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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코스의 인어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ㅣ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단편집에는 살인 사건이 딱 한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많은 살인이 등장하지만 내가 잡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단추>에서 등장하는 살인이 유일하고 <어쩌면 다음 생에>에서의 고양이의 죽음을 살생이라고 한다면 두 번, <애완동물 공동 묘지>나 <크리스의 마지막 파티>, <나는 남들만큼 유능하지 못해>에서의 자학과 자살도 살인이라고 한다면 다섯 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꼭 추리소설이 살인이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을 읽는데 좀 이해하기 힘들고 버거워서 이렇게 정리를 나름대로 해봤다.
이 작품은 인간의 일상에서 작은 파편이 만들어내는 균열이 어떻게 인간에게,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가를 말해주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해서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작가가 추리소설가라고 모든 작품이 추리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고 또 한편으로는 추리적 요소가 없다고 추리소설이라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추리소설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불안, 좌절, 고통, 절망같은 감정은 평소에는 눌러 가라앉힐 수 있는 감정이다. 인간은 늘 이런 감정을 느끼지만 이런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끔 이런 식으로, <단추>에서의 주인공처럼 무작위 살인으로 화풀이하듯 방출하기도 하고, <나는 남들만큼 유능하지 못해>에서의 주인공처럼 자학에 의한 정신적 분열로, <어쩌면 다음 생에>에서의 주인공처럼 환상이나 <몽상가>의 주인공처럼 자신만의 몽상으로 분출하기도 한다. 또한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의 주인공처럼 극단적 자살로 몰고가기도 하고 <크리스의 마지막 파티>에서의 주인공처럼 자살미수에 그치기도 한다.
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주변을 찾아가 보면 사람들이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작은 균열이 차츰 외부의 압박으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미세한 균열로 커다란 댐이 무너지듯이 말이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 미스테리한 것 아닐까. 어쩌면 작가는 미처 알고 있지 못한 이런 면을 미스테리 작품 속으로 끌어 들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찌 작가의 깊은 속을 알 수 있겠는가.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내 짐작이 맞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재미면에서는 좀 덜했다. 그 재미를 인생의 깊이로 이해해야 하는데 아둔한 독자라서 그게 안되니 안타까울 뿐이다.
<골프 코스의 인어들>도 그 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쩜 이 작품들도 나이가 더 많이 들어 인생을 더 알게 되면 자연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미스테리한 인간의 삶, 미스테리한 작가의 생각... 책 뒷표지에 적힌 ‘도스토예프스키의 우울한 친구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이해를 못해서 우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