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학교와 유치원에서 그림책 읽어주기가 12월 방학으로 끝이 났다. 올해 다시 3월이나 4월에 시작할 텐데 나는 더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일을 구해지면 일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테지만, 혹여 일을 못하는 상태일지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책모임에서 그림책 또는 동화책을 읽고 나누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좋은 책, 나쁜 책이 나눠지게 된 것이다. 그 기준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다. 나는 괜찮네 하며 읽은 책이 모임에 왔더니 형편없는 책으로 다수가 얘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난 아니라고 할 그릇이 못되어 그 흐름에 아주 자연스럽게 끌려가곤 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그 다수의 생각이 그 책에 대한 나의 이미지로 남아 있게 된다.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 없다. 그 책토론에 '나'는 없었다.
그러면서 점점 어린이책이 불편해졌다. 내가 자유롭게 집어드는 책은 거진 어린이책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르는 일도 재미보다는 의무감에 가까웠다. 이론상으로는, 내가 정말 재밌게 본 책을 나 혼자 보기 아까워 남에게 들려주는 건데, 이 책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나를 물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건 아이들에게 못할 짓인 것 같다. 구조적인 다른 문제들도 맞물려 있긴 하지만, 일단은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솔직하지 않은, 찜찜한 채로 책을 읽어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결심을 하니 마음이 좀 후련하다. 모임에서 토론해야 할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할 목적으로 읽지 않아도 되니까,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림책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 읽기 싫으면 안 읽어도 되고, 땡기면(?) 그림책만 진창 몇날 며칠을 읽을 수도 있다.
그림책을 생전 처음 만나는 아이처럼, 설레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