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아이 - 상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를 읽지 않고 텐도 아라타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던 전설적인 작품이다. 2000년대 초,중반 무렵 절판된 이 책들을 얼마나 찾았던지. 출판사에 전화하고 재간해달라고 읍소하고 중고서점 찾아다니고 책 찾는다고 광고하고 그리고 겨우 구해 읽은 뒤 찾아온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라니. 단 한줄의 글도 쓸 수 없었던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던 작품이다. 

그 작품이 새로 출간되었다. 두권으로 깔끔하게 출판되었다. 역시 읽는 내내 분노와 슬픈과 한숨이 교차하며 콧물,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유키, 쇼이치로, 료헤이의 십칠년을 넘나드는 생존증명서같은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됨과 동시에 상처의 치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잘 자라 각자의 일에 열심인 이들, 유능한 수간호사가 된 유키, 변호사가 된 쇼이치로, 경찰이 된 료헤이. 하지만 상처를 끓어안고 사는 삶, 그리고 죄책감을 짊어지고 사는 삶은 공허하기만 해서 쇼이치로와 료헤이는 유키가 모르는 사이 유키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들이 루핀, 모울, 지라프라 불리던 시절에 그들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무언가를 찾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던 것이, 그들의 구원이 그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과 절대 나아지지 않는 현실은 그들고 하여금 막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는 많다. 하지만 이렇게 잔인한 부모가 있으리라고는 뉴스에서만 봤지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그 잔인함이 너무도 능청스러워 더 소름끼쳤다. 그래, 어른으로 산다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건 나보다 약한 아이를 골라 화풀이를 하는 사회의 생리를 보는 것만 같아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내 자신이 너무 미안해졌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원에서 만난 세 명의 아이들이 겪은 이야기를 하는 그들의 과거와 다 자라 성인으로 살아가는 현재를 넘나들면서 현실에서의 미스터리를 재구성하고 현재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유추하도록 짜임새있게 구성된 작품이다. 아이를 학대한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 살해되는 사건, 유키의 어머니가 불 탄 집에서 발견된 사건, 유키의 동생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여기에 마치 그들에게 진짜 진실을 말하라고만 부추기는 느낌을 주는 마지막까지 그들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 잔인한 작가. 역시 구원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었다. 

살아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살아 있어야 용서도 하고 용서도 받고 화해도 하고 이해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거니까. 불행도 미움도 상처도 죽으면 없어질 것 같지만 사실 그저 묻히는 것 뿐이다. 그런 것은 묻혀서는 안된다. 행복해져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상처는 나아야 한다. 아픔은 극복하고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당당해지고 남과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 아니 내가 남보다 낫다고 느낄 때 비로소 구원되는 것이다. 신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으로. 그래야 그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아픔을 되물림하지 않게 된다. 

작품을 보면 상처입었던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신들의 어린 시절 상처와 미성숙된 자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게 빈곡의 악순환처럼 학대는 되물림된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아이에게 뜨거운 물을 뿌려 화상을 입힌 엄마는 그래도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를 찾는다. 아이는 이럴때 죄책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엄마를 옹호하게 된다고. 도대체 누가 부모고 누가 자식인지 모르겠다. 텐도 아라타는 그래도 가족이 구원이라고 말하는 작가다. 그 가족이 이런 가족은 아닐 것이다. 상처만 주는 가족이라면 없느니만 못하지 않나 싶다.  

산다는 건 고행과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을 더하게 된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건 불행은 작아보이게 만들려 애쓰며 극복해 나아가고 행복은 더 크게 만끽하며 오래도록 간직하고 추억하기 때문이다. 어른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아이가, 어린 아이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없이 산다면 어떻겠는가?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끽해야 십몇년이 전부다. 우린 그 십몇년의 기억을 안고 평생을 행,불행속에 살아가게 된다.  

어른들이여, 생각해보라. 그 짧은 시간은 우리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빼앗고 짓밟고 고통속에 가두고 싶은가 말이다. 우릴 제발 그러지 말자. 가족은 그러지 말라고 만드는 거다. 사회란 그러지 말게 하자고 존재하는 것이다. 더 나이를 먹으면 우린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 돌아감이 고단하지 않게 우리 모두를 위해 우리의 아이들만은 제발 지켜주자. 최소한 인간이라면 사는 동안 이건 지켜야 하는 일이다. 

쓰다보니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다. 이 작품은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품이다. 아이가 있는 부모, 부모가 될 예비 부부들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과 사회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아직도 답답하고 울렁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겠지만 어딘가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을 이들에게 그저 잘 살아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10-08-17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도하는 사람>을 다 읽고 얼마전에 <영원의 아이.상>을 읽기 시작했었는데요... 조금 덴도 아라타와는 안 맞는 느낌이 크네요.;; 잠시 중단하고 다른 책들을 읽고 있는데 조만간 다시 읽어 봐야 겠습니다.

물만두 2010-08-17 14:22   좋아요 2 | URL
음, 원래 텐도 아라타에게 더 맞는 작품은 영원의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꾸준히 그런 느낌이 드는데 그것들이 영원의 아이가 가장 강렬했고 조금씩 순화되어 등장하는 느낌을 줍니다. 아마 님께서 이 작품을 먼저 읽으셨더라면 다른 느낌이 드셨을겁니다. 그때는 오히려 애도하는 사람이 텐도 아라타와 덜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언제나 가족이 주제인 것만은 분명한 작가입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