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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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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둘 입니다.

제목에 나와 있는 그대로 다운사이징(Downsizing)과 데모크라시(Democracy)입니다.

 

Downsizing은 주로 두 영역에서 많이 쓰입니다. 경영에선 기업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비대해진 조직을 소규모의 팀 형태로 개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경영혁명을 말합니다. 인원감축이나 구조조정의 어두운 일면도 있습니다. 한편 정보기술의 영역에서 보면 컴퓨터 어플리케이션의 전부 혹은 일부를 더 작은 컴퓨터 시스템이나 데스크 탑의 네트워크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Democracy,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의사결정시 시민권이 있는 대다수나 모두에게 열린 선거나 국민 정책투표를 이용하여 전체에 걸친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하는 사상이나 정치사회 체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두 단어가 합해진 책 제목은 그리 밝지 못한 내용이라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부제는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입니다. 미국이 그럴진대 한국 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독일의 실천적 사회학자 페터 슈피겔은 그의 저서 [휴머노믹스](Humanomics, Human + Economics)에서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는 현시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우리 미래의 성공요소는 다름 아닌 인간이라고 제안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인간을 성공요소로 인식할 수 있는지, 이러한 인식을 경제와 학술교류 시스템에 얼마만큼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치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인간과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국가의 성장을 위해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뿐 아니라 개개인을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에 실린 내용을 보느라면 깨우긴 깨우는데 겨우 잠든 사람 깨워서 수면제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있지 않나 염려가 됩니다.

 

아울러 이 책에서 자주 눈에 띄는 용어 중 '정치 동원'(political mobilization)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저자들(2인)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입니다. 정치 동원은,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다수를 얻고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입법과 정책과 예산의 보상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를 '이끌어 내는' 정치 행위입니다. 동원과 참여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저자들은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이 평범한 시민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의 절정기가 가능했으며, 동원이 줄어들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운사이징'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정치 동원이 없으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고 참여도 불가능했던 평범한 시민들은 점차 정치의 세계에서 사라져 갑니다.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이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60년 이상 투표율이 하락합니다. 건국 초기 예외적일 만큼 인상적이었던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경향을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와 구분해서 개인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라고 부릅니다.


투표자없는 선거
미국에서 국가 안보, 공공 재정, 정부 행정이 시민의 협력과 능동적 지지에 의존하는 한, 정치의 권위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투표에서 이기는 것은 대중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만이 아니었지요. 선거는 통치 능력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1890년대로 가보면 투표가 가능한 유권자들의 80퍼센트 정도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21세기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서조차 유권자의 절반 정도만이 간신히 투표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경쟁하는 엘리트들은 유권자 속에서 해결책을 구하기보다, 정책을 경쟁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장으로 옮겨 버리는 장치들인 소송이나 행정절차, 민영화나 바우처, 관료적 조정을 이용해 상대를 이기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자기편이 되어 달라며 도움을 요청받았던 수많은 시민들은 이제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남게 됩니다. 어제의 주연배우들이 오늘은 관중이 되었으며, 시민이 아니라 구경꾼과 소비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개인민주주의의 많은 특성들은 데자뷰를 느낄 정도로 한국 정치에서도 발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옮긴이 서복경의 표현을 빌리면, '벨트웨이 안 이익 옹호 행위의 폭발과 벨트웨이 저편 침묵 간의 기묘한 결합'은 '여의도 안 이익 옹호 행위 폭발과 여의도 밖 침묵 간 결합'을, 시민의 정치 동원은 부재한 채 '워싱턴 안의 정당 갈등만 양극화 되는 현상'은 '여의도 안의 정당 갈등만 양국화 되는 현상'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민(民)이 주(主)가 되는 민주주의가 다운사이징 되고, 관(官)이 비대해지는 기현상은 단순히 현상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도 더 이상 기묘한 형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함께 공부하고 고민해야겠습니다.


다운사이징된 데모크라시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김기림 시인의 "데모크라시(democracy)에 부치는 노래"를 붙입니다. 1930년대에 쓴 시입니다. 그러나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詩처럼 다가옵니다.


나라를 판 것은 언제고 백성이 아니라
벼슬아치와 세도댁이었다

 

사천년 오랜 세월을 두고
이겨본 일이 없는 백성이다
떳떳이 말해본 적이 없어
참고 견디기에 소처럼 목만 부었다

 

지금 백성은 무엔가 말하고 싶다
백성의 입을 막아서는 아니된다
백성의 소리는 구수하고 진심이 들어 좋다

 

그들의 머리 우에서 한울과 태양을 가리지 말어라
三韓 신라적부터 남의 것 아닌
본시 아니라 백성의 별이요 한울이 아니냐

 

인제사 그들의 역사가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번은 백성들이 이겨야 하겠다
백성을 이기게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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