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칼의 날 동서 미스터리 북스 93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자칼이라는 전설적인 킬러를 탄생시킨 작품이다. 그렇다고 브루스 윌리스가 등장했던 영화를 연상하면 좀 곤란하다. 자칼의 이미지와 브루스 윌리스의 이미지만큼 안 어울리는 것도 없으니까.작품이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냥 생생해서 진짜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을 때 그들은 자신의 힘이 영원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니까. 오만하면 또 다른 누군가 자칼의 이름으로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성공할 지 실패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적을 만드는 이들이여, 부디 몸조심하기를. 

사실 이 작품을 읽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내가 추리 소설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기는 하지만 추리 소설 가운데도 기피하는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기피하는 추리 소설의 종류는 스파이물이다. 물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감명 깊게 읽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스파이물은 읽지 않게 되었다.  

나는 무조건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파이물에서는 해피엔딩은 해당 사항이 안 된다. 스파이란 존재 자체가 행복하고는 거리가 먼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암살범이나 테러리스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래서 자칼이라는 닉네임의 킬러에게 어느 정도 호기심은 있었지만 별로 읽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너무 좋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지고 말았다. 읽고 나서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자들은 드골이 알제리를 프랑스에서 독립시켰다는 울분으로 봉기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조직이 와해될 처지에 놓이자 외부에서 킬러를 고용하기로 한다. 자칼은 돈만 많이 주면 누구라도 암살하는 프로페셔널한 킬러. 그에게 대통령은 무의미한 존재다. 그리고 그것을 서서히 알아 가는 프랑스 정부. 하지만 태연한 드골 대통령 때문에 암살자를 찾는 일은 한 경찰에게 맡겨지고 자칼은 차근차근 일을 추진하다.

자칼이라는 암살범이 드골을 암살하려는 내용의 작품이다. 사실 정치색이 너무 강할 것 같아 망설였는데 읽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읽었다. 안 읽었다면 후회할 뻔 했다. 하지만 역시 암살자, 스파이는 비극적 인물일 수 밖에 없다. 같은 살인을 해도 007은 잘만 살더구만. 이것이 민간인과 정부 공무원의 차이인가. 아니면 그 살인과 이 살인은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살인은 살인이다. 전쟁 중 살인은 살인이 아니라 침략국은 말하지만 그것도 살인이다. 그게 살인이 아니면 한 집을 침략해 사람을 죽이고 강도질한 사람은 외 잡혀가는 것이지. 강자가 약자를 죽였을뿐인데.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책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이런 씁쓸한 기분을 남긴다. 암살자, 스파이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이렇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낸 인물인 줄 몰랐다. 그가 알제리를 독립시켰다는 - 말에 어패가 조금 있지만 돌려 줬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 것도 처음 알았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영토를, 아니 이미 빼앗은 자기네 땅을 알제리인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치욕이었던 모양이다. 이 시대에 서구 열강들 중 식민지를 가지지 않은 나라가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인간들이나 지금의 인간들이나 어쩜 그리 똑같은지.

알제리를 독립시켰다는 이유로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자들. 그들에게 고용된 킬러 자칼. 그리고 그를 잡으려는 프랑스와 각국의 공조 수사. 정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박진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특히 자칼의 치밀한 암살 계획을 따라 가는 것이 무엇보다 재미를 배가시켰고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 한번에 읽게 만들었다. (물론 초반부를 읽다 다른 책을 읽고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또한 정치적으로 보면 열 받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한 작은 단점은 있었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자칼의 추진력에 있다. 정치적 냄새만 더 없었더라면 하는 개인적 느낌이 있지만 제목, 자칼의 날이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대통령 암살의 D-데이이기도 하고 또한 자칼의 개인적 하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엔딩이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그 반대의 엔딩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진짜 드골 대통령이 이렇게 많은 암살 미수에도 불구하고 천수를 누렸다니 그 인생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대조적으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너무 쉽게 이뤄진 것 같아 요즘의 음모설이 이 작품을 계기로 더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진짜와 허구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암튼 이 작품을 계기로 그래도 이런 류의 작품에서도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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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4-27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렇게 멋드러진 작품을 이제 읽으셨단 말입니까?!
'독수리는 내리다'같은 다른 암살을 소재로 한 걸작들도 많지만, '재칼의 날'이 최고지요.
근데 오래된 작품이라 사람들이 잘 안읽더라구요.
더구나 브루스 윌리스, 리차드 기어의 '자칼'이란 영화를 생각하고, 같은 작품인 줄 알고 업신 여기기까지 하니... hm...

물만두 2004-04-2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저도 안 가리는 잡식성일 것 같지만 좀 가리는 게 있어서요. 하지만 읽고 후회했습니다. 이젠 좋다하면 무조건 읽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