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두려운 진실을 향한 용기 있는 전진
심포 유이치 지음, 이지영 옮김 / 태동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심포 유이치라는 작가는 미스터리 작가지만 그것보다 작품을 통해 인간과 인생, 살아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다. 그의 작품 <스트로보>도 그랬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라거나 그 부대낌같은 것은 모른다. 사람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나 열망도 없고 배신이라거나 질투를 해본 적도 없는 나는 참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그럭저럭 만족한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는 나는 이 부부의 이야기보다 외조부모의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게 된다. 그것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인간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무한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늘 또 이렇게 내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역시 휴먼 미스터리의 대가다운 작품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편지를 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다. 아내는 멀리 그리스에서 일을 하게 된 남편을 따라 가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나중에 따라 오리라 생각했는데 편지로 이혼을 이야기한다. 자초지종도 설명하지 않고. 이런 아내가 답답한 남편도 편지를 보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당연한 반응이다. 이렇게 부부의 주거나 받거니 하는 편지는 아내가 외할머니를 닮았다는 말과 외할머니의 젊어서 일으킨 시건과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50년을 거슬러 올라가 아내의 외조부모의 편지에 다다르게 된다.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힌 아내에게 보내는 남편의 편지와 아내의 기구한 운명과 절절한 감사와 한 여자로써의 욕망이 담긴 편지는 잔잔하게 전개된다. 여기에서도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남편은 거부하지만 그 이혼에 대한 요구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서서히 밝혀지며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라는 위치와 변화를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보게 된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그런 뒤 다시 외손녀는 그 남편에게 자신이 이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리스로 가지 못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이메일과 휴대전화로 간단하게 소통이 가능하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국제 전화, 심지어는 화상전화까지 가능한 지금 세상에서 편지라는 소재는 낡고 진부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 낡고 진부한 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은 아직 남자와 여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것이 모두 진실되고 정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편지라는 소재가 인간에게 더 정확한 사실을 토해내게 만드는 매개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편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들어 꾸밀 수 있는 여지를 준다. 하지만 그 꾸밈조차도 정성이고 그 꾸밈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인간관계의 발전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작가는 두려운 진실을 향한 용기 있는 전진을 담아내고 있다. 50년을 넘나들며 인간과 역사,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라는 나라에서는 이해가 될 이야기들이, 혹은 움츠려들지 않아도 될만한 사연들이 일본에서는 당연히 멸시받고 자기 스스로도 죄인 취급을 해야 한다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문제가 있음을 단순한 형식의 편지 안에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늘 그렇듯 작가에게는 인간의 사소한 일상과 일탈 자체가 미스터리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작가를 많이 좋아한다.  

작품속 여자들의 자신들의 행동에 죄책감을 갖고 반성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가두려 한다.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이다. 같은 행동에 남자들은 오히려 당당하고 뻔뻔하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것이 50년전이나 50년후나 변하지 않은 가치관이 가진 속성이다. 하나의 관습이나 문화적 도덕율이 자리를 잡으면 그것에서 이성적으로는 부당하다 생각하고 벗어나려 하지만 정작 잘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잘 생각하고 곱씹어보라고 등장한 것이 편지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행간에, 여백에 쌓인 글쓴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행복했느냐 불행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적이냐 인간적이지 않느냐의 문제다. 이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우리네 삶은 실수투성이의 삶이다. 그리고 상처받고 상처주는 상처투성이의 삶이다. 그 삶을 그래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조금씩 실수를 줄여가고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고 이해하려 애를 쓰기 때문이다. 그 뒤에 행, 불행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뒤 남편과 아내들이여, 서로에게 편지 한통 써보는 것은 어떨런지. 무미건조한 삶을 벗어던지기 위한 용기있는 전진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한번 써보시기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09-10-3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먼 미스터리라니까 확 끌리네요.
오늘이 그대 생일이군요.
축하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물만두 2009-10-31 11:49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읽으시면 좋을만한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늘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009-11-02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2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