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일한지 일주일이 됐다.
격주로 토요일을 쉬는데 이번부터 내가 쉰다.
토요일도 쉬니 주말이 참 달콤하다.
상대적으로 월요일은 출근하기가 매우 싫을 것 같다.

이 직업이 쉬운 직업은 아니다.
점심시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
저번 직장에서 점심시간을 넘기는 일에 예민해하던 사람들이 보면 기함하겠지?
또 약을 다루는 거라서 되게 예민하고 정확해야 한다.
긴장을 풀면 안되는 일이다.
그게 참 어려운 부분이다.
실수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건 무서우니까.
자잘한 일도 참 많고 이런 예민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여는 짜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된 급여를 받기가 어렵다.
난 왜 그런 쪽으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대학 과를 선택할 때도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내가 좋은 것만 생각했다.
현실 감각이 전혀 없었고 세상을 전혀 몰랐던 게지.

나이가 듦이 점점 아쉬워진다.
지금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상황이 열악하고, 그에 관해 절박하지 않다.
생계를 위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가며 나를 계발할 열
정이나 간절함이 있지 않다.

너무 늦은 나이인 것 같진 않은데, 그 간절함이 덜하다는 게 문제이다.
오히려 일을 함으로써 간절함이 차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자란 시간, 모자란 체력 속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기지 않을까.
막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늘어지고 나태해졌으니 말이다.

간절함을 채우자.
뭔가를 절절하게 시작해보자.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루 10분만이라도 매일 도전해보자.
그걸 뭐로 할까?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할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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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2-21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의 버킷 리스트 작성하기. 매일 조금씩 해보기^^

작은나무 2016-02-2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감사해요 나비종님^^

비로그인 2016-02-2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하는 일을 해야 행복해집니다.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ㅋㅋ

작은나무 2016-02-2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배익화시인님, 한번 잘 찾아보려구요. 감사해요^^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를 그 책이 발행된 2006년 즈음에 사서 앞의 몇페이지만 보고 말았다. 언젠가는 다시 볼 거라며 책꽂이에 모셔두었다가 십여년 만에 꺼내들었다. 서민의 <집 나간 책>에 그 책에 대한 서평이 있어서다. 서민의 책은 읽다가 중단했다. 거기 소개된 책 리스트만 적어두었다. 지금 뭘 읽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도 아니고 읽고 싶은 책이 산적해 있는 상태에서 책에 대한 책을 본다는 게 왠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평이 아니라 그들이 얘기하고 있는 그 책을 지금 읽어야 할 때가 아닌가!

 

잡글이라도 꾸준히 쓰고 싶은데 참 안 되는 부분이다. 안정효 선생은 쉽게 쓴 글은 막 쓴 글이고 그래서 읽기는 어렵다고 했지만, 그런 막글이라도 계속 써야 늘지 않겠는가.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늘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게으름뱅이가 다시 작심삼일을 해본다. 일단은 노트북을 사용하기 쉬운 장소에 가져다 놓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리뷰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날 읽은 부분만 가지고 일기 쓰듯 써보는 것도 좋겠다. 안정효의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팁이 많이 나오므로 몇 장 안 읽어도 그에 대해 생각해보고 쓸 게 많을 것 같다. '있었다', '것', '수'를 넣지 말고 글을 쓰라는데 힘들다. 너무 많이만 안 들어가면 낫지 않을까? 그에 대해서도 작가 선생이 예문을 들어 설명을 하는 것 같으니 계속 읽어나가 보자.

 

이 글의 제목 '쉬운 글쓰기라면 누구나 다 한다'는 선생이 써보라고 하는 글의 주제이다. 그 쉬운 글쓰기는 막 쓰는 글쓰기다. 막 쓰는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실제로 누구나 다 하고 있지는 않다. 내 생각은 '막 쓰는 글쓰기라도 꾸준히 해보자'이다. 이 책을 계속 읽으면서 배운 대로 해가면서 일기를 계속 쓰다 보면 나의 글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니 일단은 잘쓰든 못쓰든 막 쓰는 글쓰기든 꾸준히 해나가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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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안경이 더러울 때처럼 눈앞에 뭐가 낀 듯하고 떠다니는 듯한 것들이 보였다. 평상시에는 큰 지장이 없는데 책을 읽을 때는 굉장히 거슬리고 방해가 됐다. 안과를 갔더니 '비문증'이란다. 눈에 약을 넣어서 동공이 커지게 한 뒤에 눈을 사방으로 돌리게 하고 들여다봤다. 망막이 떨어져나가고 그런 건 아니란다. 고도근시인 경우에 생기기도 하고 보통은 노안으로 인해서란다. 따로 치료법은 없고 심해지면 다시 오란다. 흑. 노안이 맞구나.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 컴퓨터 이런 거 자제해야 되냐고 하니까 아니란다. 심한 운동만 자제하란다. 그런 건 애초에 안하니까.

