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총성
안소니 버클리 지음, 윤혜영 옮김 / 크롭써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안소니 버클리의 작품을 다시 읽을 기회가 오다니 정말 대박이다. 1930년대 추리소설에서 안소니 버클리 또는 프랜시스 아일즈 - 이들은 모두 같은 작가의 다른 필명이다. -를 빼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안소니 버클리는 1930년대 결성된 영국추리작가모임의 창립자이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서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체스터튼 등 우리도 알고 있는 작가와 함께 활동을 했다. 이때 회장을 체스터튼이 역임했다. 이 모임은 이후로 계속되었고 크로프츠, E.C. 벤틀리, 줄리언 시몬즈, 키팅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범죄의 동기와 알리바이 부재만으로 살인을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싫어하고 죽일만한 동기 하나쯤은 있는 남자 에릭이 추리소설가가 만든 아마추어 연극이 끝난 뒤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 연극으로 인해 누구도 알리바이는 없지만 경찰과 사람들은 처음부터 용의자로 한 남자가 지목된다. 그가 바로 이 책의 화자로 등장해서 책을 쓰고 있는 핑커튼이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로저 셰링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가 즉시 사건에 뛰어든다. 

모두가 죽이고 싶은 남자 에릭, 그 남자가 돈을 목적으로 노리는 순진한 엘자, 엘자를 지키려는 존과 에델, 에델에게 부탁을 받은 핑커튼, 에릭의 사촌으로 대대로 내려온 저택을 에릭이 팔려고 한다는 것에 분개하고 있는 아모렐, 에릭에게 버림받은 드 라벨 부인과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진실을 알고 질투심에 불탄 드 라벨. 이들 모두에게는 저마다 동기가 있고 알리바이는 없다. 과연 이들 중 진짜 핑커튼보다 더 확실한 용의자는 없는 것일까. 

작품은 이들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 범인을 찾는 방식과 트릭을 알아내는 방식에서 탈피해서 범죄 이전에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를 죽이고 싶은 동기를 먼저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누가 범인이어도 동기면에서는 충족되는 상황을 만들고 이들이 그런 동기를 가지고도 유머러스하게 또는 시니컬하게 영국식 예의를 지키며 함께 어울리는 면과 살인사건을 다룬 연극을 벌이는 면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그 시대 용의자의 심리 과정과 재판 과정도 보여주고 있어 여러가지를 함께 만끽하게 하고 있다.  

안소니 버클리의 로저 셰링엄 시리즈라고도 볼 수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로저 셰링엄이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가 주인공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로저 셰링엄 시리즈에 포함시키고 싶다. 어쨌든 로저 셰링엄이 등장을 하는 작품이니까. 그리고 독특한 작품이기도 하고. 안소니 버클리는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다양한 소재로 추리소설의 여러 면을 보여주는 작가다. 늘 그 시대에 새로운 것을 추구한 작가라고나 할까. 

두번의 총성이 울린다. 그 한번은 존이 쏜 총이라고 한다. 존이 쏜 총은 첫번째 총이었을까, 두번째 총이었을까? 어느 총에 맞아 피해자는 죽은 것일까가 핑커튼의 알리바이 입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것은 진실인가.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으니 범인은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사람들은 핑커튼을 의심하면서, 아니 확실히 범인으로 여기면서도 그를 탓하지 않는다. 이것이 1930년대식 정의라는 것인가 싶다. 

작가는 능란하게 작품 속에서 연극이라는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연극을 통해 사람들의 범죄 동기는 낱낱이 밝혀지고 누가 살인을 했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알리바이는 찾기 힘들게 만들고 그런 가운데 보여줄 수 있는 증거는 모두 보여주고 있다. 처음부터 작가는 페어플레이에 신경을 쓰고 글을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이 놀라운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놀라게 된다는 점이. 반전은 아니지만 현대적 반전보다 더 극적이고 논리적이며 드라마틱한 에필로그를 읽고 나면 역시 안소니 버클리라고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1930년대 본격추리소설의 절정기 작품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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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12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넵,강력 추천 작품이지요^^

물만두 2009-08-12 13:32   좋아요 1 | URL
안 읽으면 후회막심일 작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