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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의 동굴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 지음, 김상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아주 독특하게 쓰인 작품이다. 일종의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액자의 테두리를 이루는 부분이 번역자의 주석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제목 때문에 읽기를 아주 많이 망설였었다. 철학적 작품이라면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다 읽고 난 뒤 - 물론 지금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 왜 이 작품을 그때 바로 읽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한 번역자가 고대 그리스의 작자 미상의 <이데아의 동굴>이라는 작품을 번역한다. 그 작품의 내용은 한 젊은이가 늑대의 습격을 받고 그 장면을 우연히 해독자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헤라클레스라는 사람(요즘으로 치면 탐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이 그 시신을 목격하고 그 젊은이의 스승이 그에게 젊은이에 대한 의문점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해오면서 시작된다.
이제 이 작품은 추리소설과 그 고대 추리소설을 번역하는 번역자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모두 열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 이 작품은 한 단락마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에 맞는 에이데시스적인 텍스트를 찾는 번역자에 의해 헤라클레스의 열 두 과업이 펼쳐지듯 작품 속 해독자인 동일한 이름의 헤라클레스도 이에 맞는 것들로 인도된다.
그 열 두 과업이란
1. 네메아의 사자 퇴치
2. 레르네에 사는 히드라(물뱀) 퇴치
3. 케리네이아의 산중에 사는 사슴을 산 채로 잡는 일
4. 에리만토스산의 멧돼지를 산 채로 잡는 일
5. 아우게이아스 왕의 가축 우리를 청소하는 일
6. 스팀팔스 호반의 사나운 새 퇴치
7. 크레타의 황소를 산 채로 잡는 일
8. 디오메데스왕 소유의 사람 잡아먹는 4마리의 말을 산 채로 잡는 일
9.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띠를 탈취하는 일
10. 괴물 게리온이 가지고 있는 소를 산 채로 잡는 일
11. 님프(妖精) 헤스페리스들이 지키는 동산의 황금 사과를 따 오는 일
12.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산 채로 잡는 일
을 말한다.
이 작품은 이에 따라 전개되는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방식과 이 그리스의 오래된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자같의 소통으로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고 매혹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이보다 더 대단할 수 없다는 반전이 일어난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스티븐 킹의 <미저리>와 비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미저리>가 작가와 독자라는 구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작품과 번역자라는 구도를 가지고 서로 독자에게 어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미저리>에 비교한다는 것은 플라톤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세상의 수많은 팩션들이 모두 <장미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실상 그 작품에 버금가는 작품도 별로 없듯이 아무래도 지금까지 나온 작품 중에 <장미의 이름>에 버금가는 작품이 있다고 하면 이 작품이 가장 낫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추리적 부분에서 어느 정도 약점을 보이는 점이 있지만 그것은 이 작품에서는 아주 미비한 옥의 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추리적 요소와 철학적 요소를 절묘하게 독특한 방식으로 써내려간 작가에게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은 그를 혹사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 이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면 어떡할 뻔했는지... 지금 <장미의 이름>과 비슷한 팩션에 목마른 독자들은 이 작품에 눈길을 돌리기 바란다. 이데아의 동굴 안에 우리 이 작품을 읽고 한번 갇혀보는 것은 어떨까... 그 동굴, 플라토의 그 동굴이 궁긍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작품을 펼치기 바란다. 그 동굴로 이 작품이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