 

그래도 원인을 아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병도 아니라고 하고. 이제부터 눈의 건강에 좀더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겠다. 시력 회복을 위한 책들도 봐봐야겠다. 시력이 좋아지진 않더라도 눈 운동이라든가 눈의 건강에 대하여 읽어둘 필요가 있다.

 

시야를 방해하는 그것들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우선이다. 노안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해서 사는 수밖에 없다. 더 심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눈을 피로하게 할 정도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 보는 것은 자제해야겠다. 특히 스마트폰! 특히 어두운 데!. 잠도 잘 자야 눈을 덜 피곤하게 한다.

 

비문증은 눈 앞에 먼지나 벌레 같은 뭔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으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점이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위를 보면 위에 있고, 우측을 보면 우측에 있는 등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이물질의 위치도 따라서 함께 변하는 특성을 지닌다.

*비문증은 대부분 연령의 증가에 따른 유리체의 변화에 의해서 생긴다. 유리체는 눈 속을 채우는 투명한 겔 같은 물질인데, 나이가 들수록 액체로 변하게 되며, 시신경과 단단히 붙어 있는 부분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후유리체박리(posterior vitreous detachment)라고 한다. 이렇게 떨어진 부분은 투명하지 않고 혼탁해지므로 눈으로 들어가는 빛의 일부분을 가리게 되어 환자 스스로 본인의 시야에 검은 점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비문증을 확인하기 위해
산동(동공을 확대시키는 것) 후 도상검안경으로 망막을 살펴 보는데, 이때 후유리체박리의 경우 시신경 근처에서 시신경과 떨어진 유리체를 볼 수 있으며(Weiss ring), 그 외 작은 유리체 부유물이 보이기도 하지만 육안으로 전혀 관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망막박리(retinal detachment)에 의한 비문증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망막 주변부까지 관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문증 [vitreous floaters]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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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소라 2016-02-2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습니다! 특히 밝은 빛이 있을 때 더더욱 그런거 같아요. 독서할 때 아주 방해되죠 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서서히 가슴이 뛰는 느낌이 올라온다.
책이 아직 초반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이 느낌을 잘 따라가보자.
그동안 진득하게 따라잡지 못해 놓쳐왔던 이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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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학교와 유치원에서 그림책 읽어주기가 12월 방학으로 끝이 났다. 올해 다시 3월이나 4월에 시작할 텐데 나는 더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일을 구해지면 일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테지만, 혹여 일을 못하는 상태일지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책모임에서 그림책 또는 동화책을 읽고 나누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좋은 책, 나쁜 책이 나눠지게 된 것이다. 그 기준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다. 나는 괜찮네 하며 읽은 책이 모임에 왔더니 형편없는 책으로 다수가 얘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난 아니라고 할 그릇이 못되어 그 흐름에 아주 자연스럽게 끌려가곤 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그 다수의 생각이 그 책에 대한 나의 이미지로 남아 있게 된다.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 없다. 그 책토론에 '나'는 없었다.

 

그러면서 점점 어린이책이 불편해졌다. 내가 자유롭게 집어드는 책은 거진 어린이책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르는 일도 재미보다는 의무감에 가까웠다. 이론상으로는, 내가 정말 재밌게 본 책을 나 혼자 보기 아까워 남에게 들려주는 건데, 이 책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나를 물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건 아이들에게 못할 짓인 것 같다. 구조적인 다른 문제들도 맞물려 있긴 하지만, 일단은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솔직하지 않은, 찜찜한 채로 책을 읽어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결심을 하니 마음이 좀 후련하다. 모임에서 토론해야 할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할 목적으로 읽지 않아도 되니까,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림책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 읽기 싫으면 안 읽어도 되고, 땡기면(?) 그림책만 진창 몇날 며칠을 읽을 수도 있다.

 

그림책을 생전 처음 만나는 아이처럼, 설레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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