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경찰연합 1 - 예언자 멘델의 죽음
마이클 셰이본 지음, 김효설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실제로 생각했지만 의회에서 부결되어 성사되지 못한 알래스카에 유대인 정착촌을 만든다는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SF소설의 한 소재인 대체 역사를 전제로 작품은 구성되고 이루어졌다.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사실을 처음 접한 나는 만약 그것이 지금 실현되었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늘과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불가능한 일임을, 역사는 늘 강자의 편이고 강자의 힘의 논리에 의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말았다. 

아들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거라는 말을 듣고 그 아이를 중절 수술한 뒤 미안한 마음에 아내와 이혼하고 알코올 중독자로 다 쓰러져가는 낡은 자멘호프 호텔에서 살던 랜즈먼 형사는 자신의 집이라 여긴 호텔에서 마약중독자 유대인이 총에 맞아 살해당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눈길을 끈 두다 만 체스판. 아버지가 체스에 빠져 살았던 덕분에 그는 체스에 흥미를 잃었지만 그것에 어떤 암호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그리고 밝혀낸 피해자의 신원은 놀랍게도 가장 보수적이면서 강경파로 하나의 거대 조직을 이끄는 유대인 마피아로 여겨지는 버보브파의 최고 권력자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슈필만 랍비의 외아들 멘델 슈필만이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바로 그들이 원하던 한 세대에 한 명씩 나타난다는 메시아였다는 점이다. 도대체 누가 메시아를, 왜 유대인의 메시아를 살해한 것일까?  

작품은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추리소설 기법을 이용해서 싯카 유대인들의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제 반환을 얼마 남겨두지 않아 불안해 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2천년을 떠돌던 그들이 그토록 이스라엘 땅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자신들을 받아줄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셋방살이를 전전하며 늘 방 빼라는 주인의 소리가 들릴까 가슴 졸이다 한겨울 어린 자식들을 업고 리어카 하나에 짐 보따리 몇 개 실어 눈 길을 걸어가던 가난한 우리의 부모의 모습과 닮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강경파 유대인과 온건파 유대인, 유대인이 세상 유일한 민족이라 생각하는 이들과 유대인이 짐이라 생각하는 이들 사이의 괴리감은 현대에도 존재할 것이다. 작가는 유대인이지만 이 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작가를 유대인의 적이라고 한다나. 이 점이 이슬람 국가에서 오르한 파묵이 받는 대접과 같은 것 같아 아이러니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것 같다. 

랜즈먼 형사에게 흥미를 느껴 읽은 작품이다. 작가 본인이 필립 말로와 루 아처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냈다고 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루 아처에서 매튜 스커더로 변하는 모습 어딘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캐릭터였지만. 등장하는 모든 유대인처럼 랜즈먼도 싯카에서 희망적이던 순간을 회상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알래스카가 유대인 자치주가 되기를 희망하던 때, 여기서 영원히 살게 되리라 생각하던 때를. 그리고 그 꿈이 무너져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절망과 분노를 잘 담아내고 있다. 랜즈먼도 흥미로웠지만 그의 사촌이자 틀링깃 원주민 어머니를 둔 베르코가 더 흥미로웠다. 유대인과 틀링깃 원주민과의 유혈 사태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그러면서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점 때문에 원주민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다가 아버지를 찾아와서 유대인으로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며 유대인이 되고자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 그의 모습에서 인간의 편협함을 느낀다. 인간이 인간 그 자체가 아닌 그 혈통을 중요시하는 것에서 종교의 화합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임을 깨닫는다.  

메시아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메시아가 무슨 소용이랴. 그 메시아를 자신들의 마음에 들게 바꾸려고 한다면 메시아의 재림을 바라는 이유가 무엇이랴. 메시아가 나타나 지금 당장 모든 총을 거두고 유대인과 무슬림이 형제처럼 지내라고 한다면 따를 것인가? 이스라엘이 힘으로 빼앗을 땅을 팔레스타인에게 넘겨주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것인가 말이다. 성지는 누구를 위해 중요한 것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또한 작품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종교도, 민족도 아닌 인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는가 하는 점을 끝까지 피력한다. 그 점이 추리소설, 미스터리를 떠나 마음에 들었다. 뒤로 갈수록 좋은 작품임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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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2009-04-09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리짓는 인간들로선 피하기 힘든 문제로군요. 혹시 모든 편견을 극복하고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던 이들은 죄다 우화등선해버리셔서 인터뷰가 불가능하군요. -_-
아! 누군가가 세계를 정복해서 통일시켜 버린다면 인류를 구분짓는 몇 가지 잣대는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물만두 2009-04-09 19:12   좋아요 1 | URL
무리한 일이라는 걸 알기에 인간의 삶 자체가 고단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크던 적던간에요. 그래서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일뿐인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