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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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까레의 대표작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한 시대, 냉전 시대의 스파이 이야기다. 스파이 소설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작품 가운데 한 작품이다. 읽을 때마다, 변하는 시대마다 느낌을 다르게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리머스, 문트, 리즈, 피들러. 네 명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냉전의 시대를 살아간 이야기. 사랑을 하면 절대로 안 되는 스파이 리머스. 하지만 그는 리즈를 사랑하게 된다. 이제는 역사로만 남은 독일의 분단시절, 영국 첩보원 리머스는 변절자로 자신을 위장하고 동독에 들어가 문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수행을 한다. 동독에서 리머스는 문트의 부하인 피들러를 이용해서 문트를 변절자로 몰아 제거하려고 한다.    

동독에서 스파이로 활동을 해 온 사나이가 다시 동독으로 잠입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너무 다르다. 동독 내의 알력이 있고 스파이가 해서는 안 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가 동독에 잡혀 있다. 그들은 베를린 장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서로의 전술을 이용하려 애쓰고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인간을 체스판위의 말처럼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속에서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을 애처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동서로 분단된 냉전 시대가 배경이고 한번 스파이는 영원한 스파이로 절대 죽음 이외의 방법으로는 어떤 안식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논리 아래 동독으로 잠입하는 한 스파이와 그가 구해 내야 하는 어리석은 이념에 빠진 이용당하는 한 여인의 운명이 그 시대의 암울한 느낌만큼 어둡게 전개되는 작품이다.   

읽고 나면 이런 소재를 다룬 모든 작품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변함없이 느낄 수 있다. 씁쓸하고 서글픈. 인간이 한낱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정치 상황과 어떤 진영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음을 언제나 잊지 말기를. 

스파이물은 이제 한물 간 장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아니게 되었다. 세상이 다시 탈냉전시대에서 서서히 새로운 냉전시대로 변하는 조짐이 보이고 역사가 늘 되풀이되듯이 종교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사상에 대한 변화도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힘을 잃은 이들이 권력을 얻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상이고 과거에 대한 향수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즘 서서히 다시 스파이물이 등장하고 있다. 읽으면서도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분쟁에 가장 휘말리기 쉬운 위치에 있는 나라에 사는 관계로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탈냉전시대를 만끽하느라, 나라 사정이 눈에 보이는 사상과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관계로 별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잘못된 시대를 반성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사상은 어느 만큼의 무게를 가져야 인간이 짓눌리지 않고 인간을 위해 뜻을 펼칠 수 있을까.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이 책을 읽은 느낌은 약간 다르다.  

물론, 80년대까지의 냉전시대에 읽었다면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겠지. 조국의 안녕을 위해 스파이로 살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 꼭두각시가 되어 죽더라도 그것으로 좋은 사람. 조국의 사상과 인민을 위해 총살을 당해도 항의하지 못하는 사람. 사랑을 하는 사람. 진정한 변절자. 이중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진정한 변절자 한사람뿐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진실이다.  

시대가 변해 이미 사실감을 상실한 작품이지만 어릴 적 동서독의 비극을 다룬 영화를 보고 운 기억이 있어 그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동서독은 통일이 되었는데 아직 분단된 조국에서 사는 우리는 언제나 이런 과거가 되어 버린 작품을 읽어도 작품 자체로만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첫 장에서 카를이 철의 장벽을 넘다가 동독군의 총에 맞는 것을 본 리머스는 한마디한다. 차라리 죽기를. 사상이란 인간을 쓰다 버리는 건전지쯤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스파이 소설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고 싶은 작품이다. 스파이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명성도 있고 그 명성에 어울리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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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8-3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이 소설은 스파이가 희생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지요.존 르카레와 함께 에릭 엠블러의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도 걸작으로 꼽힙니다.혹시 안 읽으셨으면 읽어보세요.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마지막 장면...

물만두 2010-08-30 16:42   좋아요 1 | URL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 읽었습니다.
전 그래서 스파이 소설 잘 못 읽겠더라구요.
넘 슬퍼요.

pjy 2010-08-30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파이소설은 슬프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리뷰를 이렇게 우아하게 작성하시니 결국 봐야겠습니다~~

물만두 2010-08-30 20:58   좋아요 1 | URL
존 르 까레의 스마일리 시리즈는 좋은데 특히 이 작품이 더 좋죠. 보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