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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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가 몇 명 있다. 특히 톰 클랜시 작품은 안 읽었고, 스티븐 킹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내가 스티븐 킹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캐리> 때문이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얘기해 주신 영화 캐리... 그 얘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때로부터 벌써 20년도 더 지났고 왠만한 추리 소설은 물 불 가리지 않고 읽게 되었지만 스티븐 킹만은 피해 다녔다.
영화 <미저리>에서의 캐시 베이츠의 연기가 아직도 생생한 가운데 읽는 미저리는 약간 지루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단 두 명만의 등장 인물을 가지고, 물론 미저리라는 액자 형식은 아니더라도 소설이 있었지만, 이렇게 긴 글을 써내는 작가의 능력은 인정한다. 단지 내게 맞지 않았을 뿐...
난 미저리라는 소설을 과감하게 삭제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남는 것은 미친 여자와 그 여자에게서 살아남으려고 세헤라자데가 된 남자가 보일 뿐이었다. 왜 스티븐 킹은 에니 윌크스에 대해 좀 더 얘기하지 않는 걸까. 폴 셀던에 대해서는 물론 그의 관점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에니에 대한 얘기, 그녀의 인생, 과거, 그녀가 왜 그렇게 되었나에 대한 것이 있었다면 좀 더 읽을 맛이 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미저리는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고통의 표현이었다. 에니 윌크스는 고통을 주는 글쓰기의 도구였을 뿐... 그래서 에니 윌크스는 결코 하나의 주인공이나 소설 속 인간이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단순히 작가의 글쓰기 도구이므로. 그러므로 작가가 미저리를 완성했을 때 작가는 에니 윌크스를 죽이고 탈출한 것이 아니다. 에니 윌크스는 사라진 것이다. 몽테뉴의 글 ‘글쓰기가 고통(misery)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를 인용한 것은 미저리가 단순한 추리 소설이 아닌 작가의 글쓰기의 고통에 대한 상징적 표현임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니 추리 소설을 원하는 나는 재미가 없을 수밖에...
영화 <더 팬>에서 팬이라는 이유로 야구 선수를 괴롭히는 것과 에니 윌크스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해도 에니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녀에게도 그녀의 관점이라는 것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은 듯 사라지고 말았다. 스티븐 킹의 에니 윌크스가 남은 게 아니라 캐시 베이츠가 남은 것처럼...
작가가 이 점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이 두꺼운 책을 덮으며 에니 윌크스를 애도한다. 작가에게 이용만 당한 인물이었기에...
그나저나 보고 나도 스티븐 킹의 작품은 또 보고 싶지 않으니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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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25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미저리는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 보고 대충 그런 이야기라는 점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왜 썼을까 생각했는데, 그렇군요.

물만두 2004-11-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내용은 재미없었지만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더군요...

에레혼 2004-11-2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시각이면서도,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왜 에니에 대해서 좀더 얘기하지 않는 걸까,라는 자문에 이 소설은 작가의 글쓰기의 공포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자답을 내리셨군요.

스티븐 킹을 이 시대의 고전이 될만한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로서는 그를 피해 다닌 님의 시절이 안타깝지만, 살다 보면 또 그를 만나게 될 '운명적 계단' 에 올라서는 때가 있겠지요......

물만두 2004-11-29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분들이 많더라구요. 혹 저에게도 기회가 오기는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