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차가운 도서관 바닥에 앉아있는 것이 행운이었다. 내 눈 높이에 이 책이 있었으니까. 만화책이라 여겼던 표지와 웃음 나는 제목에 책을 다시 꽂으려다 (얼마나 크나큰 실수를 할 뻔 했는가) 출판사가 궁금해졌다.  도서관의 책들은 꼭 출판사를 가려두는 관계로 책의 맨 뒤 페이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책이 출간된지 3달이 되지 않아 7쇄란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던 시간동안 소설계에는 어떠한 폭풍이 몰아쳤던 것일까? 심장이 두근거린다. 대체 이 책은 어떤 빛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란 기대. 책이 주는 설렘만큼 행복한 설렘이 또 있을까, 마치 느긋한 오후에 선물 받은 따뜻한 커피 같다.
 

 도서관 문 닫기 20분 전. 책을 펼쳐 읽는 순간 그 공간에 아무도 없음은 축복이었다. 혼자서 키득키득, 큭큭큭, 히히힛, 하하하, 혼자서 낼 수 있는 웃음 소리를 모두 내며 웃고 또 웃었다. 책 한 페이지마다 웃음을 터트려 본 적이 언제인가? 오쿠다 히데오를 만났을 때도 이렇게 웃었던가. 아니, 이 책이 그 배는 나를 웃긴다. 재미있네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다. 이미 대여할 책 세권이 옆에 있는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은 짧다. 그저 나는 읽고 웃는다. 사서 아저씨가 웃음을 참고 나를 툭툭 칠 때까지. 책을 다시 꽂는 손이 애처롭다. 대여한 책 중 한 권을 내려놓자니 이 녀석들이 애처롭다. 사서 아저씨가 나를 보는 눈길은 장난스런 애처로움이 넘친다. (네 나이가 몇인데 이러냐는,,  눈빛이다...;;;) 차가워졌는지도 몰랐던 얼어버린 엉덩이를 툭툭 털며 문을 연다. 아, 완득, 너를 두고 내 어찌 집으로 갈 수 있으리!!!

 

 그럼에도 집으로 왔다. 서점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아주 작았던 서점 하나도 얼마 전 문을 닫아버렸다. 이 작은 읍내는 이제 서점도 없다!!! 내 맛난 사탕가게가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아아, 완득, 내 너를 어찌 하리오!!! 일주일 이 시간동안 내 너를 잊지 않으리오! 너를 손에 펼치는 날이 오기 전까지 네 이름을 가슴에 새기리라!!

 

 일주일을 기다렸다. 완득이를 만나기 위해. 엄마는 완득이, 완득이 하는 내 모습에 책을 사서 보라 했고, 커피마시면서 완득이 얘기만 하는 친구는 짜증을 내며 인터넷으로 주문하라 했지만 완득이를 도서관 그 바닥에서 읽고픈 마음이 강했던 것은 왜일까? 편하게 읽고 싶지 않았다. 애가 타도록 그리워한다음에 읽고 싶었다. 20분간 만났던 완득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라며 보내는 나를. 쉽지 않은 너의 삶을 쉬운 방법을 써서 읽지는 않겠다고. 일주일을 기다리는 것, 서점을 가지 못하는 것 이거라도 해야했다.

 

 # 재미를 원한다면 기꺼이 드리지!!

  분명 완득이의 환경은 어둡다. 바라보는 내 시선이 어둡다. 난장이라 불리는 아빠와 피가 섞이지 않은 말 더듬이 삼촌, 어디있는지 몰랐던 엄마, 선생인지 의심가는 똥주까지. 그럼에도 우선 한바탕 웃고 보자고 한다, 작가가. 그래서 웃었다. 미친듯이 웃었다. 하나님께 똥주 죽으라고 빌고 비는 완득이의 행동이 웃겼다. 분명 사악한 마음인데도 그 순수함이 웃음을 자아낸다. 알거 다 아는 녀석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원하는 일이 생기자 하나님께 빌고 비는 모습과 그 말투가 폭소를 자아낸다. 똥주와의 티격태격에 쓰러지는 기본이다. 방이었으면 데구르르르~ 구르는 연습을 한참을 했을 것이다. (왜 초등학교때 구르기 시험 볼 때 이 책이 없었는지!! 그럼 잘했을텐데!!!) 읽게 해야 한다. 책으로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야기 하려면 책을 읽게 해야 하는 것, 그러기 위해 웃음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이 작가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숨박꼭질, 나를 찾아내요!

 어렸을 때 가장 싫었던 놀이는 숨박꼭질이었다. 잘 숨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나를 찾아내지 않을 것 같아서. 나를 못 찾았음에도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가까이 있음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이들 웃음소리에 내 이름이 불러지길 원하는 씁쓸한 간절함을 알고 있어서. 이런 나에게 "못 찾겠다. 꾀꾀리!!" 는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가. 나갈 수 있는 순간이 생긴 것 얼마나 다행인가. 등이 식은땀으로 다 젖어버리게 만드는 놀이, 숨박꼭질. 지금도 잘 하지 못하는 놀이.

 

 완득이가 숨어있는 아이였다고? 책을 중반부나 읽고서야 주인공의 아픔이, 아비의 슬픔이, 어미의 회한이, 똥주의 참뜻이 보인다. 책은 웃긴데 마음은 아파온다. 완득이 말처럼 웃으면서 울까봐 겁이 난다. 아프게 울 것 같아서 겁이 난다. 완득이처럼, 그의 아버지, 어머니처럼.

 

 완득이의 꾀꼬리는 우리의 똥주 선생님이다. 사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쉽사리 보이지 않아서 다리를 놓아야 할 때가 많다. 가족임에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 사이에 똥주가 다리를 되어준다. 세상과의 다리도 되어준다. 똥주, 얼마나 다정한 꾀꼬리의 이름인가.

 

# 세상이 변하길 기다리지마, 네가 먼저 변해, 세상은 너로 인해 돌아가니까.

 세상은 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은 돌지 않는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세상은 정녕 올 것인가. 그럴리 없다고, 내가 주인이 될리없다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게 세상인데 그게 말이냐 되냐고 묻는다. 내가 나에게. 하지만 시도해야 한다. 살아있음을 느껴야 한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누구도 나에게 핀잔을 주지 못할만큼 열을 내야 하는 것이다. 책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 할머니 말씀대로 믿어도 될까말까인 문제들이 넘쳐나는데 왜 믿지 않는가. 믿어야 한다. 완득이로 인해 세상은 나로 인해 돌기 시작하고 나는 발을 놀리고 훅을 날린다.

 

 책 속에는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을 가슴에 품는 독자가 있다. 가을 바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맞서 싸울 수 있는 뜨거움을 가슴에 담게 해 준 책이었다.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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