일=추리 소설 작가'라는 공식이 대중들의 보편적인 인식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 않는가.)

<잃어버린 세계>는 <지구 속 여행>이나 <해저2만리>등 경이소설의 맥을 잇는 작품이다. 멸종된지 오래인 고대 생물들(표지와는 달리, 코난 도일은 고대 동물과 식물에 양자 모두를 공평하게 언급하고 있다. 물론 멸종된 양치식물보다 멸종된 공룡의 존재가 독자를 더 자극할 것임은 분명하지만.)이 여전히 살아있는 오지에 대한 탐험을 소재로 하는 이 작품은 경이소설들이 지닌 과학적 접근이나 모험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여타 경이소설들이 그러하듯, '외부와 고립된 채로 고대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세계'라는 이 작품의 무대는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논리적 합리화 과정을 거쳐 독자들에게 제시된다. 독자는 그것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라는 은근한 거짓말에 끌리고, 덕분에 이 경이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모험담은 그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러한 경이소설 특유의 즐거움과 더불어, 이미 '셜록 홈즈'를 통해 익히 알려진 코난 도일의 이야기 솜씨는 <잃어버린 세계>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각자 독특한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들은 오늘날의 독자가 보기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 속에서 코난 도일이 펼쳐내는 영국식 유머 감각은 독자들에게 경이의 세계에 대한 두근거림 외에 즐거운 웃음까지 제공하고 있다.

'<잃어버린 세계>는 독자를 끄는 매력이 있는 멋진 소설이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글을 맺기 전에 좀 더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미 코난 도일의 유머러스하고 쾌활한(이것은 '셜록 홈즈'에 비해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인데, 아마도 화자가 침착하고 이지적인 왓슨 박사에서 혈기왕성한 젊은 기자 멀론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체를 잘 살려냄으로써 나를 즐겁게 해 준 역자 김상훈 씨는 책 말미에 20여쪽의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나에게 또 하나의 감동을 전해주었다.
해설에서 그는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SF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SF에 대한 현재 대한민국 대중의 인식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그의 해설은 분명 이 장르에 처음 발을 디디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100권 분량의 총서를 출판하겠다는 출판사 행복한책읽기의 앞길에 기존 SF팬들뿐만 아니라 새로 이 영역에 발을 디디는 독자들의 관심도 함께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덧 하나. 추리소설에 있어서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모리스 르블랑, 경이소설에 있어서는 '경이의 세계' 시리즈의 쥘 베른. 코난 도일의 활동 분야를 보면 그 반대편에는 언제나 프랑스 작가들의 족적이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슬쩍 웃어본다. 덧 둘. SF이야기를 하려했는데 정작 감상문을 쓰면서 내내 경이소설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다니. 특별히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부디 이 부족한 감상문 읽으시는 분들께서 오해 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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