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괴기소설을 쓰는 검은 옷만 입어서 별명이 드라큐라 백작인 일명 백작이라는 남자와 일정한 직업없이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낸 삼십대의 사루와타리라는 남자가 두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만나 두부 맛집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 모음집이다. 백작이야 직업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사루와타리라는 남자가 백작보다 더 기이하게 느껴진다. 백수에 근근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는 것 같은데 미식가고 중고차라지만 차도 수시로 바꾸는 모양새가 읽을수록 수상하게 여기게 된다. 사루와타리, 당신은 누구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아시야 가의 몰락>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에드거 앨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을 오마쥬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작품이 한 작품 더 있는데 <황금벌레>를 오마쥬한 <송장벌레>가 그것이다. <아시야 가의 몰락>은 사루와타리가 두부 맛집에 들렀다가 대학교때 사귀던 하타 유리코가 사는 곳 근처라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연락을 해서 그 본가에 가서 만나게 되는 기묘함을 담고 있다. 일본 전설을 교묘하게 잘 배치시켜 <어셔가의 몰락>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송장벌레>는 그보다는 조금 더 현대적이면서 더 괴기스러운 작품이다. 길에서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난 사루와타리는 친구가 갖고 싶어하던 사진기를 빌려주며 같이 일을 하던 죽어가는 동료를 위해 풍경 사진을 찍어다 달라고 해서 찍었다가 현상을 하던 중 사진기에 벌레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친구의 행동에서 수상함을 느끼게 되는 마지막까지 오싹하게 소름이 돋게 하는 작품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고양이 등 여자>는 현실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섬뜩할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괴담이라 하기 어렵지만 상상인지, 피해망상인지, 죄책감인지, 착각인지 모르지만 사루와타리가 대학시절 겪은 등이 고양이 등처럼 굽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 내 칫솔에 손을 댓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인간의 편견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려주는 섬뜩한 작품이다. 어쩌면 기담이나 괴담 모두 이런 인간의 잔인한 생각들이 표출된 결과일지 모른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겉모습, 보여지는 것에만 집착하는 이중성이 개인을 거쳐 집단화되면 하나의 전설이나 괴담, 공포를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카르키노스>는 게에 대한 이야기다. 백작이 강연하러 가는 길에 따라 간, 맛있는 음식 꾀임에 넘어간 사루와타리가 그 마을 선주에게 흉측하게 생겼지만 맛은 좋은 게를 대접받고 그 집에서 묶었다가 겪게 되는 괴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서기超鼠記>는 한자 그대로의 이야기다. 이 작품도 옛날 괴담을 현대 괴담으로 재 탄생시킨 것 같은 느낌의 작품이다. 건물에 들끓는 쥐를 잡기 위해 전문가가 덫을 놓는데 그 덫에 걸리라는 쥐는 안 잡히고 말 못하는 어린 소녀가 발이 붙어 있는 것을 사루와타리가 구해주면서 건물 주인인 선배와 관련이 되는 이야기다. <케르베로스>는 <카르키노스>에서 만난 여배우의 초대로 그 여배우의 본가를 찾아 그들이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연을 듣고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 이야기다. 역시 모티브는 일본 전설, 관습이다.  
 
<물소 떼>는 간만에 정식으로 취직했다가 쫓겨나 불면증만 생겨 다 죽게 된 사루와타리가 연민이라는 생각의 뚜껑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비로소 독자는 이 모든 작품들이 어떤 작품은 사루와타리만 등장하고 어떤 작품은 백작과 함께 등장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괴기소설 작가라고 해서 백작이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화자는 물론이거니와 소재를 제공한 이가 바로 사루와타리였음을 백작이 밝힌다. 그러니 부제인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에서 노트의 주인은 사루와타리인 것이다. 뭐, 별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직장도 없으니 글을 쓰면 될텐데 소심해서 그런지 한사코 사양하고 있다. 어디 언제까지 버티나 두고 볼까? 작가가 설마 사루와타리를 늙어 죽도록 이 상태로 만들지는 않겠지. 뭐, 이런 성격이었으니 기담이 잘 목격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사루와타리의 재미있는 점과 백작의 진지한 면, 그리고 사루와타리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담겨져 작품은 공포 그 이상을 선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이야기같아 보이는데 그 안에 현대인의 환상과 공포, 삶에 대한 애착과 미련, 그리고 광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에는 그저 에드거 앨런 포우에 대한 오마쥬를 어떤 식으로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봤는데 역시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을수록 괜찮고 읽고 나서는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어지는 작품들이다. 전설의 발생 원인, 관습이 만들어지게 되는 계기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 기묘한 전설과 괴담으로 재탄생되고 그 남겨진 괴담은 다시 현대라는 시공간과 결합해서 또 다른 모습으로 각색된다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에도가와 람포의 계승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함에서 스토리를 간결하게 전개하면서도 삽입하는 환상과 공포를 독자가 만끽하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깔끔해서 좋았다.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우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그의 다른 괴담집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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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5-21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기괴한 소설이라.제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이네요^^
근데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 불릴만 하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역시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면 에도가와 란포가 아닐까 싶네요.그의 포우풍의 기괴한 작품은 근래에 발매된 그의 단편집에서 잘 들어난다고 생각됩니다.
츠하라 야스미의 작품은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만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까진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기 보다는 에도가와 람포의 계승자정도가 아닐까 싶네요.이 작가가 더 많은 작품을 내놓고 계속 인정을 받아 란포의 명성을 뛰어넘게 된다면 그때 이 명칭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만두 2009-05-21 14:42   좋아요 1 | URL
에도가와 람포의 대를 잇는다고 쓰고 싶었는데 에드거 앨런 포우의 오마쥬 작품이 있어서요. 에도가와 람포는 이제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에도가와 람포 그 자체로도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의도하시는 바는 알겠는데 어디의 누구하는 이야기는 뛰어넘는 자를 뜻하는게 아니라 그보다 못하지만 그와 비슷하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작가가 에드거 앨런 포우를 뛰어넘는 작가라면 굳이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우라 쓰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보석 2009-05-2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재미있을 것 같아요! 순정만화풍의 표지는 좀 거시기하지만;;

물만두 2009-05-21 14:42   좋아요 0 | URL
그래서 백귀야행스럽다고 말씀드렸었지요^^

노이에자이트 2009-05-2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도가와 란보의 <고도의 마인>이 으시시하고 묘하게 매력이 있더군요.음...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물만두 2009-05-21 17:03   좋아요 0 | URL
전 단편집을 더 좋아합니다.^^
고도의 마인, 음울한 짐승도 좋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