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루 기담
아사다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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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루라는 빌딩의 맨 위층에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둔 일생의 비밀 한가지씩을 털어 놓는다. 대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고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고루 기담 클럽의 불문율이다. 여장 남자인 회장의 사회로 한 사람씩 이야기를 한다.


처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일본도를 비롯한 문화재를 감정하는 대대로 유서 깊은 집안의 당주다. 그는 칼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들, 대단한 감정가들마저 속인 옛날의 검을 비롯해서 전설의 비검까지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이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는 기담이라기보다는 한 집안의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보물이나 문화재니 하는 것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나 생각하게 한다. 정말 그 값어치가 비싼 가격에 의해 매겨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우매한 인간들을 비웃기 위해 천재적인 한낱 대장장이가 등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전화>는 그야말로 평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모든 것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결정되어 일생을 외롭게 산 한 여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전화 한통 하기가 그리 어렵다는 것은 인간의 몰인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무엇을 바란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다고만 생각한 남자의 모습이 오늘날에도 반영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벽은 만든 자의 잘못이니까. 그 안에 갇힌 자가 과연 누구일지...


<엑스트라 신베에>는 그야말로 기담에 어울리는 이야기다. 영화를 찍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무엇보다 은연중에 작가가 나타내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의 울림이 왜 신베에의 목소리로 더 크게 들리는 것인지 걱정되는 면이다.


<백 년의 정원>은 <비 오는 날 밤의 자객>과 함께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하나의 정원을 백년에 걸쳐 가꾼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집념이 소름끼치게 만든다. 혹, 일본이 바라는 것이 이렇게 잘 가꿔져서 세계를 그 안에 가두려는 것은 아닌지 이야기만으로 보면 좋은데 그 안의 이중적 느낌이 당혹스럽게 만든다.


<비 오는 날 밤의 자객>은 그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다. 한 야쿠자 대 오야붕이 겪은 이야기는 잔잔한 여운과 함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인간이란 가장 열등한 동물이라는 말, 사고루라는 이곳의 이름이 주는 의미가 여기에서 비로소 잘 나타난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위로 올라와 봤더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그렇게 올라오려고 알게 모르게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들을 했을까를 생각하며 덧없고 부질없는 인간들의 허무한 욕심이 언젠가 모래로 만든 성이 허물어지듯 사라지게 될 거라는 예감을 준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가져 보지 못하고 오야붕의 말처럼 가난뱅이 인생은 도망칠 곳이 없어 그래도 올라야 하는 것을. 그래서 사고루는 계속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모두 사라지는 그날까지! 지금도 누군가 어두운 곳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 마음속의 독들을 뿜어내고 들이 마시고 있으리라. 죽는 날까지 살기 위해서... 그 독주 한 잔으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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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7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똘이맘, 또또맘 2006-09-0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섬뜩한 생각이 드는 책이네요. 아침부터 오싹 합니다.

물만두 2006-09-0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약간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요. 편견같지만요^^;;;
똘이맘,또또맘님 섬뜩하진 않지만 좀 그래야 기담답죠. 읽어보세요. 좋아요~

moonnight 2006-09-07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에요. ;; 어서 읽어봐야지. 라고 말은 하지만 언제나 읽게 될지. 흑 -_ㅠ

물만두 2006-09-0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마지막 작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입니다.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