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날 지장이라는 행각승이 칵테일바 에이프릴에 나타났다. 스님은 스님인데 취향은 고급이라 꼭 던힐 담배만 피우고, 그것도 남의 것을, 보헤미안 드림이라는 칵테일만 마신다.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밤이면 동네에 사는 사람 몇몇이 모여 지장 스님이 그동안 겪은 사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과 한 행각승의 미스터리 모임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표방하는 작품 세계는 본격 추리소설이다. 사건이 있고 범인이 있고 그 범인이 누구고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알아내는 미스터리가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들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아가사 크리스티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추리클럽을 표방하고 있다. 탐정이 행각승이라는 점이 독특하고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그저 행각승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해서 모였다는 것이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제목처럼 지장스님과 일주일마다 만나서 한편씩 듣는 형식이니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얼마나 많이 방랑을 하고 다니셨는지 이야기는 끝도 없이 사람들의 대화속에서 거미가 거미줄을 풀어내는 것처럼 출려나온다. 그 안에는 기차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가장 무도회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독살 사건, 기이한 발자국을 남긴 사건 등이 지장 스님의 추종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사람들은 저마다 범인을 추측하거나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서로 이야기하지만 모두 맞추지는 못하고 지장 스님의 결말을 듣는 걸로 마무리를 한다. 

그런데 참 의미심장한 말을 마지막에 하고 있다. 지장 스님의 이야기가 그가 진짜 겪은 일이건 꾸며낸 일이건 중요한 건 듣는 동안 좋았다는 점만이 중요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마치 칵테일 이름 '보헤미안 드림'이 그 행각승이 이야기한 일들에 대한 대답인 것 같이 느껴진다. 나이는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스님이 그렇게 많이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다닐 때마다 사건을 만난다는 것은 김전일 가는 곳에 살인이 일어난다는 만화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관없다는 것이다.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겠소 하고 주장하는 것만 같다. 픽션이란 다 그런 거라고. 이야기는 하는 이보다 듣는 이의 마음이, 책은 읽는 독자가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복잡한 범죄 소설들의 범람으로 머리를 식히고 싶지만 그렇다고 코지 미스터리는 별로라고 생각된다면, 본격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미스터리 클럽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는 것을 꿈꿨던 사람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만한 작품이다. 캬~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던힐 담배와 칵테일은 스님에게 좀 안어울린다. 뭐, 그런 언발란스한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나저나 보헤미안 드림이라는 칵테일 한번 마시고 싶다. 사람들과 미스터리를 이야기하며, 아니 누군가의 미스터리 이야기를 들으며 마시면 참 좋을 것 같다. 일주일에 한번 이런 모임을 가져보는 것, 생활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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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13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막 이책 읽기 시작했어요^^

물만두 2010-04-13 10:11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보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