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음모 1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실체를 알 수 없는 거짓과 음모는 인간의 역사와 언제나 함께 했다. 하지만 인간은 종이를 발명하고 사용하게 되므로 인하여 더욱 교묘한 음모를 꾸미고 속임수에 빠지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종이가 인간에게 어떤 위력을 가져 오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속 배경이 되는 남해회사포말사건은 1720년 영국에서 수많은 투자가들을 파산시킨 투기사건으로 최초의 증권사기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주먹만 믿는 멍청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누구든지 거대한 힘 앞에서는 휘둘리게 마련이며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는 지는 당한 뒤에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벤자민처럼 바보에 힘만 센 주인공은 처음 본다. 한때 잘나가던 권투 선수였지만 부상을 당한 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아가게 되는데 이를테면 도둑질당한 물건을 되찾아주는 일 같은 것으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탐정으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마이크 해머 이후로 이렇게 어리석은 탐정, 머리를 못 쓰는 탐정에 무조건 힘만 휘두르는 탐정은 또 처음 본다.


그것은 시대가 18세기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고 또한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은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벤자민이 증명하고 있다. 또한 벤자민의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은 그가 늘 해오던 일과는 다른 일을 더듬고 있기에 나오는 당연한 모습이다. 나는 벤자민의 헤매고 속고 휘둘리는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지금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자신이 하지 않던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바로 이런 안개 낀 런던 거리를, 불량배들이 넘쳐나는 길을, 똥물범벅에 위에서 요강을 비우는 좁은 골목을 걸어가는 그런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 작품이 지금의 시대에도 잘 읽힐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그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증권 안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증권으로 망하고 자살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 요즘은 그만큼 실체 없는 돈인 주식, 증권, 채권이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행복의 척도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부를 쌓는 것, 쉽게 부자가 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가난한 자와 공유하려 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얼마 안 되는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까지 이용해서 그들의 부를 축적하기 때문이다. 부를 맛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알려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책을 읽다보면 18세기 런던의 커피 하우스가 밀집해 있던 곳이 마치 뉴욕의 월스트리트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들은 신문을 읽고 증권 중개업자의 소개로 주식을 사고팔고 우리 또한 전광판의 주가를 보며 스스로 또는 증권 회사 직원들을 통해 주식을 사고판다. 읽다보면 다른 점은 전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 뒤에 나왔지만 먼저 읽게 된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에서 커피 하우스가 곳곳에 생길 거라고 했던 것과 유대인들이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건너와서 이제는 증권 중개업자로 변신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이어지는 점이 있다. 1세기의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 작품보다 재미있는 주식투자 설명서가 있을지 모르겠다. 학교에서나 초보 투자자에게 딱딱하게 경제 이론이나 주식투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이 책 한 권 읽고 안개 속을 더듬듯 실체 없는 돈을 알아가는 것이 더 재미있고 쉽게 와 닿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탄탄하게 쓰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증권을 하려는 분들, 시작하기 전에 이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물론 이 작품이 주식투자요령을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그것보다 더 값진 누가 부를 가지고 누가 가질 수 없는지를 알게 해주고 있다. 왜 개미군단들이 주식 시장에서 계속 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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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8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11-0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탐정에 복잡한 주식투자 설명서....오묘한 조화로군요...^^

물만두 2006-11-0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사실 어제 다 읽었어야 하는데 요즘 안좋아서 오늘까지 걸렸습니다 ㅡㅡ;;;

물만두 2006-11-0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주식 모르는 사람이 그곳에 덤벼들면 벤자민같아지지 않을까요^^;;;

뽀송이 2006-11-0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우~~^^;;
그래도 주식은 넘 어려워서...
저같이 간이 작은 사람은... 흑흑~@@
개미군단은 영원한 개미일 수 밖에 없는지라... ^^;;

짱꿀라 2006-11-0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추천들어갑니다. 지금은 한가하네요.

물만두 2006-11-0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어려운 책 아닙니다. 추리소설인데요^^;;;
santaclausly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