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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샘 ㅣ 미도리의 책장 10
미나가와 히로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시작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작품은 독특하게 시작된다. 작가가 마치 독일인의 작품을 번역한 것처럼 쓰고 있다. 책 속의 책이지만 그렇다고 액자구성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그저 처음과 끝만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인이 독일의 2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쓴 것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색다른 시도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독일 작가가 썼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작가의 고증과 등장 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 음악에 대해서까지 철저하게 조사한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의 탁월한 실력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이 잘 어울어진 것이겠지만.
1940년대 전쟁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그 즈음 마르가레테는 선택의 여지없이 레벤스보른이라는 아동 보호소 겸 병원 겸 연구소인 곳에 출산을 위해 들어간다. 그리고 간호사로 일을 한다. 그곳은 크라우스라는 나치 SS대원인 박사가 불사의 연구를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었다. 그것도 카스트라토의 음악을 사랑했다. 어느날 폴란드에서 금발의 푸른 눈이라는 이유만으로 납치당해 그곳에 오게 된 프란츠와 에리히라는 독일식 이름을 부여받은 남자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그 아이들을 양자로 삼아 음악 교육을 하고자하지만 여의치 않자 마르가레테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아이들을 양자로 삼는다. 마르가레테는 아들 미하엘의 미래를 위해 그와 결혼을 하고 안락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패전 후 세월은 흐르고 마르가레타의 아들 마하엘의 친부인 귄터에게 크라우스가 접근한다. 그의 성을 팔라는 제안을 하는데 그가 데려온 아들은 너무 왜소해서 열일곱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고 한편 공습 당시 헤어지게 된 프란츠와 에리히는 축제때 노래를 부르며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크라우스의 눈에 띄게 된다. 헤어졌던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운명처럼. 하지만 공습 이후 마르가레테는 정신을 놓게 되어 현실과 과거를 구분하지 못하고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대라는 이름의 강이 있다고 한다. 그 강에는 붉은 피가 흐른다고 한다. 인간의 역사는 기대라는 강에 흐르는 피의 역사다. 전쟁은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일어난다. 정치적 욕심, 경제적 욕심, 종교적 욕심.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복수와 증오를 대물림한다. 히틀러가 만들고자한 금발머리에 푸른 눈동자는 히틀러의 미의 기준이었을 것이다. 독일인중에 금발이 아니고 푸른 눈이 아닌 사람은 뭐란 말인가? 크라우스 박사의 카스트라토에 대한 집착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가 내는 고음의 소프라노는 그의 음악적 아름다움의 기준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만의 기준을 위해 남들은 하지 않는 일을 했다. 아름다움도 미치광이에게 사로잡히면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작가는 전반부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의 독일 내 삶을 세밀하게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나치가 어떤 일을 하는지와 함께 그저 전쟁의 참상을 같이 감내해야 한 여성과 어린 아이,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후반부에는 이 작품이 어떻게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이 되는 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마르가레타가 늘 생각하는 할머니에게 들은 전설이나 신화같은 몽환적 느낌이 전반에 걸쳐 하나의 강처럼 흐르게 만들고 있다. 작품은 독일 신화와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 전후 독일의 삶, 그리고 미국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이 작품이 미스터리인 이유를 마지막에 드러낸다. 한마디로 놀라웠다. 마르가레테의 꿈인지 현실인지, 과거인지 전설인지 그녀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책의 매력에 빠졌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공습 이후의 간극과 그들의 갑작스런 만남은 조금 뜬금없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마지막에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어떤 시대든 되는 놈은 어떻게든 되고 안되는 놈은 어떻게 해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나치대원으로 생체실험을 하던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야 마땅한 인물은 거대한 부를 축적할 기회가 제공되고 어쩔 수 없이 납치당하거나 미혼모의 몸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 여성, 그리고 대다수 조국의 이름으로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전쟁 전이나 전쟁 당시나 전쟁 후나 마찬가지인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중요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인간의 가치를 나눈다는 말이 된다는 사실이, 알고 있으면서도 씁쓸함을 남긴다.
책을 덮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배경으로 같은 이야기를 작가가 쓴다면 어떤 식의 작품이 나올까. 물론 평범한 일본인은 평범한 독일인과 같으리라.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도 같이 그리리라. 그렇담뎐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당한 전범의 위패가 있다는 야스쿠니 신사는 어떻게 표현할까. 아예 언급을 안하리라. 그나저나 히틀러는 자살했는데 일본 천황은 왜 아무 일도 없었던 거지??? 어떻게 봐도 2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민감한 소재다. 8월 15일이 지난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더 그렇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소재와 시기가 조금 다르게 작품을 보게 만들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