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실 1
존 그리샴 지음 / 시공사 / 1994년 10월
평점 :
품절


존 그리샴이 어쩌면 퓰리쳐상을 노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 소설에서 벗어나 진지한 순수 문학 쪽으로 선회하려는 신호탄이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KKK단원으로 건물을 폭파해 유태계 어린 아이 두 명을 살해한 죄로 사형될 날만을 기다리는 나이든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사형이 확정되던 때 젊은 신참 변호사가 사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무료 변호를 하려 나선다. 알고 보니 그는 남자의 손자였다. 이 단계에서 난 그 변호사가 손자가 아니라 그가 살해한 흑인의 누구, 아니면 유태인의 누구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심한 비약이고 진짜 있을 수 없는 일이 될까... 하지만 할아버지가 KKK단원이었고 지독한 인종 차별 주의자였고 살인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단순히 사형에 반대한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의 족보를 알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접근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작품은 내가 읽은 존 그리샴의 작품에서 패턴을 벗어난 작품이다. 그의 패턴이란

첫째 신참 변호사나 법대생이 등장한다,

둘째 언제나 이긴다,

셋째 하지만 결코 해피엔딩은 아니다...

인데 이 작품에서 이 중을 만족시키는 것은 첫 번째 뿐이다. 그리고 좀 더 진지하고 눈물까지 흘리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지금까지 읽은 작품 가운데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다음으로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도 사형에는 반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것은 헛된 꿈같은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죄를 짓지 않고 살면서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들고 잠 잘 방도 없는데 죄를 지은 사람은 국가에서 먹여 주고 재워 준다. 그들을 먹이는 돈은 가난한 자들도 내는 세금이다. 정의와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죄 지은 자와 죄 짓지 않은 자에 대한 구분이고 차별화다. 죄를 지은 자가 짓지 않은 자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더 편하게 지낸다는 건 모순이다.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인권은 왜 외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것은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식의 논리일 뿐이다.

나이 든 사람을 사형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없다. 그것은 정의도 아니다. 그럼 살인하지 않는 사람이 살인의 충동을 억제하고 얻는 것은 무엇일까... 역시 없다. 그러니 누가 정의와 인권을 말할 것인가... 그건 참 힘든 얘기다.

다른 관점에서 이 작품은 사람이 저마다의 사회에서 다른 관습을 배우고 나름의 교육을 하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KKK단의 일이 묵인되는 사회에서 자라 KKK단의 행동을 지지하는 관습을 배우고 KKK단이 대대로 강령처럼 대물림되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그의 생각 속에는 옳고 그름은 다르게 자랄 수도 있다. 그것은 유태인이 유태인 가정에서 유태인의 종교를 간직하며 그들만의 사회를 구축하고 살아온 것과 같고 또한 우리가 살아온 것과도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일종의 지난 역사에 대한 자기 반성과 현실적 인식이다. 아픈 역사도 역사고 그 역사는 비단 한 개인만의 단죄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존 그리샴은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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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5-31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존 그리셤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법'에 관한 성찰은 한 작품이죠. 스릴도 긴박감도 없이 말입니다.
'가스실'이 출간됐을 당시의 반응은 한마디로 '황당하지만 의미심장하다'였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저에겐 꽤나 불쾌한 기억의 작품인데,(존 그리셤의 특징인 '간결한 스릴'이 없다구요~!)
물만두님은 깊이있게 읽으셨나 봅니다. ㅎㅎㅎ

물만두 2004-05-31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그리샴의 작품에서 스릴을 원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깊이있게는 아니고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