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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에는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셰에라자드,기노,사랑하는 잠자,여자 없는 남자들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단편들에는 일관 된 주제가 흐르는 데 바로 '상처 많은 남자들'이 주인공이란 것이다. 많거나, 절대적이거나 상처를 준 사람들은 여자들이다. 그래서 남자의 인생에 있어 여자란?이란 질문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확대하면 개인의 삶에서 타인이란? 의미가 될 것이고 더 확대하면 인생에서 있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이런 질문으로 이어질 것이다.
소설가는 재주를 타고 난 사람이라는 전제 하게, 소설들은 많든 적든 인생의 깨우침을 준다. 더구나 자신을 단련하며 소설을 써온 노작가의 소설은 왠지 더 믿음이 간다. 사람에겐 누구나 비밀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가슴 아픈 것이었을 때 더욱 아무렇지 않은 것 처럼 살아가려 애쓰는 것이 현실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자기를 드라이빙하는 것, 자신을 컨트롤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을 잘 드라이빙하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가후쿠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배우이다. 가후쿠를 통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괴로워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잘 드라이빙 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드라이브 하듯 인생을 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구조적으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라는 영화를 생각나게도 했는데, 예민한 사람 옆에는 좀 무덤한 사람이 친구하는 것도 인생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예스터데이나 독립기관,기노는 모두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배신 당한 남자들의 처절한 이야기다. 처절하다. 나에겐 적어도 그렇게 읽혔다. 남자들 자신이 모두 여자에게 매달리거나 여자가 인생에 있어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쿨한 인생을 살아 왔지만, 실제로 그들의 탄탄했던 삶은 여자들에 의해 무너졌다. 한 사람은 타국을 떠돌고 한 사람은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했다. 반면에 기노는 무너지지 않은 남자다. 상처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연히 다른 삶을 이어가지만, 그는 결국 상처 앞에서 아파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인생을 허물어뜨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설에서 보건데, 뭉뚱그려 남자들이란 여자들보단 단순한 구조를 가진 생명체인 듯하다. 관계가 주는 상처를 더 못 받아들이기에 무연하게 굴거나, 상처가 두려워 가벼운 관계만을 고집하거나, 버려질 것이 두려워 미리 버리는 것처럼 굴거나.
하루키 자신이 이야기 했듯 그는 이 소설집을 통해 여러 가지 양식을 시험 했다. 영화나 노래 다른 문학작품을 차용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짧은 이야기에 설치한 단순한 구조들이 깊은 울림과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각 이야기들은 한 책에 들어있다는 사실만으로, 또 각 소설 속에 다른 소설과의 간단한 장치를 한 작가의 재치로 엮어 둔 점 또한 재미를 유발했다. 이런 소소한 재미가 소설을 읽는 진짜 재미라기라도 한 듯 웃었다. 사랑하는 잠자나 여자 없는 남자들 모두 신선한 재미로 읽혔으며, 마지막 여자 없는 남자들에선 대놓고 이야기해주어 좋았다. 외톨이들..인생에 외톨이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 모두는 외톨이다. 어긋한 타이밍에 관한 사랑의 이야기는 가장 가슴 아프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긋난 타이밍 속에서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본질인 것 같다. 타이밍이란 단어는 원래 딱 맞추었을 때보다 어긋 났을 때 단어로서의 매력을 갖추는 것은 아닐까.
매력적인 일곱편의 이야기들. 읽고나서 주변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거리가 많았다. 하루키는 남자와 여자라는 장치에 더 확대경을 들이댄 듯 그렸지만, 결국은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여서 그랬다. 읽을 땐 재밌었고 읽고 나니 남자에 대해 여자에 대해 나에 대해 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정비할 수 있는 기운이 생겼다. 그 기운은 위로 받았음에서 오는 에너지였으리라. 상처 많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여자인 내가 위로 받았다는 것은 하루키 소설이 성을 넘어 일반적이고 대중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왔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