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장조의 살인
몰리 토고브 지음, 이순영 옮김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어디보자. 내가 슈만에 대해 무얼 알고 있는가 생각해봤다. 슈만이 음악가라는 거, 브람스가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좋아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거, 슈만때문에 클라라가 힘들어했다는거, 그리고 클라라가 음악적 재능이 슈만 못지 않았다던가 하는 그럼 점들 뿐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아는 정도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슈만의 음악 한곡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작품을 볼 생각을 한 건 미스터리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팩션일지라도 미스터리가 충분히 있을만 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유명한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만이 어느 날 헤르만 프라이스 경위에게 쪽지를 보낸다. A음이 계속 들리는데 누군가 자신의 신경을 손상시키려는 것이라며 조사를 의뢰한다. 말도 안되는 의뢰고 그의 아내 클라라는 못마땅해하지만 호기심과 음악을 좋아하는 프라이스는 그 사건을 조사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슈만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접하게 된다. 슈만의 분열되는 두개의 슈만 자신이 이름을 붙인 인격이 있다는 사실과 그의 아내 클라라와 그의 제자이며 손님으로 집에 있던 브람스와의 관계, 그리고 슈만의 전기를 쓴다면서 슈만의 과거를 폭로하려는 도벽이 있는 음악평론가 게오르크 아델만, 슈만을 무시하는 리스트의 태도 등 음악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황당한 사건이 아닌 진짜 살인 사건이, 아델만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음악을 높게 평가하는 경찰 프라이스가 없었더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다. 역사 소설, 음악 소설, 메디컬 소설, 추리소설이라는 다양함을 보여주지만 결국 보여주는 것은 한가지뿐이다. 슈만의 말년은 비참했고 클라라는 생활고에 시달렸고 브람스는 여전히 음악을 했다는 점이다. 차라리 A음에 대한 미스터리로만 계속 나아갔다면 더 음악적이고 더 추리소설다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신병이라는 점도 더욱 부각될 수 있고 말이다. 리스트도 A음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슈만도 지적하고 실내악단 단원들도 지적을 하는데 거기서 슈만의 광기와 클라라의 고통을 더 깊게 묘사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음악가, 절대음감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A음의 정확함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것이 가장 음악가다우면서도 음악가의 집착과 정신병에 이를 수 있는 점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피아노 조율사도 등장하니 그 시대의 대량 생산하는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은 새로웠다. 팩션이지만 클라라의 아버지 버크 교수가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다는 사실, 슈만이 강에 투신 자살하려던 것,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한 것은 사실이었다. 정신병원에 브람스가 찾아왔다는 점은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19세기 독일은 다양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지방마다 지방색이 있듯 그들도 각 지방마다 특색이 있고 사람들의 기질이 다른 모양이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기를 쓰고 상류층에 합류하려는 프라이스의 모습에서 음악가와 경찰의 신분을 스스로가 경계짓고 있는 점도 느끼게 된다. 살인사건을 빨리 해결하려는 서장이 슈만에게 사기를 치려던 집시 모자에게 뒤집어 씌우고 끝내라고 암시를 주는 대목에서는 시대를 떠나 강자와 약자는 늘 이런 대접을 받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인간의 자잘한 역사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진짜 미스터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224쪽에 나오는 말이다.

"모두들 시간에 대해 말하지만, 아무도 내 시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요. 마치 나만의 삶은 없는 것처럼. 내 목적은 오직 아버지와 아이들과 지휘자와 그리고 당연히 남편에게 봉사하는 것인 것처럼 말이에요. 나는 그 모든 게 정말 지긋지긋해요."

백년이 지나도 이 말이 여자들의 입에서 떠날 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미스터리다. 

작품은 슈만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계기를 팩션으로 작가 나름의 상상력을 더해서 그의 변덕스러움과 집착, 광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그들의 내면도 들여다 보게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슈만이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프라이스 경위라는 인물의 눈을 통해 바라보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상류 사회, 특히 음악가라는 에술가들과의 교류를 동경하고 첼리스트 여자친구가 있고 직접 피아노를 배우는 열의를 가졌으며 자신의 직업이 가져다주는 하층민과의 부딪힘을 혐오하는 인물이 막상 동경하던 예술가들이 속한 상류 사회 속에 들어가보니 그가 만난 하층민들과 다를게 없다는 깨달음을 주며 그가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로 보고 싶은 독자는 프라이스를 주인공으로 보면 되고 음악 소설이 주는 팩션으로 읽고 싶은 독자는 슈만을 주인공으로 보면 된다.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무게감은 덜하겠지만 심플하게 만들어진 소품 정도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재미있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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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4-1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실화를 바탕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며낸 작품인 거 같습니다. 호기심 만발이네요~

물만두 2009-04-16 14:14   좋아요 0 | URL
기대를 좀 낮추시고 보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