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장경현 감수 / 고려원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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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딕슨 카하면 떠오르는 것이 우선 밀실 트릭의 대가라는 점이다.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밀실 트릭을 여러번 독특한 방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또한 프랑스 경감 방코랑 시리즈와 기데온 펠 박사 시리즈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창조했다. 카터 딕슨이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는 헨리 메리벨 경 시리즈를 썼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작품 속에 등장시키고 구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역사 미스터리를 쓴 줄은 몰랐다. 역시 대가다. 그가 보여준 역사 미스터리는 고전적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오컬트적 미스터리를 쓴다는 점이 동시대 추리 작가와 딕슨 카와의 차이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역사 미스터리,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팩션을 쓴 작가다. 놀라운 일이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역사 미스터리를 썼지만 그것은 추리적인 수사 기법의 응용 영역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오는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딕슨 카는 그보다 현대적인 팩션의 고전적 형태로서의 작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장미의 이름>이나 <다빈치 코드>같은 팩션이 그냥 작가의 머리 속에서 툭 튀어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그들에게 선구자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딕슨 카가 그다. 

240년 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을 막고자 악마에게 영혼을 판 닉 펜튼 교수, 그는 그 시대로 가서 자신이 사모하던, 하지만 진짜 닉 펜튼(이름이 같은 몸의 주인공)에게는 사랑받지 못한 리디아가 비소 중독으로 살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그곳에서 닉의 정부인 메그 요크가 그를 따라 온 동 시대 그의 친구 딸인 메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녀의 유혹을 뿌리친다. 그는 리디아를 독살하려는 범인을 잡아 쫓아 내고 리디아가 죽기로 되어 있던 날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날짜를 지워 나간다. 

하지만 세상은 변해도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역사를 변화시키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닉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노 교수 닉이 분노할 때마다 몸의 주인인 난폭한 닉이 정신을 지배하게 되고 그 순간 또 다른 닉은 기억 상실증에 걸린 듯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불안해야 마땅함에도 노교수의 자신감과 자신이 원하던 사랑과 자신이 원하던 시대를 살고 있다는 행복으로 그는 사건과 시간, 그리고 자신이 계약한 악마가 있다는 사실마저도 망각을 한 채 역사를 이리 저리 바꾸려 애를 쓴다. 급기야 그는 심각한 적을 만들고 만다. 

딕슨 카는 역사 미스터리에 충실함을 보여주면서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충실함을 보여주고 있고 여기에 추리소설의 기본 요소를 끝까지 잊지 않고 끌고 나간다. 제목이 이 작품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벨벳의 악마는 칼을 잘 쓰는 검사 닉 펜튼이 벨벳 옷만을 입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또한 악마와 계약한 닉 펜튼 교수를 뜻하기도 한다. 악마의 등장이라는 다소 황당함을 주는 장면에서조차 진지함을 느끼게 만들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면이 딕슨 카의 작품을 사람들이 왜 읽고 싶게 만드는지를 알려준다. 다소 비현실적이었고 마지막 장면은 좀 유치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어울리는 엔딩이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이 그야말로 역사 미스터리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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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0-07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딕슨카의 작품이 어느새 꽤 많이 나왔네요.앞으로도 계속 나오길...^^

물만두 2009-10-07 15:29   좋아요 1 | URL
네.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작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