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지음 / 동방미디어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같은 시대를 살아남은 친구들에게 그렇지 못하고 사라진 친구들에게...”라고 작가는 썼다. 이 작품은 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는 한 인간, 아니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이 단순한 추리 소설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범인 찾기나 결말, 끝장을 내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한 남자의 질주는 그가 살아온 인생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의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해야만 했던 것일까... 사랑을 잊지 못해서 였을까... 우정을 저버리지 못해서 였을까... 그는 그 둘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라도 살아 언젠가는 만나리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인간은 모두 희망을 안고 산다. 희망을 안고 살 수 있는 것은 절망을 안고 사는 것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자기 기만.... 그것은 자기 기만이다. 희망을 품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희망을 품고 또 떨어지고... 그렇게 되풀이하는 것은 이카루스가 타 죽을 줄 알면서도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아니 시지프스가 다시 돌이 떨어질 줄 알면서도 굴려 올려야만 하는 운명을 감내 하는 것, 그것이리라...

같은 시대를 살아남은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같은 시대를 살아남은 친구들에게 절망을 주고 있는가, 희망을 주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고 사라진 친구들에게 살아남은 자들은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지금 우리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싸우고 같이 절망하고 같이 희망을 품는다. 지나고 나서 우린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것은 지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모습이 앞으로의 우리의 모습일 테니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마음 변치 말기를...

이 작품은 일본이 배경이지만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개인의 처절한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게 보이는 것은 그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그런 개인이 얼마나 많을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사회의 근간이며 나아가 인류의 역사라는 인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최근에 읽은 일본 추리 소설 가운데 수작이라 생각된다. 독특함이 아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훌륭한 작품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4-05-04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때문인지 스토리에 관한 언급이 없네요.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의 정통순수클래식올드고전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만한가요?
물만두님은 매번 늘 별점이 후해서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_-a
최근 읽은 일본작품 가운데 수작이라니까 함 읽어보려고요.
참고로 전 김전일은 좋아하시만 모리무라 세이치는 좀 아니거든요.

물만두 2004-05-04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뭐라고 해야 하나 한 남자가 평생을 경찰에 쫓기면서 어떤 사건에 뛰어드는 내용인데요. 말만 하면 스포일러로 몰리는 바람에 이렇게밖에 쓸 수 없음을 이해하시와요. 별은요, 제 맘입니다. 전 이 작품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트릭이나 고전 추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드보일드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하지만 전 재미있었습니다. 국가와 인간에 의해 어긋나는 한 개인의 인간사라고 할까요... 모리무라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이 별로였다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별로라도 어케든 추리 독자를 늘리려는 얄팍함이죠. 몸부림의 고달픔이거나 안목이 별로거나... 참, <낯선 시간 속으로> 평 쓴 분은 이 책보다 그 책이 더 재미있었다고 하던데 전 그 책보다는 이 책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서평 쓰신 분들의 의견을 참고하세요. 그 분들은 별로라고 하니.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