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
페트라 함메스파 지음, 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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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많은 것을 암시하지만 그것이 독자를 현혹시키는 덫일 수도 있다. 네 남녀의 30년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처음 두 여자가 6살부터 친구가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때부터 한 아름다운 여자는 거짓말쟁이였고 다른 한 여자는 똑똑했다고. 그리고 그 뒤 그들은 자라 남자들을 만나고 아픔을 겪고 미혼모가 되고 결혼을 하고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작품은 장례식 단 하루에 한 남자가 과거를, 아니 현재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한 여자의 장례식. 아름답지만 거짓말로 인생 자체가 포장되어 있는 여인. 그리고 그 여인의 오래된 친구와 남편과 그 여자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를 이제 우리는 알아가게 된다. 30년지기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짓과 위선과 위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진짜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되묻는 작품이다.  

사각 관계의 형성. 그 형성 안에서 난무하는 거짓과 위선. 자존심의 대결. 위장과 보호. 이런 것들이 맞물려 한 여자의 장례식에서 한 남자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람들이란 없다. 악연은 당사자들이 만드는 일이지 누군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악연이라 생각했다면 그들은 그 연을 끊었어야 하지만 끊지 못한다. 악연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에 생각해 보니 악연이었다 라는 식의 생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은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는 행동과 같다.  

이 작품은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형식의 계보를 잇는 듯 내용의 대부분이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시몬느 보봐르였던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한 여자가. 그 말이 맞다. 남자가 힘을 휘두르는 세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자는 길들여졌다. 은연중에 자기만의 생각이라는 것이 자기만의 생각이 아니라 주입된 것, 학습된 것이라는 걸 이 작품을 읽으며 깨달았다.  

보통 남자 작가가 여자를 바보로 그리는 것은 참을 만 하다. 남자니까 여자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싶은 거라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여자 작가가 여자를 바보로 그리는 것은 정말 역겹다. 솔직한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자들이 현실에서 이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 여자가 남자보다 사랑에 맹목적이라고 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주입된 것은 아닐까. 그래야만 한다는 학습의 결과물이 사랑, 모성이라는 것으로 포장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여자와 못생긴 여자가 친구가 된다. 그러면 결과는 뻔하다. 못생긴 여자는 공부를 잘해 변호사가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못생긴 여자가 아니다. 그런 여자가 또 다시 못생긴 여자의 행동을 하게 만든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완전히 두 바보 여자가 여기 있다. 이런 생각만이 들뿐이다.   

사랑이란, 우정이란,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너, 왜 사니?' 주인공들에게 묻고만 싶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게 전개되던 작품이 30년의 이야기를 하루, 아니 단 몇 시간 한 남자의 생각 속에 나열된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미완성이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이런 미완성의 것들이 쓰레기처럼 모여 한 자루가 되면 그것을 짊어지고 떠나는 것 아닐까. 

사랑을 하면 사람은 눈에 콩깍지가 쓰인다고 한다. 우정도 마찬가지다. 누군들 자신의 친구의 단점을 단점으로 생각하고 인정하려 할 것인가. 그것은 우정의 조건이 아니라고 배웠는데 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배신을 당한 사람은 배신하지 않을 만한 사람을 찾게 되는 법이다. 배신했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 이 안의 모든 장면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인생 그 자체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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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1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삶이란 이런 미완성의 것들이 쓰레기처럼 모여 한 자루가 되면 그것을 짊어지고 떠나는 것"... 오오, 멋진 표현! 하지만, 슬픈 말이로군요...

물만두 2004-11-1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염세적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