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크라임스
조지프 파인더 지음, 이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하버드 법대 교수이자 유명한 변호사인 클레어는 자신의 딸 애니를 친딸처럼 사랑해주는 지금의 남편 톰과 재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레스토랑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톰을 쫓기 시작하더니 톰의 과거가 드러난다. 그는 13년 전 탈영병이자 1985년 엘살바도르에서 87명의 양민을 학살한 살인자 쿠빅 상사였다. 하지만 그는 무죄를 주장하고 클레어는 3년동안 함께 산 남편을 믿기에 그를 변호하기에 이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군사 법정에서 민간 법정에서처럼 싸우기로 한 것이다. 

작품은 군사 법정에서 일어나는 숨막히는 변호사와 군대 최고의 검사간의 혈투가 치밀하게 다뤄지고 있다. 여기에 FBI, CIA같은 조직이 연관되어 있고 클레어에 대한 위협과 음모가 부비트랩처럼 설치되어 있다. 일진일퇴하는 공방, 군 장성까지 증인으로 불러내고 기밀문서를 찾아 헤매는 가운데 과연 법이란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변호사는 무죄인 피해자를 구해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무죄이건 유죄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할 일은 의뢰인을 무죄로 만드는 일, 무죄가 안된다면 최소 형량으로 줄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법이다. 그런 이유로 인권 변호사를 자처하는 클레어가 도입부에서 강간범을 무죄방면시킨 일이 논란이 되는 것이다. 법과 정의는 절대 같은 말이 아니다. 하물며 법 앞의 평등이라거나 법 앞에서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건 정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또한 검찰로 대변되는 검사는 모든 피고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증거를 찾아내고 증인을 확보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피고가 무죄일 수 있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무조건 유죄, 그리고 법정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형량을 받아 내는 것, 그러기 위해 배심원에게 얼마나 피고를 나쁜 인물로 묘사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변호사는 그것을 방어하고 뒤집으려 애를 쓰고 피고는 무죄를 주장하고 모든 증거를 부정한다.  

검찰의 증거에 따라 아내로서 클레어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남편은 정말 무죄일까? 남편이 혹 그들이 주장하는 그런 나쁜 사람은 아닐까? 그런 가운데서도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한다. 이런 클레어의 모습을 보는 것과 일진일퇴하며 증거를 찾고 증인을 찾으려 애를 쓰는 모습과 누군가 클레어를 위협하는 인물에 대한 두려움이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제목에서 이미 이 작품의 성격과 내용은 얼추 드러난다. 하이 크라임 (High Crime)이란 미국법에서 중대한 범죄를 뜻하는 말로 연방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부통령 등의 탄핵 사유가 되는 범죄를 지칭한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범죄라는 이야기다. 1985년 엘살바도르에서 양민이 미군에 의해 학살됐다는 것이 보도되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것을 몰랐고 단지 병사 개인이 혼자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책임자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일까? 그런데 이 사실을 알았거나 지시라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작가는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조지프 파인더, 대단한 스릴러 작가다. 치밀하고 세밀하게 법정 내부를 표현하면서도 큰 스케일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작가는 복선을 깔아서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그렇게 예상 가능한 반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이 대단했기에 놀라웠다. 스릴러 애호가의 필독서라는 말이 정말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거기다 법정 스릴러로서도 대단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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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1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31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zydevil 2009-04-0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건 프리만이 주정뱅이 변호사로 나오던 영화는 그저 평범했는데 원작 무척 뛰어난 가 보군요~~?

물만두 2009-04-04 10:42   좋아요 0 | URL
아, 그 군법전문 변호사를 모건 프리만이 연기했나봅니다.
영화를 못봐서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 작품들에 비하면 반전이나 대단한 스릴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에 충실한 그런 작품들을 읽다보면 이런 작품들이 더 좋아보이는 그런 작품입니다.