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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정확히 삼등분으로 잘라 읽었다. 문단마다 이어진 숫자를 따라 80페이지 가량을 넘겼고, 망설임없이 마지막 페이지로 넘겨 옮긴이의 말을 읽고는 뒷장부터 앞으로 80페이지를 읽었으며 마지막으로, 책의 딱 절반부분을 갈라 앞, 뒤 순서없이 마구잡이로 읽었다. 여자의 끊임없는 망상과 고독에 찬 독백, 부리는 하인에 의한 성폭행과 부적절한 관계에 선 아버지를 향한 총알까지 모두 여자의 독백을 통해 들으며 읽었다. 고백컨데, 이런식의 갑갑하기만 한 문자배열식의 글은 진저리가 난다. 한 작가에게 두 번은 주지 않는 부커상을 두 번 받았다는 명성조차도 잔뜩 힘이 들어간 내 눈의 긴장을 풀지는 못했다. 책을 펼칠때마다 '그래, 그래도 한 번 부딪혀 보자' 라는 식의 각오를 세우고는 읽기 버거운 책을 읽는 첫 번째 방법을 나는 시도한거다. 앞서 말했듯 마구잡이로 읽기, 그것이다. 국외소설은 좀처럼 읽히지가 않는데, 갑작스런 미션과 함께 받아 든 이 책은 훑어보는 단계에서 부터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읽다가 막히는 종종 기이하게도 로맹 가리를 떠올리기도 하고 다자이 오사무를 오버랩시키기도 하면서 자기 세뇌까지 하며 읽었으니 책장을 모두 넘겼을때는 왈칵, 하니 긴 숨을 뱉어냈다.
여자의 일생이라고 해도 될런지. 끊이없이 이어지던 여자의 과대망상과 환멸에 사로잡힌 여자의 독백은 흥미로웠던 반면 꽤나 괴팍했다. 순간, 미스터리를 읽는 기분인가 싶으면 여자의 처지가 안타까워 마음을 쓸어내릴라 치다가도 다시금 미간을 한껏 좁히게 된다. 옮긴이의 말을 토대로 하자면 인종의 차별과 식민지 시대를 미화시킨 작품이라는데, 좀 더 개인적으로 솔직해지자면 그 어느 부분에서도 주인공들의 비애를 눈치 챌 수 없었다. 어쩌면, 옮긴이의 말 처럼 너무도 완벽하게 미화된 작품으로서, 그들의 애증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도 모를일이다. 단, 내가 느꼈던 건 글이 굉장히 절제적이고 단단하다는 거였다. 문체 자체도 그러했지만 헨드릭의 말투에서는 가장 진득하게 묻어났음은 물론, 아버지의 절도적인 언행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질만큼 굉장히 둔탁하고 강한 메리트였다고 볼 수 있다. 페이지를 쉽사리 넘길 수 없었던 점과 더불어 같은 문단을 몇 차례 반복하여 읽어내려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는가 하면, 어처구니없고 돌연한 행동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나라의 심장부에서」의 책은 그저 어떤 시대, 어떤 인물, 어떤 풍경을 막연하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여자의 보이지않는 내면의 창을 누군가가 걷어 올려주는 것으로서 제2의 삶과 구원에 대한 손짓이다. 비록 마구잡이식의 작품에 대한 가당찮은 독서였다 할지언정, 결코 여자의 목소리를 쉬이 흘려보낸 것이 아니다. 여자의 독백에서 시작해 여자의 독백이 끝이 아니듯, 독백은 또 다른 독백을 낳는다. 이야기의 흐름에 발을 맞출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맥을 끊고 읽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그녀의 공간속에서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비법이 아니었나싶다. 여자의 갈망, 혹은 구원이 사랑이었는가 싶다가도 결국, 끝은 고독으로 남겨지는 것은 그녀의 삶이 아닌 여자다운 혹은 여자의 삶을 그린 하나의 자화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한 번더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책임을 안다. 여자의 형성과 고독으로 이루어진 여자의 생이 조금 더 마른 가슴으로 차오를때즈음, 망설임없이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을 생각이다. 첫 시작부터 동의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여자의 와해 된 생활을 나 역시 겪을테고, 언젠가는 일어날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구태여 찾아 읽지 않아도 내 몸이, 내 가슴 밑바닥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수 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그을려 타닥타닥 타들어갈지도 모를일. 그저, 형체의 중심부를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